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동피랑

6. 마무리와 새로운 시작 – 동피랑에서 피어난 사랑

by 목마르다언덕

동피랑의 밝은 분위기는 매일같이 이어져 갔다.

나의 마음은 언제쯤...


연희가 떠난 뒤, 태석의 일상은 다시 조용한 선에 들어섰다. ‘소리의 집’의 문은 매일같이 열리고,

무지개가 그려진 벽 앞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웃고 지나갔다.

사람들은 그 무지개가 가진 사연을 알지 못했다. 그저 아름답다며, 예쁘다며 셔터를 눌렀다.

하지만 태석에게 그 무지개는 기억이었다. 그리고 그리움이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풍경이지만, 그에게는 지나온 시간이, 말하지 못한 고백이,

떠나보낸 따뜻한 손길이 스며 있는 장소였다.


연희가 남기고 간 조용한 흔적들. 그녀가 그려둔 작은 별무늬와 창가에 남긴 연필 스케치,

아직도 카페 안쪽 벽에 걸려 있는 ‘지금 여기 있는 나를 잊지 말자’는 쪽지.

모든 것이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


어느 날, 비가 내렸다. 골목은 적막했고, 카페 안은 부드러운 클래식 음악으로 채워졌다.

태석은 혼자서 커피를 내리다가, 문득 밖을 바라보았다.

그 무지개 벽 앞에, 한 여인이 우산을 들고 서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조용히 벽을 바라보다가, 손가락으로 무지개의

아래쪽 문구를 따라 쓰듯 움직였다.


‘그리움은 지나가도, 기억은 남는다.’


태석은 조용히 다가가 그녀 옆에 섰다.


“이 무지개는 어떤 이야기에서 왔는지 궁금해하시나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했다.


“그냥… 여기, 누군가의 마음이 오래 머문 것 같아서요.”


그 말을 들은 순간, 태석은 마음 깊숙한 곳이 조용히 울리는 걸 느꼈다.

연희가 떠난 뒤에도 그녀의 마음은 여기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은, 또 다른 누군가의 공감 속에서 되살아나고 있었다.


그날 밤, 태석은 오랜만에 펜을 들었다. 카페 한쪽, 노트를 꺼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떠났고, 누군가는 남았다. 그러나 마음은 벽에 남아 서로를 기억하게 한다.

사랑은 끝나지 않는다. 형태를 바꿀 뿐이다.’


몇 달 후, 봄이 다시 찾아왔다. 진달래가 피고, 관광객이 늘었다.

그리고 어느 날, 연희가 돌아왔다.

그녀는 긴 여행을 마친 사람처럼 조용히,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예전보다 더 차분해진 눈빛. 그러나 눈가에 스치는 미소는 예전보다 더 단단해 보였다.


“무지개, 아직 있네.”


그녀의 말에 태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릴 수 있었어.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으니까.”

연희는 벽화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이번엔… 나를 위해서 그리고 싶어. 누굴 위한 것도, 무슨 의미도 없이. 그냥, 나로서.”


태석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웃으며 그녀 옆에 붓을 건넸다. 연희는 그것을 받아 들고, 벽 앞에 섰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새로운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어느 날, 한 아이가 카페 앞 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건 뭐예요? 무지개 말고 옆에 있는 그거요.”


태석은 아이 옆에 앉으며 대답했다.

“그건, 무지개 너머의 이야기야.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아이의 눈이 반짝였다. “그럼 다음에 또 보러 와도 돼요?”

“그럼, 언제든지.”


카페 안에는 꽃차의 향기가 피어올랐고, 바깥엔 봄바람이 부드럽게 스쳐 지나갔다. 무지개 벽 너머, 두 사람의 이야기는 그렇게 또 하나의 시작을 맞이하고 있었다.

연희와 태석은 여전히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하루는 조금씩, 함께 그려지기 시작했다.

카페 마감 무렵, 연희는 늘 태석 옆에 앉아 그림을 그렸고, 태석은 그녀의 손에 차를 건넸다.

말없이도 서로의 손끝과 눈빛에서 따뜻함이 오갔다. 그들이 그려내는 하루하루는 조용했지만, 오랜 기다림 끝에 찾아온 안정이었다.

어느 날 저녁, 바닷바람이 부는 언덕 위에서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무지개 벽을 바라보았다.

“태석아.”

“응.”

“행복이 뭔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었어. 근데 지금은 알 것 같아.”

태석은 연희를 바라보았다.

“그건 그냥… 이렇게 있는 거야. 내가 있는 곳에 네가 있고, 네가 있는 곳에 내가 있는 거. 그게, 아마도 행복이야.”

그 순간, 태석은 말없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예전엔 차마 꺼낼 수 없었던 마음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알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를 기다렸고, 서로의 상처를 안았으며, 결국 다시 서로에게 도착했다.

그 사랑은 소란스럽지 않았고, 조용히 자라나 세월을 감싸 안았다.

무지개 벽 너머의 이야기. 그것은 더 이상 아픔을 끌어안은 과거가 아니라,

사랑으로 채워가는 현재이자, 함께 그려갈 미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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