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 초코 이야기

에피소드 4. 혼자가 아니야

by 목마르다언덕

"사랑해요 고객님! OK통신 김미경입니다!"


"웃으면서 사는 게 최고죠, 그쵸?"

OK통신 콜센터 한 구석, 미경은 특유의 밝은 웃음으로 전화를 이어갔다.
통화가 끝나면 책상 앞에 고개를 푹 숙였다가도, 다시 수화기를 들 때면 언제 그랬냐는 듯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를 만들어냈다.

동료들은 그런 미경을 "에너지 넘치는 푼수"라며 웃어넘겼다.
미경도 그 웃음에 맞춰 따라 웃었다.
정말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만,
수화기 너머로 "귀찮아 죽겠네"라는 투명한 짜증이 들려올 때마다
미경의 속은 조금씩, 보이지 않게 무너져 내렸다.

"괜찮아, 미경아."


"웃으면 버틸 수 있어."


"웃어야... 견딜 수 있어."

미경은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텼다.
작고 어설픈 자신을,
남들 앞에서는 '밝은 사람'처럼 포장해 가며.

오늘도 별다를 것 없는 하루였다.
웃으며 전화를 끊고, 웃으며 퇴근 인사를 하고, 웃으며 회사 문을 나섰다.

하지만 지하철 역으로 걷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지하철에서 나와, 골목을 지나
집 앞 낡은 대문 앞에 다다랐을 때, 미경은 담벼락 위에 앉은 작은 갈색 고양이를 보았다.

초코였다.

초코는 부드러운 눈으로 미경을 내려다보았다.

미경은 피식 웃었다.
어설픈 농담처럼, 스스로를 다독이듯 초코에게 말을 걸었다.


"초코야, 넌 오늘 어땠어?"


"난... 오늘도 웃었어. 계속 웃었어... 그런데 말야, 진짜 웃고 싶어서 웃는 건 아닌 것 같아."

미경은 한숨처럼 속마음을 흘리고, 힘없이 웃었다.

"그래도... 들어가서 쉬어야지. 내일 또 웃어야 하니까."

그렇게 말하며 몸을 돌리려는 순간, 초코가 폴짝 담장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다가와 미경의 다리에 머리를 부비며 들이 누웠다.
살랑살랑, 부드러운 꼬리가 미경의 다리를 스쳤다.

그 작은 애교.
그 작은 온기.

미경은 끝내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참아오던 설움이 한순간에 터졌다.
소리 없이, 눈물만 주르륵 흘렀다.


"나... 진짜 괜찮은 사람일까?"


"이렇게 버티는 게, 잘하고 있는 걸까?"

초코는 가만히 미경을 바라보았다.
아무 말도 없이, 그저 그녀의 옆에 머물러 주었다.

잠시 후, 미경은 흐느끼는 숨을 가다듬고 초코의 따뜻한 머리를 조심스럽게 쓸어내렸다.


"그래... 내일은... 조금은 좋아지겠지."


"고마워, 초코야."


초코는 조용히 눈을 깜빡였다.
아주 작은, 그러나 분명한 응답처럼.



회색빛 새벽이었다.
구겨진 제복을 입은 채, 용식은 파출소 문을 나섰다.

밤새도록 이어진 신고 출동.
실수투성이 근무.

주취자 제압을 제대로 못 해 강팀장님에게 또 혼나고,
순찰차 안에서는 졸다 걸려서 귀까지 빨개지도록 핀잔을 들었다.


"정신 똑바로 차려, 용식아!"


지친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용식은 파출소 옆 골목길을 따라 집으로 향했다.
낡은 신발은 빗물 자국에 젖어 무겁게 끌렸다.


"내가... 왜 경찰관이 되려고 했지..."

용식은 작게 중얼거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거칠고,
자신은 생각보다 훨씬 약했다.

좁은 골목 어귀를 지날 때였다.

낡은 담벼락 위에서
갈색 고양이 한 마리가 조용히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초코였다.

초코는 용식을 보자 몸을 일으키더니 짧게 ‘하품’ 하더니, 부드럽게 울었다.


