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5. 행복이 이야기
부드러운 햇살이 골목길에 내리던 평화로운 오후였다.
초코와 행복이는 골목길을 뛰어다니며 즐겁게 놀고 있었다.
"행복아, 그렇게 빨리 뛰면 다친다니까!" 부동산 아주머니가 창문 너머로 다정히 소리쳤다.
그러나 순간, 큰 소음과 함께 오토바이가 골목을 지나쳤고, 날카로운 비명이 이어졌다.
"행복아!" 아주머니는 급히 달려 나가 행복이를 품에 안았다. "안 돼, 제발… 행복아!"
급히 병원으로 향한 아주머니는 눈물로 범벅된 얼굴로 수의사에게 매달렸다.
"선생님, 제발… 우리 행복이 살려주세요…"
수의사는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두 다리를 절단해야 합니다. 그게 최선입니다."
아주머니는 무너져 내렸다. "우리 행복이… 어떻게 이런 일이…"
그 이후 행복이는 움직일 수 없는 몸으로 마당에서 문 아래 작은 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기만 했다.
아주머니는 매일 행복이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행복아, 미안해. 언젠가는 꼭 다시 뛰어놀 수 있을 거야."
행복이는 아주머니의 손길에 조용히 응답하듯 작게 야옹 울었다.
한편, 정국은 대학 졸업 후 취업 실패를 반복하며 좌절하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 식사 도중 부모님과 대화를 나눴다.
"엄마, 아빠… 정말 죄송해요. 계속 실패만 하고 있네요."
어머니는 따뜻한 미소로 답했다.
"정국아, 네가 노력하는 걸 다 알아. 걱정 마, 잘될 거야."
아버지도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맞아, 아들. 중요한 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거야. 우리는 언제나 네 편이야."
정국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고마워요. 꼭 힘내 볼게요."
정국은 집에서 부모님께 기대고 있는 자신이 점점 부담스러워졌다.
어느 날 저녁, 정국은 부모님께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 아빠. 저 이제 혼자서 좀 해보려고 해요. 계속 이렇게 집에서만 지낼 순 없잖아요. 독립해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다시 공부도 시작하고 싶어요."
어머니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정국아, 급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돼. 여기서 편하게 준비해도 괜찮아."
"맞아, 아들. 네가 마음 편한 게 우선이야." 아버지 역시 다정하게 말을 보탰다.
그러나 정국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니에요, 이젠 제가 스스로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저도 제 자신이 더는 이렇게 지내는 게 싫어요."
부모님은 아들의 강한 의지를 느끼고 서로 눈빛을 교환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정국아. 네가 그렇게 결심했다면 응원할게. 하지만 힘들면 언제든지 말해야 한다."
"고마워요. 꼭 잘해볼게요."
정국은 고시 학원이 있는 곳 근처에 원룸을 얻기 위해 초코가 사는 동네의 작은 부동산을 찾았다. 부동산 주인과 원룸 계약에 관한 대화를 나누던 중, 그는 뒷문 근처에서 힘겹게 몸을 움직이며 바깥을 보려고 애쓰는 고양이를 발견했다.
"저 고양이, 어디가 아픈가 봐요?"
아주머니는 한숨을 쉬며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행복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작년에 오토바이에 치여서 두 다리를 못 쓰게 되었어요. 저렇게 매일 밖을 바라보기만 하죠."
정국은 가슴이 먹먹해졌다. 저렇게 아픈 몸인데도 바깥으로 나가고 싶고 세상을 보고 싶은 고양이의 모습이 마치 자신과 너무도 닮아 보였다.
원룸 계약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정국은 문득 아까 본 고양이 행복이의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 '저 고양이에게 휠체어를 만들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마침 대학 시절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근처 대학교에서 조교로 근무 중이라는 게 생각났다.
정국은 주저 없이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진혁아. 혹시 너희 학교에 3D 프린터나 간단한 가공 장비들 있지 않아?"
"있지, 왜? 갑자기 그걸 왜 묻냐?"
"내가 꼭 뭔가 만들어야 할 게 있어서 그래. 좀 특별한 거야. 고양이 휠체어 같은 건데… 도와줄 수 있을까?"
