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의 기적 같은 사랑 이야기
지금 만나러 갑니다
*주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일본 소설이 원작이고, 일본에서 이미 영화로도 드라마로도 만들어진 작품의 한국판 리메이크 작품이라고 한다. 일본 원작 중에 그 어떤 것도 보지 않았고 스토리에 대한 기대도 별로 없이, 단지 '손예진의 멜로 귀환'이라는 반가운 소식을 듣고 극장으로 달려갔다.
영화 자체에 대한 기대가 별로 없었고 새드엔딩이 기정사실화 되어 있는 바, 슬프면 마음껏 울고 즐거우면 잔뜩 웃다가 나와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볍게 보러 갔다. 그런데 생각보다 이야기 구성이 잘 짜여 있고 나름의 반전도 있어서 마냥 시간 낭비를 한 기분은 아니었다.
영화 결말부에 깜짝 등장한 배우 박서준의 출연에 영화관 내의 관객들이 일제히 "어머" 하는 탄성을 내질렀는데, 흡사 영화 <1987>에서 마스크를 벗은 강동원의 얼굴이 등장한 것과 같은 비현실감이었던 모양이었다. 정작 나는 이 배우가 누군지 몰라서 사람들이 왜 탄성을 내지른 것인지, 이 배우가 그렇게 잘 생긴 사람인 것인지, 누구나 다 알아보는 배우였던 것인지 머릿속에 물음표만 잔뜩 띄웠다. 영화 끝난 후에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 특별 출연자를 검색해 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박서준 외에도 공효진이 깜짝 출연해 관객들의 웃음을 사는 장면도 있었고 그런대로 영화의 분위기를 환기시키며 마냥 어둡지만은 않게 잘 이끌어 주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비가 오는 날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수아(손예진 분)는 세상을 떠났다. 거짓말처럼 1년 후 장마가 시작된 어느 여름날, 기적처럼 수아는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녀는 우진(소지섭 분)도 그녀의 아들 지호도 기억하지 못했다. 자신을 기억하지 못해도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진과 지호는 행복해하고, 수아에게 첫 만남, 첫사랑, 첫 데이트와 같은 이야기들을 들려주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법처럼 수아는 우진과 다시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장마가 끝나가고 수아는 무언가를 눈치챈 듯 지호에게 자신 없이도 잘 지낼 수 있도록 여러 가지를 가르친다.
비가 그치고 결국 수아는 떠나는데, 떠나기 전 수아가 남겨둔 일기를 읽고 우진은 진실을 알게 된다.
사랑은 기억일까 감정일까?
기억을 잃고 1년 만에 돌아온 수아에게 추억을 하나씩 들려주는 우진과, 우진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 사랑에 빠지게 되는 수아의 모습을 보며 내내 이 질문을 지울 수가 없었다. 사랑이라는 것은 과연, 기억일까 감정일까? 사랑이라는 것이 감정이라면 기억을 잃더라도 사랑했던 대상을 다시 알아보고 또다시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사랑이 기억이라면, 사랑했던 기억이 사라진다면 사랑하는 감정마저 사라지는 것일까?
물론 이 질문은 영화가 끝나면서 이 영화와는 상관이 없는 질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시시하게 마무리가 되었지만, 기억과 사랑을 다루는 영화들을 보면서 했던 질문이 다시 떠올랐던 것은 이 영화의 컨셉, <사랑했던 사람이 1년 만에 기억을 잃고 돌아온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리고 우진이 자신의 기억을 들려주면서 수아가 다시 우진과 사랑에 빠지는 것이 초반에는 흐름상 부자연스럽고 억지스럽다고 생각도 들었지만, 결말부를 보게 되면 이 역시 기우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결국 수아는 기억을 잃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어쩌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날일지도 모른다.
우진은 수아를 보고 반했던 날을 수영장에서 물에 빠진 수아를 구했던 날로 기억을 한다. 수아는, 나중에 이야기가 밝혀지지만, 비 오는 날 좁은 골목 맞은 편에서 걸어오다가 먼저 우산을 접고 길을 비켜준 남자아이의 작은 배려로 사랑에 빠진다. 정말 단 한순간이고, 어쩌면 아무 날도 아닌 날들 중 하나였겠지만 그들에게는 각자의 '어떤 날'이 된다.
다시 만나서 사랑을 쌓게 되면서, 처음 느꼈던 그 두근거림을 되새김질하고 서로를 애틋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커지는 것을 영화 내내 지켜보는데 내 마음도 간질간질했다. 나에게도 그런 사랑이 찾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나를 그렇게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길 바라는 마음이 모두 간절해졌다. 아마 모든 이들이 그렇듯이.
내가 꼽은 최고의 장면은 수아와 우진이 서로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은 아니었다.
사실 영화 내내 수아의 감정선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 어리둥절했었는데, 결말부에 펼쳐지는 수아의 이야기 속에서 비로소 수아의 마음을 알 수가 있게 되었다. 수아는 좁은 골목길에서 먼저 우산을 접고 수아가 지나가도록 배려해준 그 남자아이와 사랑에 빠졌고, 그 남자아이는 그대로 너무 잘 자라서 여전히 수아가 사랑할 수 있는 남자로 남았다. 내가 좋아하는 장면은 바로 골목길을 수아가 지나가며 고개를 돌려 남자아이, 우진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그대로 사랑에 빠지는 그 부분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운명, 서른두 살에 죽을 것을 알고서도 우진을 만날 것을 결심하고 그에게 달려가는 장면을 보며 많은 생각에 잠기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나라면 나의 미래를 알고 나서도 그렇게 행동할 수 있을까? 회피하려 하지 않을까? 극 중의 수아는 자신이 누리게 될 짧고 짙은 행복을 택한다. 그 행복을 위해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청초하고 부드러운 손예진의 멜로 복귀는 성공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녀의 전성기라고 불렸던 <내 머릿속의 지우개> 당시의 모습이 그대로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오히려 그때보다도 더 성숙하고 아름다운 사람이 된 것 같다. 밝게 웃는 모습, 눈물을 꾹꾹 참으며 아들 지호에게 너를 만나러 온 것이라고 말하는 모습,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닿지 않는 것이 없었다. 그 모습 자체로 '사랑에 빠진 사람'이었고, 누구라도 그녀와 사랑에 빠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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