"야옹."

마치, "이제 퇴근해? 고생했어."라고 말하는 것처럼.

용식은 그 소리에 걸음을 멈췄다.


담벼락 위 초코와 잠시 눈을 마주쳤다.

지쳐버린 마음 한구석이, 작게 울컥했다.

용식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너도... 밤새 근무하고 퇴근하냐?"


초코는 고개를 살짝 갸웃하며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눈망울 속에는 다그침도, 조롱도 없었다.
오직, 조용한 응원과 기다림만 있었다.

용식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래, 고맙다."


"나도 들어가서 좀 잘 쉴게. 너도... 잘 쉬어라."

초코는 조용히 눈을 천천히 깜빡였다.

그 작은 동작이 세상의 누구보다 따뜻한 대답처럼 느껴졌다.

용식은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듯 한 뒤, 천천히 골목길을 걸어갔다.

초코는 여전히 담벼락 위에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마치, "넘어져도 괜찮아. 다시 일어서서 가면되지." 라고 속삭이는 듯이.

회색빛 새벽 골목에 작고 따뜻한 숨결이 퍼져나갔다.

"사랑해요 고객님! OK통신 김미경입니다! 오늘도 행복 가득한 하루 보내고 계신가요?"

밝고 환한 목소리.
오늘도 미경은 환하게 웃으며 전화를 걸었다.

수화음이 몇 번 울리고, 조심스러운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 여보세요?"

미경은 기쁜 마음에 바로 이어갔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현재 이용 중이신 요금제보다 더 좋은 혜택을 드리기 위해 연락드렸어요!"


수화기 너머, 남자는 조금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아, 죄송합니다. 저... 지금 순찰 중이라서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미경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어? 순찰이요? 그럼 혹시... 경찰관님이신가요?"

조심스레 물어보는 미경의 목소리는 작은 경외와 놀람으로 떨려 있었다.


"네, 맞아요. 경찰입니다."


용식이 멋쩍게 대답하자, 미경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리고 급히, 숨을 고른 뒤 진심을 담아 말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셔서...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순찰차 조수석에 앉아 있던 용식은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 깊은 곳이 따뜻하게 데워지는 걸 느꼈다.

그토록 힘들었던 야간 순찰, 서툴러서 혼나고 자책했던 시간들.
모든 피로가 순간 스르르 녹아내렸다.

그러면서도 용식은 급히 말했다.

"아, 아니에요, 저... 오히려 제가 죄송해요. 지금 순찰 중이라 전화를 오래 받을 수가 없어서... 미안합니다."

"아, 아니에요 고객님!"


미경이 급히 덧붙였다.


"제가 오히려 실례했어요! 바쁘신데 죄송해요!"

둘 다, 어쩔 줄 몰라 작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

용식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점심시간쯤이면 괜찮을 것 같아요. 그때 다시 전화 주시면... 제가 제대로 안내받을게요."

"전화 주셔서 감사합니다."

통화가 끝나자, 미경은 헤드셋을 내려놓고 조용히 웃었다.

아까까지 거절당하고 꺾였던 마음, 서글펐던 오전 시간들이 따뜻하게 감싸 안긴 듯했다.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용식의 짧은 말들이 미경의 하루를 다시 반짝이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의 하루를 조금 따뜻하게 만들 수 있었구나."


미경은 혼자 중얼거리며 작게, 정말로 웃었다.


"서툴러도 괜찮아. 짧은 따뜻함 하나가, 누군가에게 하루를 견디게 해 줄 수 있으니까."

"사랑해요 고객님! OK통신 김미경입니다!"


"점심시간이라 조금 여유 있으시죠?"


미경은 아침보다 훨씬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걸었다.
조금은 떨리는 마음으로.

수화기 너머, 차분하고 따뜻한 목소리가 응답했다.


"아, 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미경은 입가에 웃음이 번지는 걸 숨기려 애쓰며 상품 설명을 이어갔다.

요금제 변경, 추가 혜택, 그리고 축하 사은품 안내까지.

