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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연 Apr 17. 2022

1차원이 되고 싶어 - 박상영

점이 되어 사라지고 싶었어

1차원이 되고 싶어

박상영


점이 되어 사라지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점보다 더 작은, 점도 아닌. 그야말로 1차원 세계에서조차 존재하고 싶지 않았던. 존재 자체가 너무 무거웠던 시간들. 내 숨의 무게에 내가 짓눌렸던 순간들.

박상영의 <1차원이 되고 싶어>는 그 시절의 나를 날것으로 다 까발리는 느낌의 소설이었다. 소설 속의 배경은 내가 나고 자란 동네의 배경과도 너무 닮았고, 주변 인물들도 나, 혹은 내 주변의 친구들의 특성을 하나씩 가져다 놓은 듯 비슷했다. 작가의 약력을 살피니 나와 비슷한 또래여서 이런 이야기가 나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P. 40. 바깥에서 축제가 벌어지는 동안 나는 더 철저히 혼자였다. 모두가 하나가 된 세상에 속하고 싶지 않다는 치기 어린 반항심이 들면서도 단 한순간만이라도 어딘가에 속해 보고 싶다는 과장된 고독감이 나를 휘감았다. 그러니까 제발 누군가 나를 이 지긋지긋한 삶으로부터 구원해줬으면. 단 한 번만이라도 내게 손을 내밀어 줬으면.


어쩜 이렇게도 나의 중2~고3의 시기의 고민과 방황과 사색과 생각들을 베낀 듯 옮겨두었을까. 나만 이렇게 느끼는 건지 이 책을 읽는 모든 이들이 비슷한 감상을 느끼는 건지도 참 궁금했다.


나는 사춘기가 온 순간부터 늘 고향을 떠나고 싶어 했다. 고향에서 가장 먼 곳으로, 원래는 고등학교부터 고향밖에 있는 외부의 고등학교로 지원하고 싶어 했다. 작중의 '나'와 비슷하고도 다른 이유로 그게 여의치 않아서 고향의 고등학교로 진학했지만, 그래서 나는 나를 더 고독하게 만들었다.

약간의 PTSD가 책을 읽는 내내 잔잔하게 흘러들었다. 나의 십 대 시절의 치기 어린 반항과 고민, 고뇌와 고통이 십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희미했던 고등학교 시절의 악몽에 색깔이 덧입혀져 다시 현실로 돌아온 것 같았다.


한국 남자들이 군대를 다시 가는 악몽을 꾸는 걸 가장 끔찍하게 여긴다던 것처럼, 나는 고등학교를 다시 다니는 것이 나의 가장 끔찍한 악몽이었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 나밖에 몰라서 타인에게 멋대로 상처 주던 시절, 그러면서 나도 함께 상처받았던 그런 날들.

나는 '나'이기도 했고, '윤도'이기도 했으며, '태리'일때도 있었고, '무늬'이기도 했다가, '희영'이 되기도 했다. 나를 적당히 숨기고 살아야 했고 또래들 속에 잘 섞여서 지내야 했는데 도무지 버티기 힘든 순간들이 왜 그렇게도 많았는지 모르겠다. 내가 사랑했던 '윤도'와 내가 외면한 무수한 '태리'들을 떠올렸다. 부정적인 감정을 건설적인 방향으로 쏟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무늬'도 되었는데, 내가 아끼는 사람을 위해 기꺼이 타인을 상처 입히려 드는 '희영'에게서도 내 모습이 있었다.

잊었던, 숨겨두었던 기억들이 끊임없이 범람했다. 책을 다 읽은 후엔 도저히 잠이 들 수 있을 것 같지 않았지만, 의외로 아주 푹, 잘 자고 일어났다.

어떤 기억은 한 번 넘치게 흘러야 하는 것도 있는 법인 것 같다.


영원히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싶었던 시기를 지나서, 지금은 스스로가 이미 점이 되어버린 기분이다. 하나의 점. 3차원이 버거울 때 언제든 작아질 수 있는 1차원의 존재.

모두가 그런 시기를 다 거치지 않을까.


사실 박상영 작가의 소설이 너무 인기를 끌어서, 더 읽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괜히 너도 나도 다 읽는 책이면 굳이 안 읽고 싶어 지는?) 독서모임에서 이 책을 강력 추천해주신 한 분이 계셔서 읽게 되었는데, 조만간 <대도시의 사랑법>도 읽게 될 것 같다.


여담이지만, 책 읽으려고 전자도서관에 예약을 걸었는데, 처음 예약 걸어둔 날이 3월 24일, 그 당시 대출 예정일은 6월 15일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대출 예정일이 4월 16일로 바뀌더니, 막상 14일에 들어가 보니 이미 대출된 상태였다(!) 반납일이 5일밖에 안 남아버려서 조금 부랴부랴 읽은 감이 없지 않아 있었던 것 같았는데, 그래도 작품 자체가 흡인력이 좋아서 하루 만에 호로록 읽어 내렸다.

교보문고 앱에 연동된 성남시 전자도서관 처음 이용해 봤는데, 좋은 시스템이지만 대출 예정일이 바뀌면 푸시 알람이라든지 알람을 좀 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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