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그네 & 라디오 체조 - 가벼움과 대충의 비상구

booker 시리즈 제 10화

by 롬콤


몹시 뚱뚱한 거구의 중년 의사가 만면에 미소를 짓고,

1인용 소파에 떡하니 버티고 앉아 있다.

입을 여는 순간 한없이 가볍고 어린아이 같은 면모를 보이는 이라부 이치로 박사와

흰색 미니스커트를 입은 육감적인 몸매의 말 없고 락을 좋아하는 간호사 마유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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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그네>는 어릴 때 언니가 사놓았던 책으로 기억하는데, 중학교 때인가 처음 읽고 어디에도 본 적 없는 독특한 이라부 캐릭터와 스토리에 빠져서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리뷰를 쓰고 싶어서 한 번 더 가볍게 읽었는데 이제는 내용이 속속들이 다 생각난다. 한 6-7번은 읽은 것 같다.

찾아보니 지금은 리뉴얼이 많이 된 것 같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빨간 오리지널 책은 1쇄, 2007년에 산 책이니 15년도 더 넘었다.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나 <스무 살, 도쿄> 등도 참 좋아하지만 가장 처음 좋아하게 됐던 이유는 <공중그네>였기에 꼭 한 번 리뷰를 쓰고 싶었다.

그런데 최근 서점을 갔다가 17년 만에 공중그네 시리즈가 돌아왔다길래, 너무 반가워서 냉큼 구입!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 나오지 않았을까 자주 검색하는 편이긴 하지만, 이렇게 우연히 발견하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아서 서점에 가끔은 들려줘야 한다.


2권을 묶어서 감상문을 쓰면 딱 좋겠다 싶어서 열심히 읽었다.

공중그네를 시리즈로 만든 것이 좋은 선택이었을지, 베스트셀러는 베스트셀러 그대로 남겨두는 것이 좋았을지 내가 내린 결론은 가장 마지막에 적었다.




한 줄로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5명의 환자가 엽기적인 정신과 의사를 만나 도통 현실감이 없고 제멋대로인 방식으로 치료를 해나가는 이야기이다.

오쿠다 히데오는 이라부라는 캐릭터를 통해 난리법석의 치료 과정을 아주 유쾌하게 풀어내는 한편, 결국 다시 한번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고 온전히 치유할 수 있는 건 자기 자신뿐이라는 하나의 일관된 메세지를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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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단공포증(끝이 날카롭거나 뾰족한 물질을 보고 비정상적인 감정적 동요나 공포를 느끼는 현상)이 있는 야쿠자, 걸핏하면 공중그네에서 추락하는 베테랑 곡예사, 여러 가지 충동에 시달리지만 특히 병원 원장이자 장인의 가발을 벗겨버리고 싶은 엄청난 충동을 제어하지 못하는 정신과 의사, 전형적인 입스(압박감이 느껴지는 시합 등의 불안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근육이 경직되면서 평소에는 잘 하던 동작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는 현상)인 줄 알았으나 잘나가는 신인에게 자리를 빼앗길까 두려워 공을 던지지 못하는 프로 야구선수, 자신이 줄곧 써온 작품의 줄거리나 캐릭터의 설정을 기억하지 못해 항상 비슷한 류의 소설만 쓰는 것 같은 강박증에 시달리는 인기 작가까지.



못 말리는 정신과 의사 이라부가 퍼뜨리는 요절복통 ‘행복 바이러스’!
늘 기상천외한 사건을 몰고 다니는 이라부는 언뜻 생각하기엔 의사 가운보다 환자복이 어울릴 것 같은 캐릭터다. 환자를 결박해놓고 다짜고짜 주사부터 찌르고, 그 모습을 벌겋게 달아오른 눈빛으로 지켜보는 막가파식 치료법, ‘사극에 나오는 처녀’를 연상시키는 간드러지는 웃음소리... 하지만 이 정도는 차라리 애교에 가깝다.
이라부는 환자들과 일거수일투족을 함께한다는 미명 하에, 하마 같은 몸으로 공중그네 서커스에 도전하기도 하고, 칼부림이 예사로 일어나는 야쿠자들의 담판 현장에서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갖은 훈수를 두기도 하며, 일탈충동에 시달리는 환자와 의기투합하여 육교에 기어 올라가 이정표를 슬쩍 고쳐놓기도 한다.
이처럼 황당무계지만, 이라부식 심리치료의 효과는 놀랍다. 도무지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던 환자들의 강박증은 기적처럼 치유되어버리고, 독자들은 유쾌한 웃음과 함께 가슴이 환해지는 감동을 맛보게 된다.
_공식 책 소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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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기 때문에 극적으로 표현된 부분이 대다수이기는 하지만, 사실 어릴 때보다는 어른이 되었을 때 읽어보면 와닿는 부분이 많을 거다.

