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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연 Feb 21. 2018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 김민정

아름다움으로 그 쓸모를 다 하는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김민정


시 읽기를 즐겨했던 적이 많지는 않다. 그럼에도 이따금 나는 시집이 사고 싶어 졌다. 그런 기분이 들 때는 서점으로 달려가 시집 코너에 쭈그리고 앉는다. 낯익은 시인들의 이름을 지나쳐 익숙한 듯 낯선 시인들의 이름 앞에 멈춘다. 익숙한 시인의 이름들은 괜히 닳고 닳은 느낌이었다. 오래전 딱 한 번 같은 반이었던 적 있었던, 전혀 친해져 본 적이 없는 급우를 우연히 만나는 기분과 비슷했다. 그래서 반갑단 인사 같은 것도 딱히 하고 싶어 지지 않는, 그런 어색함을 시집을 고르며 느끼고 싶지 않아서였나 보다. 그래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시인들의 이름을 찬찬히 살핀다. 어떤 시인의 이름은 너무 흔한 명자라, 시인 김아모개씨 말고 옆집 김아모개씨 혹은 같은 학교를 졸업했던 박아모개씨처럼 반갑게도 느껴진다.

김민정 시인의 시집은, 그런 낯설고도 반가운 이름이어서 꺼내보게 되었다. 그리고 <아름답고 쓸모없기를>하고 기원하는 것 같은 이 제목이 어쩐지 쿵, 내려앉았다. 왜냐면 나에게 '시'라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곱게 다져지고 정제된 아름다운 단어와 낱말들이 정성스러운 조화 속에 한껏 치장한 문장을 뽐내지만, 끝끝내 어디에도 쓸 만한 구석이 없다. 그저 아름다움 만으로도 그 소임을 다 한 듯하다.

'시'의 어떠한 사회적 기능이니 감성적 기능이니 따위를 논하고 싶지 않다. 교과서적으로 주입된 어떤 기능들을 알은체 하지 않으련다. 그러니까 쓸모없기 때문에 그저 아름다워지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 쓸모없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하고 싶다.

김민정 시인의 시집 <아름답고 쓸모없기를>은 절기를 따라 시선을 이동한다. 봄이 와서 비가 곡하듯 흐느끼고, 해가 길어져 점점 더워졌다가 가을이 들어선다. 이내 서리가 내리고 밤이 길어진다. 각 절기의 감상적 풍경은 나오지 않아도, 잘 정제된 것 같으면서도 설익은 과일처럼 그 정취를 짐작할 수 있다. 아마도 나는 이 시집과 각 절기를 함께 보내고 싶어 질 것 같다.

근데 나 언제부터가 어른일까
그때가 이때다 불어주는 호루라기
그런 거 어디 없나 그런 게 어디 있어야
돌도 놓고 돈도 놓고 마음도 놓는데
(중략)
어른은 어렵고 어른은 어지럽고 어른은 어수선해서
어른은 아무나 하나 그래 아무나 하는구나 씨발
(중략)
엄마가 되면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엄마만 되면 헌책방을 해도 될까나
하루 지나 매일 하루씩
가게 오픈 왜 미루느냐는 물음에 답이라면 말이다

- <'어른이 되면 헌책방을 해야지'> 중에서


이 시집에서 좋아하는 구절이야 손에 꼽기가 어려울 정도로 술술 나온다. 어떤 것은 너무 나의 이야기와 같아서, 또 어떤 것은 너무 우리의 이야기 같아서. 그리고 가끔은 아주 이해가 안 되는 말들이 외계어처럼 늘어져 있어서. 그중에서도 <'어른이 되면 헌책방을 해야지'>는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에 대해서, 내가 어릴 적에 "나는 어른이 되면"하고 했던 말들에 대해서 곱씹게 해 주는 시였다. 나는 어릴 때 어른이 되면 무엇을 해야지, 했던 사람이었더라. 그리고 나는 지금 어른이 되었나? 어른은 언제부터 어른이 되는 걸까?

스무 살에 해야 할 고민을 서른이 되는 지금까지도 하고 있다. 아마 나만 그렇지는 않겠지. 누구나 다 그렇겠지. 그렇게 위안받은 기분이다.

돌의 쓰임을 두고 머리를 맞대던 순간이
그러고 보면 사랑이었다

-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중에서

그래서 나에게 아름답고 이 쓸모없는 '시집 읽기'는 사랑과 같다. 시를 읽으며 쓰임을 고민하는 시간 같은 것들이 아름다워서 참 쓸모가 없다. 오래도록 아름답고 쓸모없는 시를 읽고, 사랑을 나누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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