용식은 성실하게 들으며 간간이 짧게 고개를 끄덕이는 듯한 숨소리를 들려주었다.


"고객님께 사은품을 보내드리기 위해, 주소를 확인해도 될까요?"


"네, 물론이죠."

용식이 알려준 주소를 받아 적던 미경은 순간 손끝이 멈췄다.


"어... 이 동네...?"


미경이 살고 있는 골목과, 불과 몇 블록 떨어진 곳이었다.

그 사실에 미경은 순간 가슴이 쿵 하고 울렸다.

하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밝게 웃으며 말했다.


"고객님, 주소 확인 완료했습니다! 사은품도 최대한 빨리 발송해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친절하게 설명해 주셔서 정말 기분 좋았어요."


용식이 덧붙였다.


"요즘 다들 바쁜데, 이렇게 기분 좋은 안내받으니까... 뭔가, 하루가 좀 나아진 것 같아요."


수화기 너머의 작은 진심.
그 말에 미경은 핸드셋을 꼭 쥐고 작게 웃었다.

아침 내내 수십 번 거절당했던 마음이 순식간에 따뜻하게 녹아내렸다.


"저도요, 고객님. 오늘 하루, 정말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진심을 담아, 미경은 천천히 말했다.

그리고 둘은 짧은 인사를 나눈 뒤,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미경은 잠시 헤드셋을 들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나이도 동갑.
동네도 바로 옆 골목.
그리고...
이렇게까지 정중하고 착하게 응대해 주는 사람.

세상은 삭막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아직은 이런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괜히 가슴이 찌릿하게 저려왔다.


"같은 동네, 같은 나이."


"어쩌면... 오랜만에, 나와 비슷한 온도를 가진 사람을 만난 걸지도 몰라."


미경은 저도 모르게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동안 고객 응대라는 이름으로 수없이 무시당하고, 거절당하고, 상처받아왔던 마음 한구석이
마치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풀려나갔다.

"고객님, 덕분에 오늘 하루는 진짜 웃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미경은 책상 한쪽에 놓여 있는 초코의 작은 사진을 바라보았다.

며칠 전, 골목길에서 찍은 초코의 따뜻한 눈빛.

'힘내’

'괜찮아’

'웃어도 돼’

초코가 건네던 그 무언의 응원이, 오늘은 낯선 누군가의 진심과 함께 미경의 마음을 살짝살짝

어루만지고 있었다.


"아주 작은 따뜻함 하나가, 지친 마음을 다시 웃게 만든다."


"비슷한 온도를 가진 사람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어느 늦은 오후

미경은 긴 하루를 마치고 퇴근길 골목을 걷고 있었다.

따뜻한 햇살이 골목 끝을 부드럽게 감싸고, 담벼락 위에는 여느 때처럼 초코가 앉아 있었다.

"초코야."

미경은 나지막이 인사하며 초코를 올려다봤다.


그때였다.
골목 반대편에서 경찰 제복을 입은 한 남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용식이었다.

한 손에는 작고 투박한 종이봉투를 들고 있었다.

거기에는 'OK통신 사은품'이라고 적힌 작은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순간, 미경은 두 눈을 크게 떴다.


"설마..."

미경은 본능처럼 느꼈다.

그가... 용식이라는 걸.


용식은 초코를 발견하자 걸음을 멈추고 다정하게 인사했다.


"어이, 고양이 친구. 오늘도 여기 있었구나."

초코는 담벼락 위에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용식을 맞았다.

그 모습을 본 미경은 웃으며


"초코, 아는 분이세요?"

용식이 놀란 눈으로 미경을 바라봤다.


"초코... 이름이 초코였어요?"

"네, 골목 터주대감이에요. 근데 혹시..."


미경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며칠 전에 OK통신에서 전화드렸던... 텔레마케터, 기억나세요?"


용식의 깜짝 놀라며, 마치 기다렸다는 것처럼,


”네 알아요.. 굉장히 친절했던..."


미경은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그 안내드렸던 사람이 저예요."

