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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산난 Aug 23. 2024

Ep2. 행운과 꿈

쿵스레덴 야생일기





비좁은 자취방 현관에 열 켤레의 신발이 울룩불룩 쌓여있다. 나는 그중에서 두 켤레를 가장 자주 신었는데, 이름은 행운과 꿈이다.


행운은 우연히 걷던 길 위에 놓여있었다. 맨발로 푸석한 길을 걷던 나는 냉큼 내 것인 양 신었다. 다행히 사이즈가 잘 맞았다. 신발이 제법 단단하고 깨끗해서 신고 있으면 멋스러웠다. 두툼한 밑창 덕에 조금 투박한 길을 걸어도 문제가 없었다. 나의 첫 직장생활이었다. 나는 행운을 신고 3년을 걸었다.


꿈은 일 년 전에 발견했다. 샛길 위에 놓여있던 꿈은 강하게 나를 끌어당겼다. 나는 행운을 신고 꿈을 챙겨 다녔다. 그러다 어느 주말에는 꿈을 신었다. 처음 신은 꿈은 딱딱해서 발에 물집이 잡혔지만 신을수록 발에 감기며 나에게 가장 편안한 신발이 되었다.


꿈을 신은 날은 자주 물구덩이나 진흙에 빠졌다. 거친 너덜길도 주저 없이 걸었다. 행운을 신을 땐 피해 다니던 길을 꿈은 항상 견뎌줬다. 나는 꿈과 어디까지 걸을 수 있을지 궁금했다. 꿈을 신는 시간이 점점 늘어난다.


짐을 싸며 신발장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아무래도 야생에 어울리는 건 흙이 잔뜩 묻어있는 꿈이다. 매일 신던 행운은 어쩌지? 두 켤레를 모두 챙기기엔 짊어진 배낭이 이미 묵직했다. 아쉬운 마음에 요리조리 살펴본 행운의 밑창이 꽤 닳아있다. 오래 신었군. 나는 행운을 상자에 담아 현관 구석에 밀어두었다. 그리고 꿈의 신발끈을 꽉 조여 맸다.



이제 꿈만 믿고 가는 거다. 나는 비행기에 올라탔다.


insta @kim.sann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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