어릴 때는 그저 스토리의 얼토당토않는 유머와 긍정적인 에너지에 희열을 느꼈다면, 스트레스나 강박증, 인간관계의 실패, 잘못에 대한 후회 등을 겪은 사람이라면 오히려 환자들의 입장에 공감하며 치유받는 느낌이 들 것 같다.

특히나 요즘은 예전에 비해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정신과에 가는 문턱이 낮아졌으니 말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어딘가 부족하거나 아파서, 라기보단 힘들었던 나를 털어놓고 하루라도 빨리 도움을 받기 위해 병원을 가기 시작했다.


정신과에 가는 사람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줄었다는 건 정말 긍정적인 신호다.

그렇지만 예를 들어 어떠한 노력 없이 수동적으로 약물의 도움만을 받으려고 하거나, 나의 힘듦만이 이 세상 전부인 것처럼 구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책 한 권을 읽는 게 더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100% 현실은 아니지만, 무조건 현실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상당한 위로와 공감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책의 좋은 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공중그네>는 삶의 무게에 짓눌려 있는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아낌없이 불어넣어 당신을 한층 가볍고 상쾌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우울증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을 위한 ‘이라부’식 처방전.
언뜻 보아 이 작품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별난 인간들이 무더기로 등장하는 단순한 코미디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작품을 찬찬히 읽다 보면 그 괴상망측한 인물들이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요, 그 얼토당토않은 해프닝들이 현대사회의 단편임을 깨닫게 된다.
작가는 암울한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적극적인 노력 없이 공허한 일탈충동에 시달리다가 급기야 우울증과 강박증에 빠지고 마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위트와 풍자로 포착해낸다. 그리고 앞뒤 재지 않는 낙천성으로 삶을 거침없이 밀고 나가는 ‘유희적 인간’ 이라부의 기행을 통해 쳇바퀴 속처럼 답답한 현실에서 탈출할 수 있는 비상구를 독자들에게 활짝 열어 보인다.
한마디로 이 작품은 크고 작은 강박증 한 가지쯤은 지니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쫄지 마, 인상 쓰지 마, 세상 사는 거 별거 아냐!”라고 외치는 이야기다.
_공식 책 소개 中


앞뒤 재지 않고 주변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고, 마치 어린아이같이 자기 자신이 하고 싶은 건 밀고 나가고, 깊은 생각이나 고민 없는 사람이 세상 살기 더 쉽다는 말이 저절로 생각나게 하는 사람이다.

나는 어떻게 해도 현실적으로 그런 사람은 못 될 걸 알기에, 주변에 이런 사람이 한 명쯤 있다면 내 삶이 조금 더 경쾌하고 행복해질까? 상상해보게 된다.

지금의 내 인생에도 큰 부족함이 없지만!





<라디오 체조>에서 이라부를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이렇다.

주식 투자로 갑작스레 억만장자가 되었지만 돈을 쓸 줄도 모르고 행복감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 화가 나도 화를 억누르다 과호흡 발작까지 오는 회사원, 과도한 책임감으로 광장공포증을 겪는 피아니스트, 새로운 환경에서 자기 자신처럼 살아가지 못하고 사회불안장애에 걸린 대학생 등등.

그리고 이라부는 마유미와 함께 뉴스쇼 방송에까지 출연하게 된다.


이전보다 스케일이 한 단계 커졌다. 그리고 이라부의 어머니가 등장한다던가 항상 거의 말이 없던 마유미의 비중이 늘어나고, <공중그네>에서 봤던 반가운 얼굴도 나온다.