순간, 두 사람 사이에 작은 바람이 스쳤다.
세상 모든 소음이 멈춘 듯, 따뜻한 공기만이 골목을 채웠다.


"정말요? 세상에, 이런 인연이 다 있네요?"

용식은 환하게 웃었다.

미경도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다시 한번, 정말 감사합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셔서요."


용식은 어쩔 줄 몰라하며 손을 휘적였지만, 그의 눈빛은 맑고 따뜻했다.


"아니에요. 저야말로 감사하죠..."

초코는 그 둘을 지켜보며 담장 위에서 천천히 눈을 감았다.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또 하나의 좋은 인연이, 이렇게 시작됐구나.'
조용히 그렇게 생각하는 듯했다.


어느 날 초코가 사라졌다.

깨진 밥그릇, 엎어진 담요.
어수선한 흔적만 남긴 채, 초코는 골목에서 자취를 감췄다.

처음엔 바쁜 하루에 쫓겨 무심코 지나쳤지만, 하루 이틀, 사흘. 초코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미경은 골목 모퉁이에 멈춰 섰다.
작은 손으로 사료통을 꼭 쥔 채, 하늘을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눈꺼풀 아래, 뜨겁게 고여 있던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초코야... 어디 있는거야?"

파출소 앞 골목.
매일 아침 순찰차를 몰고 나가며, 또는 늦은 밤 퇴근할 때마다
용식은 늘 담벼락 위를 슬쩍 바라보곤 했다.

거기엔 늘, 갈색 털을 반짝이며 느긋하게 하품을 하던 초코가 있었다.

별 의미 없는 습관 같았지만, 그 작은 존재를 보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조금 덜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어느 날.
평소처럼 순찰차를 몰고 지나가던 용식은 문득 고개를 들어 담벼락을 봤다.

그런데, 초코가 보이지 않았다.


"오늘은 어디 갔나?"


가볍게 넘겼다.

고양이니까, 어디 놀러 갔겠지.
골목 다른 데서 뒹굴고 있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날

또 그다음 날.
또다시 그다음 날.

담벼락은 텅 비어 있었다.


미처 정리되지 않은 불안감이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가슴 안으로 스며들었다.

"진짜... 어디 간 거야?"

용식은 의도치 않게 초코가 있던 자리를 계속, 자꾸 바라보게 됐다.

순찰을 돌다 문득, 용식은 골목길을 천천히 돌아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자신에게 초코는 하루 중 몇 안 되는 '괜찮은 것' 중 하나였다.

작은 털뭉치 하나였지만, 그 존재가 있어야 세상이 그렇게까지 삭막하지 않게 느껴졌었다.

"설마... 무슨 일 생긴 건 아니겠지?"

그러나 조심스레 엎어진 밥그릇과 쓸려나간 담요를 본 순간, 불안은 확실한 걱정으로 변해버렸다.

순찰이 끝나고 나면, 용식은 일부러 한 바퀴 더 골목을 돌았다.

길모퉁이, 작은 공터, 주차장 뒤편.
어디선가 초코가 모습을 드러내줄까 싶어 조심스럽게 눈길을 돌렸다.

부르지는 못했다.
혹시 누가 볼까, 부끄러웠다.

하지만 마음은 점점 다급해졌다.


"초코야... 어디 있어. 괜찮은 거야?"

골목 어귀를 지날 때마다, 초코의 작은 갈색 털, 느릿한 몸짓을 애타게 찾게 됐다.

어느 흐릿한 저녁.
미경과 용식은 우연히 같은 골목 어귀에서 마주쳤다.

미경은 작은 사료 통을 들고 있었고, 용식은 손전등을 들고 있었다.

서로를 바라보며 멈칫했다.
그리고 동시에 미소 지었다.


"혹시... 초코 찾으러 오셨어요?"


"네... 초코가 보이지 않아서요“


짧은 대화.
하지만 그 순간, 두 사람은 이미 같은 마음이라는 걸 알았다.

둘은 나란히 골목을 걸었다.
초코가 자주 쉬던 벤치 아래, 주차장 구석, 폐가처럼 방치된 창고 앞까지.

