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재외국민 투표를 했다.
27. 재외국민 투표를 했다.
2012년 12월 21일. 마야 달력에 의하면 지구가 멸망을 맞이하는 날이라고 했다. 나는 지독한 숙취에 머리를 감싸며, 아직 멸망하지 않은 지구에서 다시 눈을 뜨고 말았다. 이날의 절망은 지구가 멸망하지 않았다는 소식만큼 치명적이었다. 어쩌면 마야 달력이 대한민국의 종말을 예언한 건지도 모르겠다며 자조하기도 했다. 차라리 멸망하지 그랬어, 지구야. 허망했지만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닥쳤다.
18대 대통령 선거는 내가 호주에 어학연수를 간 사이에 치러졌다. 재외국민 선거 등록을 하는 날짜에는 한국에 있었고, 막상 재외국민 투표 및 본투표 당일에는 호주에 있었던 비운의 스케쥴 때문에, 나는 국민의 권리를 행사하지 못했다.
그래도 설마, 설마하니 박 씨가 대통령이 되겠어? 토론회라는 토론회는 망쳤고, 공약도 허점이 많았고 무엇보다도 '독재자의 딸'인데.
개표 방송은 인터넷으로 생중계되었고, 친구와 함께 KFC 치킨 패밀리 팩을 함께 나눠 먹으며 늦은 시간까지 같이 방송을 지켜봤다. 처음에는 신이 났었지만, 곧 우리는 표정이 굳었고, 미처 결과가 다 나오기 전에 커다란 실망을 안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투표가 끝난 다음 날에도 믿을 수 없었던 개표 결과에, 개표 방송을 함께 본 친구를 만나 다시 술을 마셨다. 술을 엄청 많이 마셨고, 이대로 우리 호주에서 망명신청 할까요? 하며 웃다 울다 마시다를 반복했다.
2022년 3월 9일. 개표 방송을 하는 시간에 나는 출근을 했다. 이제는 지구 반대편, 캐나다에서 개표 방송을 지켜보게 되었다. 개표 방송 내내 박빙이던 표 차가 점점 좁혀지지 않고 고착되면서 2012년의 절망이 가슴에 내려앉았다.
설마하니 윤 씨가 대통령이 되겠어? 2012년의 나에게 버럭 화를 내며 "박 씨가 되어버렸잖아!"했듯, 2022년의 나에게 "어쩌냐, 윤 씨가 진짜 당선되어버렸다."며 자답하게 될 줄이야.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이번에는 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재외국민 선거인 등록을 일찌감치 해 두었고, 토론토 총영사관에서 이메일이 올 때마다 꼼꼼히 읽으며 투표 기간과 준비물도 꼼꼼히 챙겼다. 평일엔 좀체 시간을 낼 수 없어 주말에 직접 운전해서 토론토 한인회관까지 가서 투표도 하고 왔다.
재외국민 투표수 161,878표에 내 표가 하나 들어가 있는 경험은 처음이라 결과와는 상관없이 조금 설레기도 했다.
투표하러 가기로 정한 날은 2월 26일 토요일은 친구의 부고로 시작되었다. 현실감도 없고 멍해서 매주 토요일 오전 9시에 시작하는 독서 모임을 어떻게 마무리 지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친구의 사진을 하나씩 살피고 엉엉 울고, 그래도 오늘이 아니면 나갈 수 없을 것 같아서 채비하고 길을 나섰다.
내비게이션의 지시대로 운전하는 동안에는 운전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괜찮았다. 50여 분 운전을 한 끝에 토론토 한인회관에 무사히 도착했고, 줄지어 서 있는 차량을 보면서 오래 걸릴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생각보다 회전율이 빨랐던 덕분에 금방 주차를 할 수 있었다. 친절한 주차 도우미 덕분에 캐나다에서 첫 후방주차도 성공할 수 있었다.
투표소는 한국인답게 질서 정연하고 효율적으로 움직였다. 캐나다의 공무원들도 한국 공무원 절반만 닮았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안 날 수 없었다.
