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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연 Aug 16. 2022

파과 - 구병모

파과

구병모


영문판 '파과'를 서점에서 발견하고 구입하면서, 올 초부터 읽기 시작했던 한글판을 완독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장황한 문장, 길고도 길어서 세네 줄 이어지는 문장, 기어코 한 문장이 한 문단이 되어버린 문장들이 넘실거리는 책이었다. 이런 만연체 문장의 책을 얼마 만에 읽는 걸까.

읽기 시작한 초반에는 만연체에 영 익숙해지지 않아서 속도가 퍽 나질 않았다. 문장 속에서 자꾸만 길을 잃고 헤매는 기분이었는데, 문득 그간 나의 독서가 꽤 편협했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자꾸만 쉬운 문장으로만 이루어진 글이 잘 쓴 글이라고 생각했던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어릴 적의 나는 만연체를 참 좋아했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내가 썼던 문장은 늘 장황했다. 그래서 퇴고할 적이면 그 장황한 문장을 끊어내서 간단하게 만드는 연습을 많이 해야만 했다. 한번에 읽히지 않는 문장은 의미를 전달하는 데 장애가 되고, 의미가 전달되지 않는 문장은 끝끝내 독자를 찾지 못하고 홀로 부유하게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구병모의 <파과>는 결코 홀로 부유하는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았다. 만연체에서도 박진감을 느낄 수 있구나를 보여준 책이었다.


쉬운 소설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분명 끝을 알 수 없는 문장의 향연에 숨이 막힌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어려운 문장 읽기를 포기해버리면, 우리에게 남은 것은 밈이 되어버린 간결하고 단순한 문장들 뿐일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의사 전달은 충분히 되겠지, 오히려 만연체보다 적확한 의사 전달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하지만 짧아진 문장만큼 사고도 짧아지면, 결국엔 늘 하게 되는 생각만 머릿속에 남게 되는 법이다.

나는 어떻게든 내 머릿 속에 있는 문장을 늘려보고 싶다.

<파과>의 소재도 퍽 흥미롭다. 킬러 할머니.

정말 아무런 상관이 없겠지만, <파과>의 '조각'을 보면서 소설 <파친코>에서 노인이 된 '선자'를 떠올렸다. 책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땐 <파친코>를 읽기 전이었으니, 처음부터 선자를 떠올리진 않았다. 소설 <파친코>도 다 읽고 드라마가 된 <파친코>도 현재 공개된 시즌 1의 에피소드 8까지 모두 보고 난 후에는, <파과>의 '조각'과 <파친코>의 '선자'는 미묘하게 겹쳐 보였다. 아마도 자신에게 주어진 삶으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똑바로 마주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닮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강인한 얼굴과 단호한 행동력. 그러면서도 결코 잃지 않은 다정함. 어려운 시절을 버텨낸 여자들의 모습에 다름없었다.

또한 다음 웹툰의 <할매>라는 킬러 할머니 이야기도 있다. <파과>의 '조각'을 연상시키는 모습은 남들을 방심시키는 '할머니'가 킬러로 활약하는 것 말고는 없지만, 연계해서 읽어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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