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명이 가지는 백 가지 사랑의 모양
셰이프 오브 워터
엘라이자는 물에서 주운 아이였다. 날 때부터 말을 하지 못했지만 누구보다도 이웃을 아끼고 사랑하는 아이로 자랐다. 마음이 따뜻한 엘라이자 곁에는 '시대를 너무 빨리 태어났거나 너무 늦게 태어난' 화가 자일스와 믿음직스러운 직장 동료 젤다가 있었다. 늦은 밤부터 시작하는 실험실의 청소 일이 그래서 그녀에게는 그렇게 고된 일이 아니었다. 손님이 별로 없는 극장의 위층에 세 들어 사는 엘라이자는 극장 주인이자 집주인이 '영화를 보러 오라'며 인사를 건네는 평범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엘라이자의 생애가 유독 불행했는가, 하면 실은 '그 시절은 모두 그러하였다'라고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여성의 삶은 남성의 삶보다 힘들었고, 흑인의 삶은 백인의 삶보다 거칠었으며, 고아이자 벙어리 여성인 엘라이자의 삶은 부모가 있는 비장애인 남성의 삶보다 견디기 힘든 날들이 더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엘라이자는 주변에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정을 나누어주는 사람이었다.
옆 집에 사는 늙은 화가 자일스는 게이이고 직장의 종료 젤다는 흑인 여성이다. '부족한 것이 많은' 사람들 간의 교류와 애정, 그리고 연대는 영화 내내 진득하게 녹아 있었다.
실험실에 잡혀온 괴물을 본 엘라이자가 한눈에 그와 사랑에 빠지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물에서 건져진 엘라이자는 매일 아침 물속에서 자위를 할 만큼 어쩌면 누구보다도 물과 가까운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물속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는 생물체에서 자신의 다른 모습을 찾아낸 것은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말도 못 하고 쉰 소리만 겨우 내는 엘라이자는 물 밖에서 괴로운 듯 비명을 지르는 생물체에게 자신을 이입해 함께 아픔을 느끼기도 했다.
그를 위해서 해부 직전에 그를 구출해 내고, 비가 와서 강물이 불어났을 때를 기점으로 그를 풀어주고자 결심을 했지만, 막상 그와 함께 시간을 더 보내니 사랑의 감정이 더 커져 그를 보내는 것이 괴로워졌다.
엘라이자는 여전히 말을 할 수 없었지만, 온 마음을 다해서 노래를 부른다. 그를 사랑하는 마음을 그에게 알리고 싶지만 엘라이자에게는 수단이 없었다. 그렇게 그녀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그를 다시 물속으로 돌려보내 주는 것 말고는.
영화 속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사랑 이야기가 나온다. 물론 엘라이자와 수중생물의 사랑 이야기가 가장 중심이 되는 이야기이지만, 파이 가게의 직원을 사랑하여 매일 맛없는 키라임 파이를 사 오는 자일스나, 하루 종일 남편에 대한 불평불만을 내뱉지만 동시에 그의 생활을 걱정하는 젤다의 이야기도 간간히 엿볼 수 있다. 강력한 권력을 가진 백인 남성 스트릭랜드는, 모든 것을 다 가졌지만 아내와의 성생활에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말을 할 수 없는 엘라이자에게 끌린다. 물론 그는 단지 그것 때문에 자기의 모든 것을 버리고 희생하는 사람은 아니다. 단지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자기 자신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타인의 슬픔, 고통, 아픔을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을 뿐이었다. 소련에서 온 드미트리도 다른 방식으로 수중생물과 사랑에 빠진다. 그는 그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수행하여 수중생물을 지킨다.
동화 같은 이야기처럼 펼쳐지는 화면들 속에서, 이 지구 상에는 아직 인류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생물종들이 훨씬 많고, 그 다양한 생물종들의 개채수만큼이나 다양한 사랑의 방식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불현듯 떠올랐다.
우리는 많은 시간을 서로를 이해하는 데 쏟고 있다. 자신과 삶의 방식이 다른 사람들, 사고방식이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이해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영화 속의 스트릭랜드처럼 자신의 고집대로 삶을 밀고 나가다 이내 퇴장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이해와 사랑, 그리고 물과 같은 사랑의 모양에 관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물은 어떤 그릇에 담기든 그 모양에 알맞게 들어간다. 그렇다고 자신의 모양대로 방대한 양의 물을 작은 병 안에 억지로 담아두려고 하면 터져 나오기도 한다. 마치 급류에 휩쓸리듯이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사랑에 그렇게 휩쓸려버릴 때도 있다.
그렇게 이 영화는 마음속에 급류처럼 휘몰아쳐서 잔잔한 감동을 남겼다.
가장 좋아하는 장면을 꼽으라면 아마도 엘라이자의 집의 화장실에 모든 입구를 틀어막고 물을 넘치도록 흘려 그 속에서 엘라이자와 수중생물이 사랑을 나누던 장면이 아니었을까 싶다. 자일스가 문을 열고 둘이 서로를 끌어안고 있는 모습을 보며, 그리고 누구보다도 진지한 사랑의 눈을 하고 있는 엘라이자를 보며, 자일스는 말없이 문을 닫아준다.
엘라이자가 뮤지컬처럼 노래 부르며 춤추는 장면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이 모든 이야기가 꿈 이기라도 한 것처럼, 엘라이자는 노래하고 춤을 춘다. 자신의 마음을 '음악'으로 수중생물에게 전달하고 싶고 그런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지막에 엘라이자를 안고 물속으로 뛰어든 수중생물이 엘라이자의 목덜미에 아가미를 재생성해주고 키스를 나누는 장면 역시 동화 같다. 모든 것을 내던져 자신에게 사랑을 보여준 엘라이자를 향한 보답이자, 그 자신의 사랑의 표현 방법이었다.
동물원이 세계 최초로 개장하였을 때에는, 아프리카에서 살던 부족이 동물원의 동물처럼 우리 안에서 구경거리가 되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을 유흥으로 여겼던 시절이 있었다. 세상은 변화했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을 이해하려 애쓰는 사람이 많아졌다. 물을 어떤 용기에 담아두려고만 하지 않고 물의 모양대로 흐르게 내버려두고 다양한 사랑의 모양을 인정하는 세상이 되었다.
아직은 물론, 갈 길이야 멀지만, 그래도 조금은 더 나은 세상을 향해 흐르는 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Copyright. 2018. 윤해후.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