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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도 한번 살아보지, 뭐

28. 재사용 생리 용품을 찾아서

by 희연

캐나다에서도 한번 살아보지, 뭐

28. 재사용 생리 용품을 찾아서


캐나다에 오자마자 가장 신기했던 게 뭐냐고 물어보면, 바로 드럭 스토어(각종 상비약과 간단한 스낵 기타 잡화 등을 파는 가게이며 주로 약국이 함께 딸려 있다.)에서 쉽게 구입이 가능한 '다양한' 생리 용품이라고 단번에 답할 것 같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말하려니 캐나다에 오기 전까지는 그다지 큰 관심이 없어서 꼼꼼히 살피지 않았기 때문에 섣불리 말할 수는 없을 것 같고, 한국이랑 비교하면 확실히 가격도 저렴하고 종류도 다양한 생리 용품이 진열되어 있다는 것이 확실히 인상 깊었다.


한국에서 생리 컵을 딱 한 번 구입해 본 적이 있었는데, 당시 국내에서는 판매처가 없어서 해외 직구로 샀던 기억이 났다. 그때 함께 살던 J가 쓰던 브랜드와 같은 '릴리 컵'이라는 제품이었는데, 제품이 내 몸에 맞지 않아서 안타깝게도 얼마 사용하지 못하고 방치하게 되었다.

캐나다 드럭스토어에서 발견한 생리 컵은 '디바 컵'이었다. 아마 인터넷을 방황하고 뒤지면 다양한 모양과 브랜드의 생리 컵을 손쉽게 찾아 구할 수 있겠지만, 내게는 이걸 '마트에서 진열해놓고 판매한다'는 것이 신선하고 생경했다.

그다지 고민하지는 않고 곧바로 디바 컵을 구입해서 한동안 매우 잘 사용했는데, 내 몸은 또 뭐가 문젠지 이놈의 디바 컵 모양에 변형이 온 것도 아니면서 이제 다시 안 맞게 되었다. 다시 방치될 운명에 처한 나의 작고 소중한 생리 컵.


여자의 몸으로 태어나버려서 안타깝게도 매달 한 번씩 생리를 하는 운명에 처했다. 생리를 부르는 갖가지 멸칭들 대신 생리를 긍정할 수 있는 '정혈'이라는 단어를 쓰자는 페미니스트들도 있지만, 나는 그냥 '생리'라는 단어가 더 익숙하다. 나에게는 '생리'는 부정적인 느낌 없이 그냥 자연스럽고 생의 일부처럼 느껴지는 단어기 때문이다. 아무튼 해도 좆같고 안 해도 좆같은 생리여.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캐나다 오기 직전에 '다낭성 난소 증후군'을 진단받고 피임약 처방을 받았다. 피임약을 먹는 동안은 제때에 생리를 했고, 한국에서 처방받아 온 피임약을 다 먹은 직후 오래도록 비교적 규칙적으로 생리를 하곤 했다.

그러다가 최근에 또 한 6개월 정도 생리가 멈췄길래 패밀리 닥터를 만나 검진을 받고, 또다시 피임약을 처방받아 복용을 시작하게 되었다.


대충 말해도 내 주변의 다른 여성의 몸을 가진 친구들과 비교를 했을 때, 나는 생리가 늘 불규칙적이었고 그래서 1년에 12번을 하는 게 아니라 한 대여섯 번 정도 하는 꼴이 되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생리를 하면서 사용하는 생리 용품들이 매번 그렇게 아까웠다.

처음에는 모두 그렇듯 일회용 생리대로 시작을 했는데, 엄마는 생리가 너무 많이 묻어 나온 게 아니라면 자꾸 버리지 말라고 하곤 했다. 생리대는 너무 비쌌으니까. 그런데 또 중학교 3학년 때 담임이던 공주 선생님은, 생리 중엔 화장실을 갈 때마다 피가 한 방울이라도 묻어 있으면 꼭꼭 생리대를 갈아야 한다고 가르쳐주셨다. 공기에 노출된 생리대의 그 한 방울짜리 피에 균이 번식하기 쉬운 환경이 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일회용 생리대는 비쌀 뿐만 아니라 착용감도 별로 안 좋고 뒤처리도 영 성가시다. 꽁꽁 잘 싸맨다고 싸매도 휴지통에 들어가면 어김없이 헤벌레 풀어져 속내를 다 드러내버리는 걸 보면, 숨기기 위해 제작된 건 아닌 듯싶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그다음은 탐폰이었다. 몸속에 삽입하는 일회용 생리 용품이었다. 생리대에서 벗어나 탐폰을 알게 된 순간에는 그야말로 할렐루야를 외치고 싶을 정도였다. 생리대보다 훨씬 착용감이 덜하고 덜 불편한 데다가 뒤처리도 어렵지 않았다. 그냥 휴지통에 넣고 그 위로 휴지를 얹어버리면 감쪽같으니까!

그런데 생리대도 탐폰도, 한 번 사용하고 버려지는 일회용품이라는 점에서 사용할 때마다 죄책감이 자꾸 나를 짓눌렀다. 그런 죄책감 같은 거 모르고 살면 편했을 텐데, 안타깝게도 그러지 못했다. 특히 탐폰은 버려지는 플라스틱이 자꾸만 내 몸에 축척되는 것만 같아서 괴로웠다.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처음 시도했던 생리 컵에서 장렬한 실패를 맞이하고, 캐나다에 오자마자 구입한 두 번째 생리 컵인 디바 컵을 주구장창 잘만 사용하다가 최근에는 새로운 생리 용품을 구입했다.

최근이라고 하기엔 벌써 1년도 더 전에 구입한, "재사용 생리대"다. 함께 독서모임을 하는 Y님의 추천으로 몬트리올에 본사를 둔 '요코 패드'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알파벳 O위에 점이 두 개 찍혀있는 브랜드명인데 내가 프랑스어를 할 줄 모르니 정확한 발음은 알 수가 없다.

재사용 생리대는 일단 손이 많이 간다. 찬물로 씻으면서 핏물을 다 빼줘야 하는데 여간 손이 시려운 게 아니다. 그래도 귀찮음을 감수할 만하다. 환경을 보호하고 있다는 거창한 생각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래도 일회용 생리 용품을 쓰는 것보다는 죄책감이 덜하기 때문이다.


재사용 생리대 말고 생리 팬티도 추천을 받았는데, 재사용 생리대에서 만족을 하고 있어서 당분간은 새로운 생리 용품을 살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직은 이걸로 충분하다.


아참, 그리고 생리용품뿐만 아니라 처음 보는 피임 기구도 드럭 스토어에 발고 있었다. 여성용 콘돔이라고 할 수 있을지, 여성의 몸에 삽입하는 일회용 피임 기구인데, 아직 써볼 엄두는 안 나서 아직 써보지는 못 했다. 그래도 이런 옵션이 하나 더 있다는 걸 알게 된 것만으로도 어쩐지 내가 더 자유로워진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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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요코패드 공식 홈페이지

https://www.okocreations.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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