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3.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1
준서는 고아원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 철없는 부모로부터 고아원에 맡겨진 그는, “아빠가 조금만 있다가 데리러 올게”라는 말 한마디를 끝으로 그들을 다시 보지 못했다.
해 질 녘이면 괜히 정문 앞 화단에 멍하니 서 있던 어린 준서. 그는 가장 먼저 기다리는 법을 배웠다.
다 자란 지금은 힙합을 사랑하는 배달 청년. 피어싱과 문신, 가죽 재킷에 오토바이를 타는 그의 겉모습은 거칠고 자유분방해 보이지만, 그 속엔 어릴 적부터 다져진 외로움과 견딤의 시간이 묻어 있다. 웃는 법보다 버텨내는 법이 더 자연스러웠고, 누군가에게 기대는 법보다는 혼자 견디는 법을 먼저 배웠다.
하지만 그에게도 따뜻함을 주는 존재가 있었다. 그건 사람도, 가족도 아닌 한 마리 길고양이였다.
초코. 매일 골목을 지키던 그 고양이는, 어린 시절의 자신처럼 말없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존재였다.
준서는 알지 못했다. 그 고양이와의 인연이,
누군가의 손길 하나가, 자신의 삶을 얼마나 크게 바꿔놓을지를.
2
“오늘 날씨 참 좋네, 초코야.”
낮은 담장 아래 놓인 고양이 밥그릇 곁에,
한 여성이 무릎을 굽히고 앉아 말을 걸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소영. 주민센터 복지 창구에서 근무하면서도, 하루도 빠짐없이 길고양이 초코와 이웃 고양이들에게 밥을 챙겨주는 동네의 ‘캣맘’이었다.
그때, 저만치서 오토바이 한 대가 우렁차게 골목을 가로질렀다. 헬멧을 벗으며 내린 청년은 검은 가죽 재킷에 목까지 올라온 문신, 그리고 한쪽 귀에 반짝이는 피어싱까지—누가 봐도 쉽게 다가가기 힘든 분위기의 남자, 준서였다.
그는 담장 밑에서 고양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을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아이씨, 고양이들 또 밥이야? 여긴 뭐 고양이 식당인가?”
밥그릇을 발끝으로 슬쩍 차려던 그 순간.
“저기요!”
소영의 목소리가 단단하게 튀어나왔다.
“그거, 발로 차면 안 돼요. 그 애들, 하루 종일 이 밥만 기다리는 애들이에요.”
준서는 짧게 숨을 들이쉬었다.
대개는 준서의 외모로 인해, 눈길조차 마주치지 않았는데, 이 여자... 이상하게 정면에서 마주 보며 말하고 있었다. 꾸밈없이 단호한 목소리.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다정한 무게.
“…어? 왜 화를 내요? 내가 뭘 했다고...”
"그 밥그릇은, 이 아이들에게는 하루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유일한 수단이에요.”
준서는 한 마디쯤 더 하려다 입을 꾹 다물었다.
눈앞에서 자신을 꾸짖는 소영의 단호한 눈빛에서, 이상하게도 따뜻함이 느껴졌다.
초코는 그 틈에 조용히 준서의 신발 옆으로 다가와 앉아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뭔가 불만인 듯...
3
며칠 뒤, 동네에서 성격이 험한 젊은 부부가 고양이에게 밥을 주던 소영 씨에게 다가왔다.
"우리 와이프 고양이만 봐도 놀라는데, 왜 여기서 밥을 줘요? 당신 공무원이라던데 민원 넣을까요?"
남편은 협박하듯 목소리를 높였고, 주변까지 울릴 정도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소영은 평소와 달리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민원 넣으세요. 고양이 때문에 놀랐다니 걱정은 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밥을 주지 말라고 일방적으로 소리치고 몰아세우는 건 이해할 수 없어요. 저도 이 동네에 사는 주민입니다."
