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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 - 정유정

인간은 선하게 태어나는가, 악하게 태어나는가

by 희연

종의 기원

정유정


정유정 작품은 우연히 읽었던 <28>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 뒤로 <종의 기원>이 떠들썩하게 출간됐도 관심은 뒀으면서도 어쩐지 인기 많은 작품은 손을 대고 싶지 않은 이상한 마음에 한쪽으로 치워두었다가,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게 되었다. <28>을 읽었을 때 그 생생한 묘사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토리텔링에 반해서 정유정 작품을 더 찾아 읽어봐야지, 하고 생각만 했었는데 다시 그의 작품을 읽게 되니 그전 작품인 <28>을 읽었던 기억이 간데없어서 당황스러웠다. 이래서 책을 읽은 후에 짧게라도 감상을 남겨 놨어야 했는데.


<종의 기원>은 연쇄 살인범의 시점에서 쓰인 이야기다. 읽는 내내 찝찝하고 불쾌한 감정을 지울 수가 없었는데, 남성-가해자의 시선에서 쓰였고, 또 그의 상황을 합리화하려는 말들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는, 그렇게 태어났고, 그래서 억압당했고, 우연히 자신이 억압당했던 것을 알게 되었고, 폭발했고, 그것은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하는 것들을 구구절절 설명한다.


P. 50. 야단을 맞았다고 욱해서 살인을 저지른다면, 아들 손에 남아날 어머니가 세상에 몇이나 되겠는가.


이 구절을 읽을 때는 나도 모르게 화가 나기도 했다. 실제로 가정 폭력은 남성 가해자가 대부분이고 가정 내 어머니의 죽음은 남편 혹은 아들로 인해 일어난다. 소설에서도 아들, 유진은 결국 어머니까지 죽이기도 했고.


작가는 '악인'에 대한 탐구심에 이런 글을 쓰게 되었다고 말미에 밝힌다. 프로이트를 인용하며 인간 본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만져지지 않는 인물에 대해 숙고해 소설을 썼다고 한다. 작가로서 가질 수 있는 순수한 호기심, 탐구심에 경의를 표하며 작가의 말을 읽긴 했지만 끝내 나는 읽는 내내 내가 가진 질문에 대한 답은 찾을 수가 없었다.


우리가 악인을 이해할 필요가 있을까?


소설 속 유진은 '포식자'로서 사람들에게 겁을 주는 일에 흥분을 느낀다. 사람을 죽여도 무언갈 잘못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채로 자라왔고 그런 사람이다. 그는 단지 그의 상황에 맞춰 자기 자신에게 유리한 판단을 할 뿐이다.

읽는 동안 '나였다면?'을 되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애초에 나는 '유진'과 다른 사람으로 나고 자랐고 그의 생각과 선택을 결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마 어떻게 해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악인에게 서사를 부여해가며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답을 내릴 수는 없었다. 결국 그들도 우리 사회의 일원이고, 당장 찾아내서 사회 밖으로 추방시킬 것이 아니라면 그들도 어울릴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하니까. 어려운 문제처럼 느껴졌다.


P. 293. 세상의 모든 생명체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생존하는 법과 더불어 기다리는 법을 배운다. 먹는 법과 먹을 수 있을 때까지 굶는 법을 동시에 터득하는 것이다. 오로지 인간만 굶는 법을 배우지 못한 생물이었다. 오만 가지 먹을 것을 먹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먹으며, 매일 매 순간 먹는 이야기에 열광하는 것을 보면 그렇다. 먹을 것을 향한 저 광기는 포식 포르노와 딱히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인간은 이 지상의 생명체 중 자기 욕망에 대해 가장 참을성이 없는 종이었다.


딱히 악인이 아니어도, 인간이라는 종이 지구 상에 끼치는 해악을 꼽아보면 왜 아직도 인간은 존재하는가, 하는 의문이 드는 순간이 종종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악인'의 행보를 꼽아보며 이해하려는 노력은, 인간 종 자체에 대한 이해로 다가가는 노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유정은, 이해하기 어려운 세계를 잘 그려내는 탁월한 작가다. 그는 악하게 태어나는 사람도 있다고 하지만, 그런 '종'이 있다고 하지만, 나는 그래도 인간의 마음에 있는 선의를 믿고 싶다. 선의가 아니라면 본능. 자기 자신의 안위와 더 나아가 인간 종 전체의 번식을 위한 본능으로 타인에게 더 따듯한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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