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 그리고 나의 생일.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여성의 날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어쨌든 이제는 3월 8일이 '세계 여성의 날'이라는 것은 보편적인 상식으로 자리잡지 않았나 싶다.
나는 내가 스무 살이 되는 해에 알았다. 갓 대학생이 되었고, 학교 교양강의동 앞에서 여성주의 동아리 모집(?) 같은 것을 하는 중이었다. 자세한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내 생일이 세계 여성의 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 나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전까지 나는 내 생일을 타인에게 기억시키는 방법으로 한국을 남과 북으로 가르는 38선을 종종 이야기했다. 좀 더 나이 많은 어르신들은 38 광땡을 이야기하더라.
어쨌든 나는 여성의 날을 기념하여, 나의 생일을 기념하여 페미니즘을 알게 되었다.
내 생애가 페미니즘적 고찰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페미니즘을 공부하며 알게 되었다. 나는 내 또래의 수많은 친구들처럼 여자아이로 '살아남았'고, 가정에서 학교에서 남성들과 차별을 받으며 자랐다. 차별이 차별인 줄도 몰랐던 적도 있었지만, 한 번 차별로 인지하고 나서는 불평등을 토로하게 되었다. "왜 나는 저녁 먹기 전에 귀가해야 하고 남동생은 열 시가 넘도록 귀가하지 않아도 아무 말을 안 하죠?"
부모세대는 우리에게 평등한 기회를 주는 것처럼 말하였지만, 내가 당한 것은 분명한 차별이었다. 그리고 나는 수많은 차별을 딛고 성인이 되었고, 아직까지도 차별 속에 살아간다.
성차별만이 여성으로서의 삶의 고된 부분은 아니었다. 일전의 브런치 발행 글인, '나의 미투, 나의 위드유'에서 밝혔듯, 나는 서른 해를 살아가며 숱한 성희롱, 성추행에 노출되었고 성폭행도 간간히 당했다. 내가 겪은 성폭행은 나를 위축시키기도 했으며, 페미니즘을 어느 정도 공부한 후에는 더더욱 나를 힘들게 만들기도 했다. "나는 페미니즘도 공부했는데, 성폭행을 당할 리가 없어." 자만이었다. 성폭행은 위계와 권위, 권력의 문제이기도 했지만 친밀도의 문제이기도 했다. 사랑하는 남자 친구에게서도 성폭행을 당할 수 있었으며, 정말 친한 친구에게도 당하기도 한다. 이것은 내가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상대방이 나를 존중하지 않으면 언제든 벌어질 수 있는 일이었다. 결국은 상대방을 한 사람의 인격체로 보지 않아서 발생하는 폭력의 문제인 것이다.
나는 페미니스트이다. 페미니즘을 공부했고 공부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공부할 것이다. 페미니즘은 완성된 학문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 힘을 만들어가는 '의식'이다. 그래서 나는 페미니즘을 아주 잘 안다고 말하지는 못하더라도 내가 페미니스트인 것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어쩌면 나는 페미니스트로 태어난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서른 해 전의 세계 여성의 날에 태어난 것은 어떤 운명이라고까지 느껴진다.
내가 하는 발언이나 생각이 모두 옳지는 않을 수도 있다. 과거의 내가 했던 말들이나 돌이킬 수 없는 흔적들이 나의 과오들을 지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내 지난 잘못들을, 내가 지금도 하고 있을지 모를 실수들을 혹은 앞으로 만들 잘못들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 이전에 잘못했던 것들을 반성하고 앞으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자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고 싶다. 누구나 실수는, 잘못은 하니까. 그런데 나쁜 것은 실수나 잘못을 인지하고서도 고치지 않는 것이니까.
나는 고치고 싶다. 그래서 나의 잘못들을, 실수들을 직시할 것이다. 인간은 변화 발전하는 존재라는 것을 대학생 때 학생운동을 하며 배웠다.
그래서 나의 삶은 이전에도 앞으로도 페미니즘적 투쟁으로 이어질 것이다. 내가 변화 발전하듯, 이 사회도 곧 변화 발전할 것이다. 사람들의 의식에도 페미니즘의 싹이 자랄 것이다.
We Should All be Feminist.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 소수자와 약자에 공감하는 마음을 갖고, 제도적으로 사회적 약자를 돕는 체계를 마련하여야 한다. 그래야 내가 약자가 된 차례가 왔을 때에 나를 돕는 사람이 나타난다.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옳은 것은 옳다고 말할 줄 알아야 하고, 잘못된 것에 분노할 줄 알아야 한다. 잘못된 것을 보고도 눈을 돌리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는 사회가 될 것이다.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성별을 이유로 부당한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누구든 페미니스트라고 할 수 있다. 의식적으로 사상적으로 체계를 가지려면 책을 읽고 사람들을 만나 토론을 하는 과정을 거칠 수도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성별이 차별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페미니스트일 수 있다.
나는 페미니스트로 태어나서 페미니스트로 자라났다. 내가 세계 여성의 날에 태어난 것은 그런 운명을 미리 점 지어 둔 것은 아닐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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