팬데믹이 이야기에 녹아있는 부분도 좋았다. 이라부가 과거에 갇혀있지 않고, 함께 코로나도 겪고 여전히 건재하다는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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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에서는 다음와 같이 책을 소개한다.


* 뼈 때리는 진단과 기발한 치유, 본격 약방문 소설

* 조금의 가벼움과 약간의 대충이 필요한 우리에게

닥터 이라부가 선사하는 마법같이 편안한 웃음

*진단은 시작일 뿐, 본론은 닥터 이라부의 기상천외한 행동요법이다. 그가 쫓아다니면서 돈을 쓰게 만들고, 상공에서 끝말잇기를 시키고, 당신은 구제불능이라고 일갈하는 것은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 마음의 병을 앓는 이들이 제대로 잘못 걸린 줄 알았던 이라부의 치료법을 따라 서서히 치유되는 자신을 발견할 때, 우리 역시 스스로의 문제를 마주하고 또한 달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이라부가 가장 많이 쓰는 표현은 “괜찮아, 괜찮아”이다. 코로나 시절 웬만해서는 밖에 나오지 말라는 의미로 자주 쓰였던 ‘불요불급’을 이라부는 다른 의미로 사람들에게 돌려준다. “괜찮아, 적당히 해도 돼.”라고 계속해서 말해주면서 우리의 숨통을 트이게 하고 느슨하게 풀어주는 반가운 책이다.



오쿠다 히데오는 '이라부를 봉인한 지 오래다. 아무리 집필 요청이 와도 일관되게 쓰지 않기로 다짐했다. 작가로서 히트작은 버리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성공한 작품은 양날의 칼이라 자칫하면 자기모방이나 축소재생산의 늪에 빠져버린다는 이유에서다.

그런데 팬데믹 이후 계속되는 극심한 혼란과 불안을 마주하며 '이라부라면 어떻게 반응할까?'하는 장난 어린 호기심이 발동했다고 한다. 자유로운 영혼으로 흔들림 없이 마이 웨이를 걸어가는 이라부야말로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인물이니, 그의 귀환을 결심했다고. ('옮긴이의 말' 중에서)


하지만 나는 작가가 왜 오랜 시간 동안 공중그네의 속편을 쓰길 망설였는지 읽자마자 깨달았다.

나는 작가들의 자기모방은 즐기는 편이기 때문에 (작가가 걱정했던) 그 부분은 패스고, 오리지널 이라부의 매력이 어느 정도 반감된 느낌이 들었다.

하는 행동은 여전히 말도 안 되고 황당하고, 그러면서도 항상 핵심을 짚어낸다.

하지만 어딘가 미묘하게 어른스러워진 그의 면모가 오히려 매력을 감소시켰다.

17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만큼 작가가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것일 수도 있고 첫 책, 첫 캐릭터의 그 고유한 느낌을 살리기는 어려웠을 수도 있다.


두 책을 비교하자면, 역시 영화 시리즈에서 1편이 가장 재미있는 것처럼 <공중그네>의 매력이 훨씬 날 것이고 흥분된다.

그럼에도 언제나 옛 책의 주인공들은 현재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궁금한 독자이기에, <라디오 체조>는 반가운 책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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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진실은 진지함보다 웃음 속에 있다. 상승 욕구, 치열한 경쟁, 자의식과잉, 가면 속 자신과의 불일치에서 오는 혼란 속에 허덕이다 터지기 일보 직전까지 내몰린 우리에게 이라부는 살며시 숨구멍을 열어준다.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닌 한, 적당히 힘을 빼고 훌훌 털어내라며 토닥여준다.

무거움과 가벼움의 균형이 깨질 때 모든 문제가 발생한다. 그리고 덜어내야 비로소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얼토당토않은 공이었다. 이라부가 공 높이까지 뛰어오르며 방망이를 휘둘렀다.
곧이어, 창공에 쾌청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흰 공은 멋들어진 포물선을 그리며 펜스 너머 강 쪽으로 사라졌다.

모두, 입을 헤벌리고 바라보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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