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책 목록이 늘었다.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장영은
어릴 적 좋아했던 책 중 하나는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다. 눈칫밥을 먹으면서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꿋꿋하게 버텨내던 소녀는 그 어떤 어려움에도 굴복하지 않았고 마침내 사랑도 찾고 행복도 찾는 이야기였는데, 영화로 개봉한 걸 홀로 보러 갔다 눈물을 흘리며 나왔던 기억도 있다. 샬럿에게는 자매가 있었는데, <폭풍의 언덕>을 쓴 에밀리 브론테까지 둘은 '브론테 자매'로 묶여 불리며 한국에서도 인지도가 있는 편이다. 세 자매 중 막내였던 앤 브론테도 언니들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그 역시도 글을 쓴 작가였다. 19세기 유럽에서 여자 셋이 결혼도 하지 않고 집에서 글만 쓸 수 있었다는 건, 그래도 가족의 지지가 없었으면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제인 에어>에 이어 <폭풍의 언덕>도 읽자마자 좋아하는 소설의 반열에 올랐다. 이들이 지금 태어나 소설을 썼으면 어땠을까를 상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는 살면서 글쓰기를 놓지 않은 작가 25명의 궤적을 쫓은 책이다. 제목의 각각이 1부, 2부, 그리고 3부가 되었는데 3부로 넘어가면서 조금 더 최근의 작가를 소개하는 듯했다. 익숙한 이름도 있었지만 전혀 낯선 이름들도 꽤 많았다.
익숙한 이름의 작가는 곧바로 작품을 연결해 생각했다. 도리스 레싱 <19호실로 가다>,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에밀리 디킨슨의 시, 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 읽어본 작품들이 이렇게 쉽게 세어질 만큼 적다는 게 부끄러우면서도, 앞으로 읽고 싶은 책의 목록이 늘어난 것은 기분이 썩 좋았다.
읽어본 적 없는, 생소한 이름의 작가들은 한쪽에 메모를 했다. 기회가 되면 읽어 봐야지,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읽어야지.
작가들의 글 쓰며 살던 이야기는 여러 모로 영감의 원천이다. 특히나 여성 작가라 하면 비교적 덜 알려지기도 했으니 찾아보는 재미도 있고, 또 동시대 남성 작가에 비해 더 험난하고 기구한 생을 살면서도 글쓰기를 놓지 않았다는 의지를 읽을 수 있다는 데 크게 감명을 받게 된다.
한때는 질투를 했다. 나의 게으름을 탓하기보다, 그들의 부지런함과 열정을 부러워하고 시기하곤 했다. 온 생을 불살라 글을 쓴 여성들의 이야기에서 나의 부족한 부분을 보며 자괴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이들의 이야기를 찾아 읽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의무감이라고 생각했다. 여성의 이야기를 더 많이 읽어야, 그보다 더 많은 여성의 이야기가 세상에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 어떤 의무감으로 여성의 이야기만 줄곧 찾아 읽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읽다 보니, 그리고 나를 다시 돌아보니, 나는 훌륭한 여성 작가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열등감을 곧잘 느끼고, 그 열등감은 또 글을 쓰고자 하는 내 의지에 장작이 되었다. 내가 살면서 놓지 않고 꾸준히 해온 것이 바로 글쓰기인데, 여기에 영감을 주는 이야기들이 바로 작가들의 삶, 특히 여성 작가들의 삶이다.
P. 32. 글을 쓰다 미쳐 버린 여자가 맞은 비극적 최후로 버지니아 울프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자가 글을 쓰면 미치거나 불행해지거나 혹은 처참하게 죽게 된다는, 거의 저주에 가까운 관점에 나는 조금도 동의할 수 없다. 버지니아 울프는 방 안에서 혼자 책을 읽고 글을 쓰다가 심한 우울증에 걸려서 자살한 것이 아니다. 전쟁이 버지니아 울프의 삶을 훔쳐갔다. 버지니아 울프는 글을 쓸 때만 "앞으로 나아가는" 자신을 느꼈다. 그러한 작가의 삶이 전쟁으로 중단된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한 줄의 글도 쓸 수 없게 되자 생을 마무리하기로 결정한다.
글쓰기가 나에게 얼마나 힘이 되었는지를 다시 생각한다. 글을 쓸 수 없게 된다면 어떨까도 상상해봤는데, 상상만으로도 너무 절망적이어서 버지니아 울프나 실비아 플라스처럼 생을 그만두길 선택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https://brunch.co.kr/@kimraina/37 - 글쓰기와 필명의 이야기.
아쉬운 점은 25명의 작가들만 간략하게 설명한 책이라 다 읽고 나서도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것과, 한국 작가의 비중이 많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아시아/아프리카 문학이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고, 작가들에 대한 정보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비교적 유명하고 작품이 잘 알려진, 작가 자신의 삶도 잘 알려진 이들이 선정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와 동시에 아시아/아프리카 작가들에 대해 알아가고 싶다는 욕망도 솟았다. 대학 다닐 때, 아프리카 문학 수업을 교양으로 들었는데, 정말 농담이 아니고 단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아서, 스스로가 많이 실망스러웠다.
더 많이 읽고 싶다, 더 많이 쓰고 싶다. 내 욕망에 불을 지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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