젊은 부부의 남편은 소영 씨의 말에 씩씩거리며
"하여튼 밥 주지 마!"라고 큰소리로 반말을 내뱉고는 어이없다는 듯 돌아섰다.
소영 씨는 속이 상할 만도 한데, 아랑곳하지 않고 동네 고양이에게 밥을 챙겨주고 있었다.
마침 배달을 마치고 편의점 앞에서 잠시 쉬고 있던 준서는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다가
담장 위에 앉은 초코를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고양이 밥 주는 것도 쉽지 않네... 이거..."
그의 눈빛에는 처음과는 다른 감정이 담겨 있었다. 초코를 향해 한참을 바라보던 그는, 마치 소영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된 듯,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4
어느 저녁, 준서는 주문이 들어온 음식을 받기 위해 치킨집에 들렀다.
땀이 식을 틈도 없이 치킨을 찾으러 뒷문으로 돌아서는데, 들려오는 화난 목소리에 발길을 멈췄다.
"아니, 여기서 또 밥을 줘요? 고양이들 다 여기 몰려오잖아! 이러면 장사 망한다고요!"
치킨집 사장이었다.
그 앞엔 고양이 밥을 챙기고 있는 소영 씨가 작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죄송해요. 여긴 피해 가려고 했는데 오늘은 애들이 여기서 기다리고 있길래..."
"변명 말고요, 당장 치우세요. 가게 앞에 고양이 똥 냄새라도 나면 누가 와요!"
그 순간, 준서가 천천히 다가가 목소리를 높였다.
"사장님, 고양이 똥보다 지금 하시는 말이 더 거슬려요. 쥐뿔도 모르면서 왜 밥 주는 사람한테 뭐라고 하냐고요. 고양이도 여기 사는 생명이에요."
치킨집 사장이 당황해하며 말했다.
"뭐? 너 지금 나한테 대드는 거야?"
준서는 치킨 상자를 들며 덧붙였다.
"됐고요, 사장님이 직접 배달하세요. 이딴 데 다시 안 옵니다."
소영 씨가 급히 나서며 두 사람 사이에 섰다.
"그만해요, 두 분 다. 사장님도 장사하시는데 이해는 해요. 제가 식당에서 좀 더 떨어진 데서 깨끗이 챙길게요. 정말 죄송합니다."
치킨집 사장은 투덜거리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준서는 조용히 치킨을 들고 돌아서며 중얼거렸다.
"괜히 소리 질렀나... 나 잘리는 거 아냐?... 에라 모르겠다."
미안해하는 소영 씨와 준서는 서로 아무 말 없이 쳐다보고 있었고, 초코는 그 모습을 담장 위에서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5
며칠 후, 소영 씨는 주민센터에서 주문한 음식을 배달하러 들어온 준서를 보고 먼저 인사를 건넸다.
"저, 고마웠어요. 그날... 치킨집에서요. 그날은 제가 인사도 못하고 쳐다만 봤어요."
준서는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아, 그건 그냥... 보고만 있기가 그래서요."
그러고는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레 소영에게 물었다.
"그런데요... 정말 궁금한데, 고양이 밥은 왜 주시는 거예요? 그게 그렇게까지 중요한 일인가요?"
소영 씨는 그의 말을 조용히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엔 그냥... 쓰레기통을 뒤적이며 먹을 걸 찾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서 사료를 조금 줬어요. 그게 하루, 이틀 계속되다 보니, 어느 날부턴가 애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그 기다림을 내가 알게 된 순간, 마음이 달라졌어요. 누군가가 나를 기다린다는 게... 그 자체로 나도 그 자리에 가야 할 이유가 되더라고요."
준서는 그 말을 듣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문득 자신이 고아원에서 자랐던 시절이 떠올랐다. 부모님은 그를 고아원에 맡기고 돈을 벌러 떠났고, 그 이후로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매일같이 정문 앞을 바라보며 누군가 자신을 찾아오길 기다리던 어린 시절. 부모님이 자신을 찾아와 주길 바랐던 그 마음은, 그에게 아직도 깊은 상처로 남아 있었다.
