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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오 Sep 29. 2020

<오의 의미> 7. 9월의 편지

여기 사람 있어요

안녕하세요, 오의 의미를 쓰는 리오예요. 오랜만이네요. 바쁘단 핑계로 두 달 만에 찾아온 것이 왠지 어색하고 머쓱합니다. 그동안 잘 지내고 계셨나요?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이 편지를 읽으실지 궁금하네요. 


지금 저는 신안 자은도 백길해수욕장에 있어요. 누구는 모래를 파고, 누구는 식물을 찍고, 누구는 맨발로 걷고 있네요. 오늘은 배우는 날이거든요. 아시겠지만, 공장공장에는 한 달에 한 번 배우는 날이 있어요. 다른 지역에 가서 잘 만들어진 곳을 공부하거나, 이미 잘하고 계신 분들을 찾아가 직접 이야기를 듣거나, 근처 지역에 가서 몰랐던 역사를 배우고 오기도 하지요. 눈코 뜰새 없이 바쁘면서도 굳이 시간을 내려는 이유는. 음, 글쎄요. 


살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나요? 제게는 종종 그런 순간이 있어요. 수많은 별을 보거나, 크고 작은 곳에서 전시를 하거나, 사랑하는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 모두 제게는 조금 더 살고 싶어지는 순간이에요. 견디는 마음이 벅찰 때는 이 기억을 조금씩 꺼내요.  


굳이 시간을 내려는 이유에 대해 얘기를 하다 말았죠. 제가 더는 살고 싶지 않을 때가 종종 찾아올 때, 살고 싶어진 순간이 언제인지도 모를 정도로 캄캄할 때 힘이 됐던 시간에는 꼭 혼자가 아니었어요. 당연하게도요. 그래서 사랑하는 이들에게 작게나마 반짝이는 기억을 만들어주는 게 요즘의 기쁨입니다. 빚을 갚는 기분이에요.  


친구들이 다시 주변으로 모였네요. 누구는 책을 읽고, 누구는 카드 게임을 하고, 또 다른 누구는 정성스럽게 무화과 껍질을 벗기고 있어요. 무화과. 요즘 무화과 철이거든요. 가득 찬 12인승 밴에서 누군가가 “무화과 펀딩 진행합니다!”라고 장난스럽게 외친 말에 오백 원, 천 원이 성큼성큼 모이더니 만 원이 만들어졌어요. 덕분에 더 추워지기 전에 무화과를 먹었습니다. 요즘 식재료에 제철이 없다지만, 그래도 저렴한 가격에 신선한 과일은 늘 맛있어요. 


조금 시시할지 모르겠지만. 목포의 일상은 이렇게 흘러갑니다. 누군가가 지독하게 미울 때도 있고, 얼굴만 봐도 배가 아프도록 웃음이 나올 때도 있어요. 그러다 슬금슬금 마음이 캄캄해질 때 이 기억이 언젠가 힘이 되겠지요. 


잘 지내고 계신가요? 꼭 그러시길 바라요. 멀리서, 멀리서 응원할게요. 


어딘가에 있을 당신을 위해 사진을 찍으며, 리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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