초코를 부르며, 함께 작은 골목들을 조심스럽게 들여다봤다.


미경과 용식은 말이 거의 없었다.

가끔, 서로를 흘끗 바라보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골목 곳곳을 조용히 둘러보며
초코를 부르는 데 집중했다.

"초코야..."


"초코야, 어디 있어..."

목소리는 갈수록 작아졌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비록 아무것도 찾지 못했지만, 두 사람은 어쩐지 조용히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덜 외로운 기분이 들었다.

밤이 깊어갈 때, 둘은 무심히 눈이 마주쳤고, 조심스레 웃으며 인사를 나눴다.


"내일 또 찾아봐요."


"네, 같이요."

둘째 날 저녁.
미경은 사료통 대신 작은 캔사료를 들고 나왔다.

용식은 손전등 대신 작은 주머니에 고양이 간식을 챙겼다.

"어제보다 준비가 철저해졌네요."


미경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네. 오늘은 무조건 찾을 거예요. 제가 경찰관 이잖아요... 찾는 건 제 전문이에요"


용식도 웃으며 대답했다.

짧은 대화였지만, 둘 사이의 공기가 조금 더 부드러워졌다.

찾는 동안, 미경은 용식에게 물었다.


"경찰 되기 힘들지 않았어요?"

용식은 쑥스럽게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네... 두 번이나 시험 떨어졌거든요. 그래서 합격했을 때, 엄청 기뻤어요."

미경은 그 말을 듣고 부드럽게 웃었다.

"미경 씨는 일하는 게 힘드시지 않으세요?"


"힘들죠. 고객을 상대하는 게... 매일 거절당하면서도 다시 전화기 들 때...
사실, 그게 더 힘들 때도 있어요."


서로의 작은 고백은 조심스럽지만 진심으로 서로를 이해하게 했다.


셋째 날도
초코를 찾는다는 명목으로 거의 골목 전체를 함께 걸었다.

비어 있는 놀이터, 낡은 자전거가 세워진 골목, 버려진 가게 앞 작은 화단.

서로 초코를 부르며, 가끔은 괜히 어색하게 웃기도 하고, 어쩔 땐 둘 다 동시에 똑같은 곳을

가리켜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초코가 거기 숨었을 것 같아요."


"아니에요, 저기는 분명 초코 스타일 아니에요."

그 웃음소리는 한때 텅 비었던 골목을 조용히, 따뜻하게 채워나갔다.

그날 밤,

오래된 골목 계단에 둘은 말없이 나란히 앉았다.

미경은 사료통을 다리에 올려놓고, 용식은 손전등을 무릎 위에 얹은 채 잠시 숨을 골랐다.

서늘한 밤공기가 지나갔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이상하게 따뜻한 공기가 맴돌았다.

먼저 입을 연 건 미경이었다.


"저... 사실 초코가 없어져서 무서웠어요."


작게, 그러나 뚜렷한 목소리였다.

"초코를 찾는 것도 찾는 건데... 왠지, 내 힘든 시간들이 다시 몰려올까 봐... 그게 더 무서웠어요."

미경은 손에 쥔 사료통을 꼭 쥐었다.


"매일 회사에서 웃어요. 아무렇지 않은 척, 밝은 척. 근데 돌아서면... 왜 그렇게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어요."

용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요."


"매일 순찰 돌면서도 늘 긴장하고, 작은 실수 하나에도,

선배들의 작은 지적에도 자꾸 나 자신을 스스로 탓해요."

작게 웃으며 덧붙였다.

"그래서 초코가 반겨주면... 진짜 별 거 아닌데도 마음이 녹았어요."

잠시, 둘은 아무 말 없이 있었다.

서툴게, 그러나 분명한 마음이 조용히 서로를 감쌌다.

용식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미경 씨... 매일 웃으려고 애쓴 거, 그거 진짜 멋진 거예요."

"어떤 사람들은 미경 씨의 밝은 목소리와 진심 담은 응원이.. 정말 큰 힘이 돼요"

미경은 부끄러워 고개를 푹 숙였다.