"... 잘은 모르겠지만, 저도 어릴 땐 누군가를 매일 기다렸어요.
부모님이 저를 고아원에 맡기고는 돈을 벌러 떠난 뒤, 돌아오지 않으셨어요.
어린 저는 매일 정문 앞에서 그들이 다시 올 거라 믿으며 서 있었죠.
그래서인지 지금 말한 '기다림'이 어떤 건지... 조금은 이해가 돼요."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초코는 두 사람 사이에 조용히 앉아, 둘의 대화를 듣고 있는 듯 꼬리를 부드럽게 흔들었다.
6
어느 날 준서는 다리에 붕대를 감고 동네 공원벤치에 앉아있었다.
며칠 전, 빗길에서 배달을 마치고 돌아오던 중이었다.
교차로에 진입하던 순간, 급정거한 차량을 피하지 못했다.
오토바이는 미끄러졌고, 헬멧 덕에 머리는 다행히 무사했지만, 다리를 심하게 다쳤다.
병원에서는 다행히 골절까진 아니지만 찰과상과 인대 손상이 심해 당분간은 무리하면 안 된다는
진단을 받았다.
준서는 일할 수 없다는 현실에 막막해졌고, 더구나 병원비와 생활비 걱정이 밀려왔다.
그는 괜히 동네 공원을 어슬렁거리다 벤치에 앉았던 것이었다.
날씨는 봄으로 접어들었고, 연초록 잎이 틔운 나무들이 마음까지 따스하게 감쌌다.
그런데 그때, 익숙한 고양이 한 마리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초코였다. 준서는 놀란 듯 초코를 바라봤고, 초코는 그의 무릎 옆에 앉아 천천히 몸을 비비며
골골거렸다.
'뭐지 이 녀석?'
그때, 외근 중이던 소영 씨가 마침 공원을 지나가다 준서와 초코를 발견했다.
그녀는 멀리서 그 모습을 보며 눈이 동그래졌다.
"준서 씨? 여기서 뭐 해요?"
준서는 당황해하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냥... 잠깐 나왔어요. 집에만 있으려니까 더 답답해서요."
소영 씨는 준서의 붕대 감긴 다리를 본 순간 깜짝 놀라며 입을 가렸다.
"어머, 준서 씨... 이게 뭐예요? 어쩌다 이렇게 다치신 거예요? 많이 아프죠? “
그녀의 말투엔 걱정이 가득 묻어났다.
조심스럽게 그의 옆에 앉은 그녀는 붕대를 바라보며 연신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준서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괜찮아요. 며칠만 지나면 좀 나을 거예요."
그러면서 괜히 초코를 쳐다보며 투정을 부렸다. "야, 초코야. 너는 좋겠다. 아무 걱정도 없고,
사람 위로나 해주고 말이야... 나도 네 인생 좀 살고 싶다, 응?"
초코는 고개를 살짝 갸웃하며 조용히 준서 옆에 몸을 기댔다."
소영도 잠시 말없이 초코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준서를 바라보며 조용히 물었다.
"준서 씨는… 전에 어떤 일 하셨어요? 혹시, 춤 말고도 해본 거 있어요?"
준서는 망설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힙합을 좋아했고, 춤을 췄지만 현실은 달랐다고.
가족 없이 시설에서 자랐고, 언제나 스스로를 지켜야 했다고.
소영 씨는 그의 말을 조용히 들으며, 마음이 먹먹해졌다. 겉모습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그의 삶,
그 깊은 고단함이 그녀의 마음에 잔잔히 스며들었다.
까칠한 말투 너머로 어딘가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말보다 더 깊은 무언가가, 이 사람 안에 있었구나.'
그녀는 조용히 결심했다. '이 사람도 누군가를 기다렸던 사람이었어... 이 사람에게 내가 조금이라도 힘이 될 수 있다면, 이 사람은 분명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을 텐데..‘
7
소영 씨는 공원에서 준서와 이야기를 나눈 날 이후, 그를 더 자주 챙기게 되었다.
