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INTP 계유일주 남자입니다

MBTI와 사주팔자. 그 너머의 나

by 김삼월

MBTI 이전에 ‘혈액형‘이 있었다. 혈액형은 꽤나 오랫동안 나 자신을 설명하는 도구로 사용되어왔다.


“A형은 소심, B형은 다혈질, O형은 명랑, AB형은 독특함.”

“사람을 어떻게 4가지 유형으로만 나눠요?”


그때 당시에도 논란은 있었다. 복잡한 인간의 성격적 메커니즘을 설명하기에는 ‘혈액형‘은 그릇이 너무 쪼그만했다. 근데 2020년 초반 즈음 mbti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mbti는 굉장히 혁명적이었다. 왜냐하면 성격 유형의 종류가 16개로 더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은 처음 만난 사람에게 이렇게 묻는다.


“MBTI가 어떻게 되세요?”


우리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나'에 대해 궁금해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내가 어떤 사람이라는 설명은 알파벳 4글자로 축약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불확실한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의 사용 설명서'를 손에 쥐게 되다니. 이 안정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 뿌옇던 내가 선명해지는 경험!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편리한 도구가 때로는 우리의 가능성을 가두는 감옥이 되기도 한다. 인간은 왜 이렇게 분류에 진심인걸까? 그리고 그 틀을 넘어 진정한 나를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나와 타인을 이해하는 지도



MBTI는 복잡한 숲을 탐험하기 위한 '지도'와 같다. 나의 에너지 방향(E/I)이나 판단 기능(T/F)을 알려주고, 내가 왜 특정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받는지, 왜 타인과 소통이 자꾸만 엇갈리는지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이건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그냥 이런 성향을 가진 사람이구나. 그리고 나 같은 사람이 세상에 많구나."라는 안도감을 준다



AI의 등장과 사주명리학의 부흥



근데 더 강력하고 쎈 놈이 등장하는데. 그것은 바로 ‘사주팔자’이다 사주란 태어난 연도, 달, 일, 시간을 뜻하는 4개의 기둥을 의미한다. 4개의 기둥은 각 두 개의 글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래서 4개씩 2글자. 4x2해서 ‘8자’. ‘4주8자’라고 부르는 것이다.


혈액형이 4유형, MBTI가 16유형인데 반해 사주는 자그만치 60유형이다. 사주에서 자신을 나타내는 기둥을 ‘일주’라고 부르는데, 이 일주는 하늘을 뜻하는 글자 10개(천간)와 땅을 뜻하는 글자 12개(지지)를 조합하여 총 60개가 된다. 그 말은 사람의 성격을 60개로 나눌 수 있다는 말이다.


사주는 AI가 발달함에 따라서 앞으로 더 유행할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사주 해석의 복잡함을, AI가 너무나도 쉽게 해소해주기 때문이다. 만세력을 통해 사주원국을 확인하고, 그것을 AI에 입력하기만 하면 우리는 더 선명하고 세부적인 ‘나에 대한 사용설명서’를 읽을 수 있다. 나에 대한 해상도가 약 4배 더 상승하는 효과. 앞으로는 ‘mbti가 어떻게 되세요?‘가 아닌 ’일주가 어떻게 되세요?‘가 관계의 시작이 되는 첫 질문일 것이다.



틀의 함정: 꼬리표가 나를 삼킬 때


그러나 조심해야할 것이 있다. 바로 ‘지도’를 ‘영토 그 자체‘로 착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나는 P형이라서 계획을 못 세워."

"나는 사주에 물(水)이 부족해서 융통성이 없어."


이런 말들은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거는 부정적인 최면이 될 수 있다. 이것을 바넘 효과(Barnum Effect)라고 한다. 쉽게 말해 틀에 맞춰서 행동한다는 말이다. 나의 잠재력은 실제로는 무한한데, 검사 결과나 사주로 나의 한계를 규정짓게 둔다. 즉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나의 게으름이나 실수를 성격 유형이나 타고난 팔자 탓으로 돌리며 변화의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진정한 위험은 사주가 미신이라거나 MBTI가 비과학적이라는 사실의 영역이 아니다. 진짜 위험한 것은 '가변적인 인간'인 우리가 '고정된 결과값'에 자신을 끼워 맞추는 행위 그 자체이다.



그 너머의 나: 주체적인 삶으로의 확장


진정한 지혜는 도구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도구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도구의 주인이 되기 위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태도를 기억해야 한다.


첫째, 유동성을 인정하기. 실제로 인간의 뇌는 죽을 때까지 변한다고 한다. MBTI는 살면서 수없이 변할 수 있고, 사주도 정해진 운명보다 중요한 것은 '개운(開運, 운을 연다)‘으로 잠재성을 실현하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고정된 조각상이 아니라, 매 순간 변하고 성장하는 유기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


둘째, 데이터는 참고하되, 선택은 내가 한다. mbti가 '내향적'이라고 나왔다면, "나는 사람을 못 만나"라고 단정 짓는 대신 "나는 혼자 있을 때 에너지가 충전되니, 사람을 만난 뒤에는 휴식 시간을 확보하자"라고 활용해야 한다. 사주에서 '올해 운이 나쁘다'고 한다면,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올해는 더 신중하게 돌다리를 두드려보자"는 전략으로 삼아야 한다.



관찰자로서의 '나' 인식하기



'INTP인 나', '화(火)가 많은 나'는 내가 입고 있는 옷일 뿐이다. 그 옷을 입고 있는 '알맹이', 즉 그 모든 성향을 지켜보고 조율하는 '관찰자로서의 자아'가 진짜 당신이다. 당신은 우주 그 자체이다. MBTI의 16가지 유형이나 사주의 수십만 가지 조합으로도 다 담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인간'이라는 우주이다.

이 도구들을 통해 나를 파악했다면, 이제는 그 지도를 접고 눈앞의 길을 걸어가자. 당신을 정의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과거의 데이터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당신 자신이니까. 틀을 깨고 나올 때, 비로소 당신의 진짜 이야기는 시작된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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