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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연 Mar 30. 2022

하용가 - 정미정

하용가

정미정


이 소설을 올해 3월 9일 이전에 다 읽었다면 나의 감상은 아주 달랐을 것이다. 아마 희망차고 밝은 생각을 하며, 그래, 우리가 지금껏 해온 일들이 이렇게 많았지, 대단했지. 앞으로 우리는 혐오가 없는 세상으로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어! 하며 기쁘게 책을 덮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아니겠지만)

그런데 3월 9일 대선 결과를 보고 나서 책의 나머지를 다 읽으니, 자꾸만 절망이 노크를 했다. 이만큼 하면 뭐해, 도돌이표처럼 다시 뒤로 후퇴해 버렸는걸.


<하용가>는 '소라넷'을 폐쇄하기까지 디지털 성폭력에 맞서 싸운 여성들의 투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서 '다큐소설'이라고 붙여놓았다. 소설이지만 실제로 있었던 일에 기반하여, 그래서 사건의 사실적 흐름에 따라 쓰여있다.

<82년생 김지영>이 인기를 끌었을 때, '세상에 이렇게 사는 여자는 없다.'며 너무 극단적이라고 말하는 남자들이 참 많았다. 그들이 <하용가>를 읽는다면, 또 소설이라고, 너무 극단적으로 꾸며냈다고 말하겠지. 하지만 <82년생 김지영>을 각종 통계가 뒷받침하듯, <하용가>는 '소라넷'이라는 사이트와 그 사이트가 폐쇄된 역사가 단단히 뒷받침하고 있었다. 그렇게 살았던, 그렇게 싸웠던 여자들이 있노라고.


여성들에게 아무런 불행이 닥치지 않는 세상을 꿈꾼다. 폭력에 노출되지 않을 자유를 마음껏 누리는 세상. 인생의 최대 고민이 기껏해야 사랑하는 사람과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할 수 있을 것인가가 전부인 삶. 극복해야 할 아픈 과거가 없는 여성의 삶을 원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소설이 더 많이 읽혀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픈 과거를 딛고, 현실의 불합리함에 맞서 싸우는 여성들의 서사라서가 아니다. 이게 지금의 현실이기 때문이라서다.

소라넷을 폐지한 '메갈리아', N번방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법정에 주동자들을 머리채를 잡아 끈 '추적단 불꽃' 모두 싸우는 여성들이다. 그리고 이 싸움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P. 334. 물론 기화영이 그 모든 일을 잊을 수 있게 된 건 아닐 것이다. 그런 건 잊을 수 없는 일이니까, 이미 자신의 삶 일부가 되어버렸으니까. 그러나 그 일을 기억하는 것이 슬픔과 무기력을 동반하는 고통스러운 일만은 아니라는 것, 그 기억을 품고서도 미래를 꿈꾸고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것, 그럴 수 있는 힘이 기화영 자신 안에 있음을 이제는 의심하지 않는 것, 그것이 생존자로서 기화영의 존재가 일깨워주는 의미였다.


성폭력 '피해자'로서의 여성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생존자'로서의 여성을 다양한 각도에서 보여주며 마무리하는 이 소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여성들의 한 부분이자 전체다.


문장이 쉽고 간결하여 빠르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었다. 내용만큼은 마음의 제동을 자꾸 걸었지만, 다행히 내가 캐나다에 살아서, 한국과 물리적 거리가 있어서, 조금은 더 수월하게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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