잠시 정적이 흐르더니, 진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처음 듣는 주문인데… 재미있겠다. 언제 올래? 시간 맞춰줄게."
며칠 뒤, 약속한 날 아침. 정국은 다시 부동산을 찾았다. 손에는 작은 노트와 줄자가 들려 있었다. 아주머니는 반갑게 맞아주며 물었다.
"정국 씨, 또 오셨네요?"
"네, 아주머니. 제가 사실… 행복이에게 맞는 휠체어를 만들어 보려고 해요. 그래서 오늘은 몸 치수를 좀 재보려고요."
아주머니는 깜짝 놀라 정국을 바라보았다.
"정말요? 그게 가능해요? 고양이 휠체어라는 걸… 직접 만든다고요?"
정국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정확하진 않지만, 제가 예전에 배운 걸 활용해 보면 가능할 것 같아요. 한 번 도전해보고 싶어요."
아주머니는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이내 눈망울이 반짝이며 말했다.
"만약 진짜로… 우리 행복이가 다시 다닐 수 있게 된다면… 정말, 그보다 기쁜 일이 없겠네요. 어머, 세상에… 이리 와요. 행복이 치수부터 같이 재봐요!"
정국은 조심스럽게 행복이의 몸을 살피며 크기를 쟀다.
행복이는 정국의 손길에 놀라지 않고 얌전히 있었다.
초코는 그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며 꼬리를 흔들었다.
이후 며칠 동안 그는 친구 진혁과 함께 고양이 휠체어를 만들기 위해 매일같이 작업실에 출근하다시피 했다.
"정국아, 넌 진짜 대단하다. 어떻게 이런 걸 설계할 생각을 했냐?"
진혁은 CAD 화면에 펼쳐진 휠체어 설계도를 보며 감탄했다.
"그냥… 행복이가 문틈으로 세상을 보려고 애쓰는 걸 보고, 뭔가 해주고 싶었어. 내가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더라고."
"근데 진짜 정교하다. 바퀴 구조도 그렇고, 고양이 체형에 딱 맞게 설계한 게 놀라워."
정국은 겸손하게 웃으며 바퀴 부품을 조립했다. 진혁은 옆에서 납땜을 도우며 감탄을 멈추지 못했다.
그때 작업실을 지나던 기계공학과 교수님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이, 너희들 여기서 뭘 만드는 거냐?"
진혁이 먼저 인사하며 설명했다.
"교수님, 제 친구 김정국이입니다. 글쎄 몸이 아픈 고양이 휠체어를 만들고 싶다고 해서, 같이 제작하고 있는데, 이 친구의 설계계나 제작기술도 너무 정교하고 완벽해요."
교수님은 흥미롭게 다가와 설계도와 조립된 부품을 유심히 살폈다.
"이거… 꽤 잘 만들었는데? 원래 이런 쪽에 관심 있었나?"
정국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전에는 막연했지만, 이번에 계기가 생겨서 처음으로 진심을 담아 만들고 있어요."
교수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훌륭하다. 설계도도 안정적이고, 조립도 꼼꼼하구만. 완성되면 나도 한번 꼭 보고 싶네."
정국은 부끄럽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교수님의 칭찬은 그에게 큰 격려가 되었다.
며칠 후
정국은 아침부터 행복이가 사는 부동산을 찾았다.
손에는 조심스럽게 포장한 작은 휠체어 상자가 들려 있었다.
"아주머니, 저… 혹시 잠깐만 행복이 좀 볼 수 있을까요?"
아주머니는 놀라며 문을 열어주었다.
"그래요. 어쩐 일이에요?"
정국은 환하게 웃으며 상자를 조심스레 들어 보였다.
"아주머니, 휠체어가 완성됐어요. 행복이한테 꼭 맞게 만들었는데, 한번 착용해 보면 어떨까요?"
아주머니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말요? 세상에… 이렇게나 빨리… 아휴, 정국 씨… 너무너무 고마워요. 진짜 이런 걸 다 만들어오다니…"
정국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잘 맞을지 모르겠지만, 조심히 한번 해볼게요."
둘은 함께 뒷마당으로 향했다.
