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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연 Apr 01. 2022

지구 끝의 온실 - 김초엽

멸망한 지구에서 살아남은 식물들

지구 끝의 온실

김초엽


김초엽의 첫 SF 장편 소설이 나오자마자 구매는 곧바로 했지만 막상 'SF 장편'이라는 무게감에 짓눌려 차마 읽기를 시작하지 못하고 꽤 묵혀두었다. 독서모임에서 김초엽의 첫 단편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함께 읽고(내게는 두 번째 통독이었지만) 어쩐지 오래 전에 사두었던 그의 장편집도 읽어낼 수 있을 것만 같아 첫 페이지를 펼쳤다.

다소 낯선 세계관과 용어들과 설정에, 과연 이게 잘 몰입이 될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프롤로그는 친절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부분을 넘어서니 나는 어느 새 멸망한 지구에서 생존을 위해 폐허를 탐사하는 탐험가 중 하나가 되어 있었다.



제니퍼 로렌스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을 맡은 넷플릭스 영화, <돈 룩 업 Don't Look Up>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혜성이 지구로 곤두박질 치는데, 저들 살겠다고 우주선을 타고 지구 밖으로 도망치는 몇몇 사람들. 그 사람들은 아마 <지구 끝의 온실>의 세계에서 분명하게 돔 안의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을 사람들일 것이다. 타인을 착취하며, 그 착취가 정당하다며 합리화하고 제 살을 찌우기에만 급급할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지구 종말의 날까지 갈 필요도 없다. 이미 세상은 '타인의 죽음을 아무렇지 않게 지켜보는 게 가능했던 사람들만'이 부를 축척하고 떵떵거리며 사는 곳이 아니던가. 아직 그들이 '최후의 인간'이 아닌 것이 소소한 위안일지도 모르겠다.


이미 세상은 종말을 향해 빠른 속도로 걸어가고 있다고들 한다. 여전히 자신만의 돔을 짓고 그들만의 왕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외면하고 싶은 진실이겠지만. 그들의 욕심이 지구 종말을 가속화시킨다는 것도 애써 쳐다보지 않은 채 영원히 그렇게 살겠지만. 역시 그런 인류가 만드는 세계는 '오래가진 못할'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꿈도 희망도 없는 멸망의 한 자락에서도, 식물같은 사람들이 있었다. 인류가 틔운 종말의 싹을 너무도 손쉽게 말려버리는 식물들. 식물같은 사람들.

작가의 말에서 김초엽이 아버지와 나눈 대화 한 문장으로 이 소설을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식물은 뭐든 될 수 있다."라는 말. 그러니까 타인을 착취하려 하지 않는 인간은 "뭐든 될 수 있다"는 말처럼도 들렸다.

<지구 끝의 온실>에서는 식물이 절로 자라서 스스로 퍼져 나가지 않았다. 지구를 재건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살았던 유토피아를 다른 곳에서도 만들고자 했던 사람들이, 그 마음을 지구 곳곳에 싶었고, 그 희망은 빠르게 싹터서 무서운 속도로 퍼져 나갔다.

어떤 식물은 몇 백 년을 물 한 모금 없이 말라 비틀어진 채로 지내다가, 단 한 방울의 물만으로도 빠르게 증식한다고 했다. 어떤 식물은 특정 조건만 충족되면 언제든 꽃을 피우기도 한다고 했다.

그러면 인류가 멸망한 지구에서 살아남는 것은 분명 식물일 것이다. 그리고 그 식물로부터 양분을 얻은 동물들이 다시 자라고 번성하여, 또 현생 인류와 같은 다른 인간종이 문명을 이루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결국 이기는 것은 식물이겠지만, 자신이 이겼다는 자각도 없이 또 그저 '내일'을 살아가겠지.


프림 빌리지에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 그랬다. 끈질기게 살아 남아서 세상을 구해낸 사람들. 자신들의 행위가 지구를 재건하는 데 일조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서, 그렇게 하루 하루를, 매일을 쌓아나간 사람들. 과연 그들의 승리라고 할 수 있었다.


이야기 속에는 많은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멸망 속에서 삶을 지키던 지수 씨, 레이첼, 나오미와 아마라,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세상에 전달하는 매개체가 되어준, 재건된 지구에서 식물을 연구하는 아영. 한 명 한 명의 개성이 잘 돋보이고 조화롭게 어우러져서 이야기의 큰 흐름을 만든다.

지수 씨 이야기를 읽을 때면, 분명 한국 사람이라 명기되어 있었지만, 어쩐지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에 등장한 나이든 '사라 코너(린다 해밀턴 분)'를 연상하게 되었다. 온실을 벗어나지 않고 식물 연구에만 매달렸던 레이첼을, 처음엔 탑에 갇힌 공주처럼 생각했다가 사이보그라는 설정이 후반부에 드러나자 갑자기 인간미 없는 로봇이 덧씌워졌다. 아마라와 나오미는, 프롤로그에 등장한 이름만으로 유츄했을 때, 일본인일 거라 지레짐작을 했지만, 웬걸, 에티오피아가 고향인 자매였다.

여러 사람의 모험이 돌고 돌아, 그리고 서로를 향한 사랑이 뒤엉키고 섞여서, 지구는 푸른 빛을 되찾는다. 모두의 힘이었다.


멸망의 끝에 살아남게 된다면, 나는 기꺼이 스스로 식물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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