준서가 겉모습과 달리 속이 따뜻한 청년이라는 걸 알게 된 이유였다.
어느 날 그녀는 준서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혹시, 청년 복지제도 신청은 해보셨어요? 검정고시 지원이라든가, 진로 상담 같은 거요.”
준서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해본 적 없어요. 관심도 없었고요.”
“그럼, 이제부터 한번 해봐요. 기회는 만들 수 있는 거니까. 공부가 필요하면 제가 도와줄게요. 인터넷 강의나 교재도 챙겨줄 수 있어요.”
소영 씨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 말에 준서는 몇 번을 망설이다 결국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 저는 공부랑은 담쌓은 놈이에요. 포기하세요, 누나."
'누나'라는 말에 소영 씨는 순간 가슴이 찡해졌다.
누군가에게는 쉽게 불리는 말이었지만,
특히 준서에게서 나온 '누나'라는 단어 하나는 나를 친근하게 본다는 생각에 뜻밖의 감동으로 밀려왔다.
소영은 조용히 미소 지으며 답했다.
"그래도 포기 안 할 거예요. 그냥 한 번만 믿고 해 봐요."
준서는 고개를 숙였다가 이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낮엔 일하고 밤엔 공부하는 그거 하라는 거죠? 그거 뭐라더라... 아, 야학인가?
뭐, 누나가 그렇게까지 원한다면... 할까요.?"
그의 말투는 여전히 투박했지만, 그 안엔 묘한 다정함이 담겨 있었다.
그날부터 소영 씨는 준서가 검정고시를 준비할 수 있도록 꾸준히 도왔고,
공부를 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해 주었다.
주민센터 도서실 한 켠, 조용한 테이블에서 공부를 할 때면 늘 초코가 준서를 따라와 의자 밑에 앉았다.
책장을 넘기다 문득 초코를 보면,
준서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야, 초코야. 또 감시하러 왔냐?”
초코는 늘 그렇듯 담장이나 책상 모서리에 앉아 조용히 준서를 바라보았다.
마치 응원이라도 하듯이.
1년 후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봄날 오후, 주민센터 앞에 한 청년이 숨을 헐떡이며 뛰어왔다.
여전히 피어싱에 문신은 있었지만, 평범한 후드티에 검정색 백팩을 멘 그 청년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큰 소리로 외쳤다.
"누나! 저, 합격했어요!"
소영 씨가 깜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눈앞엔 환하게 웃고 있는 준서가 있었다.
그의 손엔 '고졸 검정고시 합격증'이 선명히 들려 있었다.
"진짜로요? 준서 씨, 정말이에요?!"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두 손을 뻗어 준서의 양 어깨를 붙잡았다. 그리고 웃으며, 동시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대단해요. 정말 자랑스러워요."
준서는 멋쩍은 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다 소영 누나 덕분이죠. 공부가 이렇게 재밌는 줄은 몰랐어요."
그날 주민센터 창구 뒤쪽 작은 복도에서 두 사람은 한참을 서서 이야기를 나눴다.
소영은 준서에게 축하한다고 말하며
"이젠, 다음엔 대학도 도전해 봐요."
준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일도 열심히 하고 공부도 열심히 해서 대학도 꼭 도전해 볼게요”
그 순간, 창밖 담장 위에서 익숙한 꼬리가 살랑이며 흔들렸다. 초코였다.
초코는 햇살 아래 조용히 앉아, 마치 ‘수고했어’라고 말해주는 듯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초코의 내레이션:
“사람은, 누군가 자신을 믿어주는 눈빛 하나에 변하기도 해. 말은 필요 없어. 그저 곁에 있어주기만 해도 충분할 때가 있어. 난 그런 순간들을 알고 있지. 그래서 오늘도, 이 골목 어귀에서 누군가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