기다렸다가 투표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도 30분 남짓이었나. 대통령 투표에 참여하는 건 두 번째지만, (19대와 20대) 재외국민 투표는 처음이라 신기한 것투성이었다.
내 차례가 되어 담당자 앞에서 신분을 확인하니, 한국 내 주민등록 주소지가 프린트된 스티커가 나왔다. 스티커를 붙인 봉투와 투표용지를 받아 기표소에 들어가 한 표를 찍고, 혹시 인주가 번질까 싶어 세로로 길게 접고 싶었지만, 그러면 봉투에 들어가지 않아서 하는 수 없이 가로로 반을 접었다. 접기 전에 인주를 손으로 여러 번 문질러 번지지 않는 것을 확인했으니 괜찮을 터였다.
기표소를 나와 투표함에 밀봉한 봉투를 넣고 투표소를 빠져나왔다. 입구에서 인증샷을 찍고 싶었지만, 코로나로 인해 모든 길은 일방통행이었으니, 입구로 가려면 출구로 나와서 다시 들어가야 했다. 그만큼의 열정은 없어서, 결국 출구 바로 앞에 주차된 차에 올라타 귀갓길에 올랐다.
2020년 4월에 재보궐선거가 있었다. 이때도 일찌감치 재외국민 선거 등록을 마쳐 두었는데, 뜻밖의 변수가 나타났었다. 코로나로 인한 락다운이었다. 3월 중순부터 캐나다 전역이 락다운에 돌입했고, 느닷없이 24시간 집에만 머무르게 되었다. 4월이 되어서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아서 필수적인 외출, 가령 식료품을 사러 가는 정도가 아니라면 외출할 수 없었고, 재외국민 선거는 자연스럽게 취소가 되었다.
왜 아직도 우리는 우편 투표나 인터넷 투표를 못 하는지, 그런 기술이 마련이 되지 않았는지를 한참 생각했던 것 같다. 당연히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있으니 섣불리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지 않았던 거겠지만, 국민으로서의 한 표를 행사할 수 없었던 것이 못내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2022년에도 여전히 코로나의 기세가 꺾이지 않았지만, 방역 지침을 잘 따르고 거리두기를 유지하며 재외국민의 투표권을 보장받을 수 있었던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너는 캐나다에 사는데, 앞으로도 계속 캐나다에 살 계획이면서 한국 대통령이 누가 되는지 그렇게 중요하냐고 물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 나의 국적이 한국이고, 또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재외국민으로서의 처우도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에 투표를 안 할 수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내가 찍은 후보가 당선되지는 않았을지라도.
앞으로 또 몇 번의 대통령 선거를 캐나다에서 하게 될지 모르겠다. 지금은 토론토 근교에 살기 때문에 차로 1시간 남짓 운전해서 투표하러 다녀올 수 있었지만, 더 먼 곳으로 이사를 간 다음에는, 그래서 비행기로 3시간 날아와야 투표를 할 수 있다면? 실제로 그렇게 투표권을 행사하러 오신 분들도 꽤 많았으니까, 나도 못 할 건 없을 것 같다. 코로나처럼 자연재해만 없다면 말이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새로운 대통령이 뽑혀버렸다. 2012년처럼 절망으로만 개표 이후를 보내지는 않았다. 사실은 투표 결과보다 더 힘들었던 개인적인 일 덕분에 충격이 덜했던 덕분도 있다. 이미 결과가 나와버린 거,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더 집중하자고 다짐했다. 너무 비관하지 않되 또 터무니없는 낙관하지 않기. 지금 내 자리를 지키며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기.
3월 8일, 대선 투표 전날. 세계 여성의 날이자 내 생일을 맞이해, 한국여성민우회에 소정의 일회성 기부를 했다. 좀 부족하게 느껴져서 정기 후원도 신청했다. 3월 9일, 대선 결과를 보면서, 후원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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