"용식 씨도요. 혼나도, 자책해도... 매일 사람들 지키려고 노력하는 거, 그거 진짜 대단한 거예요."

둘은 어색하게, 그러나 따뜻하게 웃었다.

말은 많지 않았지만, 서로의 마음에 작은 불이 하나씩 켜지는 느낌이었다.

"이제 초코 찾으러 가요. 초코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용식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같이 가요."

둘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길게 늘어진 그림자가 서로의 그림자와 살짝 겹쳤다.

밤은 깊었지만, 두 사람의 발걸음은 한결 가벼웠다.

미경과 용식은 다시 천천히 골목을 걷기 시작했다.

짙어진 밤공기.
가로등 불빛이 길게 늘어지고, 바람은 살짝 차가웠지만 서로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
마음은 이상하게 따뜻했다.


"초코야..."


"초코야, 어디 있어..."

둘은 조심스레,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초코를 불렀다.

그때였다.

낡은 화단 옆, 버려진 나무상자 틈새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둘은 동시에 소리에 반응했다.


"초코야?"

미경이 숨죽이며 다가갔다.
용식도 조심스럽게 옆을 지켰다.

그 틈 사이로, 작은 갈색 털뭉치가 고개를 내밀었다.

초코였다.

조금 수척해 보였지만, 반짝이는 눈동자는 여전히 따뜻했다.


"초코야...!"

미경은 거의 울다시피 부르며 초코를 품에 안았다.

초코는 힘없이 꼬르륵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미경도, 용식도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다행이다... 진짜 다행이다..."


용식은 숨을 몰아쉬며 웃었다.

미경은 초코를 꼭 안은 채 눈물을 뚝뚝 흘렸다.

용식은 옆에서 어쩔 줄 몰라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미경의 어깨를 조심스레 토닥였다.

"괜찮아요... 초코가,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에요."

서툰 위로였지만, 그 말 한마디에 미경은 더 울컥했다.

"고마워요... 옆에 있어줘서..."

미경은 초코를 쓰다듬으며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초코를 안고 공원의 벤치로 가서 앉았다.

초코를 사이에 두고, 미경과 용식은 서로를 쳐다보며 웃고 있었다.

용식이 작은 숨을 삼키고 천천히 말했다.

"미경 씨."

"네?"

"사실... 초코를 찾으러 다니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어요."

"혼자 버티는 게 얼마나 힘든지, 혼자 웃는 게 얼마나 아픈지, 미경 씨를 보면서 알게 됐어요."

"그리고... 그런 미경 씨를, 제가... 응원하고 싶어요."

미경은 초코를 꼭 안은 채, 조용히 웃었다.

"저도요."

"용식 씨가 어색해도, 서툴러도, 항상 사람들 곁을 지키려 애쓰는 걸 보면서..."

"저도... 같이 웃어주고 싶었어요."

말을 끝낸 둘은 조심스레, 서로를 향해 웃었다.

그 순간, 초코가 두 사람 사이에서 부드럽게 몸을 비볐다.

마치,

"그래, 너희 둘 다 잘했어.”

라고 말해주는 것처럼.


미경은 고개를 숙이며 웃었다.

옆에 있는 사람의 말 한마디가, 이렇게 따뜻하게 다가온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용식도 조심스레 미경을 바라봤다.

힘든 하루 끝에, 웃을 수 있게 만드는 사람.

그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그는 이제 알 것 같았다.


초코를 품에 안고,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 두 사람.

차가운 골목길은 더 이상 차갑지 않았다.

짙은 밤공기 속에서도, 서툴지만 진심으로 연결된 따뜻한 마음이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퍼지고 있었다.


힘들어도 괜찮아.

웃으며 버틴 하루도,

울며 견딘 하루도,

모두 너라서 소중한 거야.

그리고

혼자가 아니야.

지금 여기, 너를 기다리는 마음이 있어.


초코는 말 대신,

가만히 곁에 머물러 주는 방법으로 세상을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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