행복이는 햇살 가득한 마당 한켠에서 느릿하게 몸을 일으키려 애쓰고 있었다. 정국은 조심스럽게 무릎을 꿇고 휠체어를 꺼냈다.
"행복아, 잠깐만. 불편하지 않게 해 줄게."
정국이 조심히 휠체어를 착용시키자 행복이는 가만히 있었다. 이내 휠체어가 몸에 딱 맞게 부착되었고, 처음에는 행복이가 많이 어색해했지만 점점 익숙해지더니 휠체어를 탄 채 뒷마당을 이리저리 다니기 시작했다.
아주머니는 그 모습을 보며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눈시울을 붉혔다.
"세상에… 우리 행복이가… 저렇게 돌아다니는 걸 다시 보다니… 정말 꿈만 같네요. 정국 씨, 정말 고마워요."
정국은 흐뭇하게 웃으며 행복이가 움직이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다행이에요, 아주머니. 행복이가 잘 적응해서 정말 기뻐요."
초코는 옆에서 이리저리 뛰며 휠체어를 탄 행복이를 쳐다보았고, 꼬리를 흔들며 야옹 하고 울었다.
그 울음은 마치 "잘했어"라고 말하는 듯했다.
이후 열심히 아르바이트도 하고 학원도 꾸준히 다니며 바쁜 일상을 보내던 정국은 어느 날, 진혁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정국아! 교수님이 너 찾더라. 전에 너 작업하던 거 기억나? 그 고양이 휠체어!"
"교수님이 왜?"
"동물 보조기구 제작하는 업체에서 협업 제안이 들어왔대. 교수님이 네 솜씨 생각나서 한번 같이 해보지 않겠냐고 물어보시더라."
정국은 잠시 말이 막혔다.
"진짜로? 나 같은 사람한테 그런 기회가…"
"야, 너 그때 진짜 멋졌거든. 설계도, 조립도 다 완벽했어. 그걸 본 사람이면 다 알지."
정국은 숨을 고르며 대답했다. "그래… 좋아. 나도 그 일 정말 의미 있었어. 만약 나에게 기회가 된다면 해볼게. 최선을 다해서."
진혁이 웃으며 말했다. "그 말 기다렸지! 교수님께 전해드릴게."
그때였다. 정국은 통화를 마치고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마치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바로 그 순간, 담벼락 위에서 초코가 느긋하게 앉아 있었다. 초코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야옹 하고 울었다.
그 울음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정국아, 잘 가고 있어. 계속 그렇게만 해."
정국은 조용히 웃으며 초코를 바라보았다.
"응, 나 진짜 잘해볼게. 고마워, 초코."
언제나 그렇듯
골목길에는 평온한 햇살이 내리고 있었다.
초코와 행복이는 더 이상 추억 속에만 머무는 존재가 아니었다.
두 친구는 마당 한 켠에서 나란히 앉아 바람을 느끼고,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었다.
행복이는 여전히 두 다리가 없지만, 이제는 세상을 향한 길을 스스로 굴러 나갈 수 있다.
그리고 그 길에는 늘 초코가 함께였다.
마당 끝에 피어난 작은 민들레 하나에도 두 고양이는 오래도록 시선을 주었고,
지나가는 바람에도 귀를 세웠다. 그들의 하루는 조용했지만, 깊었다.
정국은 취업 후에도 여전히 이 동네에서 살고 있다.
가방엔 언제나 작은 메모장이 들어 있고,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끄적이는 습관은 여전하다.
부동산 아주머니는 그런 정국을 볼 때마다 말없이 미소 지으며 커피 한 잔을 내민다.
초코는 여전히 이곳저곳 자유롭게 넘나 든다.
행복이는 휠체어 바퀴를 굴리며 뒷마당에서 그런 초코를 쳐다보며 갈 수 있는 곳까지 천천히 따르고,
아주머니는 그 모습을 창 너머로 바라보며 속삭인다.
"그래… 너희 둘 다, 참 잘 살고 있어. 그리고, 고마워."
골목 어귀의 하늘 아래, 두 고양이는 이제 더 이상 상처 입은 존재가 아니다.
사랑받은 기억 속에서, 그들은 오늘도 여전히 아름답게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