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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셜제너럴리스트 Jun 29. 2020

6.25 70주년 기념식을 보다

아픔에 대한 추모와 평화의 메세지가 조화된 완벽한 기념식을 보다.

6.25가 벌써 70년 전의 일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내 전공은 사학이다. 한자가 싫어서 피하다 3학년 쯤 도착한 학문적 종착지는 근현대사였다. 공부해보니 근현대사, 그 중에도 남북한의 분단 과정이 참 흥미로웠다. 중립국으로서 전쟁을 피할 방법은 없었는가를 생각하며 진행과정을 살펴보면 광복, 분단, 전쟁에 이르는 과정이 한 편의 드라마 같다. 결국 분단과 동족상잔의 비극을 맞았지만 말이다.


나는 지금의 6.25 기념식이 항상 딜레마를 안고 있다고 생각한다. 북한이 6.25를 일으켰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고,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하는 지금 세상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절대왕정이자 신본주의 국가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어떤 정치인의 말처럼 '딱 5일만 불편을 감수하면' 완전한 북진통일이 가능한 것도 아니다. 설령 가능하다고 한들 우리가 입을 피해도 상상하기 어렵다. 한반도에서의 전쟁이라는 것은 단순히 두 국가의 전쟁에서 끝날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6.25 기념식은 전쟁을 일으킨 북한에 대한 대응 의지를 보이면서도 한반도의 평화를 이야기 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기념식은 그 딜레마를 잘 풀어낸 작품 수준의 행사였다. 정치적 성향을 떠나 행사로서의 완성도가 너무 높았다. 너무 감동적이라 와이프와 다시 한번 볼 정도였다.


드론으로 참전 용사에 대한 경례를 하는 장면


처음 참전 용사들의 유해가 절도 있게 내려오는 장면부터가 압권이었다. 드론으로 태극기를 만들고 하늘에 경례하는 장면과 함께 정성스럽게 편곡된 늙은 군인의 노래가 나오는 장면부터 뒷골에 소름이 올라왔다. 급유기를 스크린으로 쓴 아이디어도 너무 멋졌다. 대통령은 실종된 모든 용사들의 유해를 찾겠다는 의지를 마지막 번호의 뱃지를 다는 것으로 보여줬으며 행사는 고령의 참전 용사분들의 건강을 고려해 저녁에 진행되었다. 돌아온 용사분들을 대표해 생존 용사께서 대통령에게 귀환 신고를 할 때 저 분의 마음이 어땠을까를 생각하니 마음이 울컥했다.


10년전 6.25 기념식, 이렇게 일반적인 행사로 기념식을 치루면 나올 수 있는 그림도 한정되어 있다.
이런 그림은 국가기념식에서는 보기 힘들다. 그만큼 많은 준비가 필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보통 이런 행사는 일반적인 행사 동선이 있기 때문에 카메라로 보여지는 화면도 정해져 있고 그러다보니 지루하기 마련이다. 이 행사 리허설을 전날에만 거의 10시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카메라 워크도 하나하나 의미를 보여주기 위해 잘 짜여져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러한 참전 용사에 대한 지극한 대우는 행사 끝까지 이어졌다. 각 군의 군가가 나오면서 돌아온 영웅들에 대해 참전 용사와 각 군 참모총장들이 경례를 이어나갔고, 유해들이 버스에 승차하는 순서에서는 대통령이 비를 맞으며 경례로 예를 표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분들에 대해 이보다 더한 대우를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론과 같이 국가 행사로서는 생각하기 힘든 첨단 기술과 각 순서에 담긴 지극한 메세지들의 조화가 행사 내내 느껴졌다.


행사 자체가 참전 용사들에 대한 말 그대로 극진한 대우였다. 나는 공군정훈장교 출신이다. 나에게 지금 장병정신교육을 위해 정훈장교를 하라고 한다면 다른 것이 필요없이 이 영상 하나만 보여줬을 것이다. 너희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면 나라는 끝까지 너희를 대우해줄 것이다라는 것을 말로 할 필요 없이 이 영상 하나로 끝낼 수 있을 것 같다. 이보다 더한 정신교육이 어디있을까?


그러면서도 이 행사에서는 북한에 대한 단호한 메세지를 잊지 않았다. '체제경쟁은 끝났다. 우리 체제를 강요하지 않는다'는 메세지에서 우리 민주주의 체제의 자신감을 느꼈다. '우리는 평화를 원하지만 도발한다면 한치의 영토도 침탈당하지 않겠다. 우리는 강한 국방력을 가지고 있다'는 메시지에서는 북한에 대한 단호함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연설문의 방향은 결국 한반도의 평화로 향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참전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 우리는 전쟁을 반대합니다. 우리의 GDP는 북한의 50배가 넘고, 무역액은 북한의 400배를 넘습니다. 남북 간 체제경쟁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습니다. 우리의 체제를 북한에 강요할 생각도 없습니다. 우리는 평화를 추구하며, 함께 잘 살고자 합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평화를 통해 남북 상생의 길을 찾아낼 것입니다. 통일을 말하기 이전에 먼저 사이좋은 이웃이 되길 바랍니다.'


대통령 연설문의 이 부분에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전쟁에 의해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분들의 적개심은 얼마나 크겠는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다시 전쟁은 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참전 용사에 대한 지극한 대우로 노여움을 풀어드리면서 우리가 결국 가야 하는 평화라는 방향을 설득하려는 대통령의 마음이 메세지 맥락속에 숨어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체제 경쟁에서 우리는 승리했다. 승리자의 여유로서 자신감을 가지고 이제 평화롭게 함께 살 길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그런 대통령의 생각은 메세지 마지막 문장으로 완성된다.


'남북의 화해와 평화가 전 세계에 희망으로 전해질 때, 호국영령들의 숭고한 희생에 진정으로 보답하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호국 영령들의 마음도 전쟁으로 다시 아픔을 겪는 것 보다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이 마지막 문장을 이야기 하기 위해 전쟁으로 말로 못할 트라우마를 겪고, 심지어 목숨을 잃으신 참전 용사들에 대한 지극한 대우를 행사 내내 보여준 것이다. 그러지 않고 평화만을 이야기하는 행사였다면 자칫 오해를 받기 쉬웠을 것이다. 앞 순서에서의 지극한 추모와 대통령의 메세지가 잘 조화되어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은 완전한 행사로 완성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번 70주년 행사는 참 어려운 딜레마이지만 대충 한끼 때우는 기념식이 아닌 전쟁 영웅을 진심으로 위로하면서도 강력한 의지를 동시에 보여주면서 작품성까지 잡은 수준급의 행사였다. 연출가가 제대로 국가기념식을 연출하면 이렇게 까지 할 수 있구나를 느꼈다. 일반 직장인인 내 입장에서도 이런 행사를 보면 어떤 고민과 기법으로 행사를 준비하고 연출했을까를 생각해보는게 일에서의 기획력을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 결국 일에서의 기획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행사는 앞으로 사람의 마음을 읽고 움직이는 기획을 하는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충 한 끼 때우는 호국보훈의 달 행사의 전형
올해 해군의 대한해협해전 전승 70주년 행사는 위 사진과 큰차이를 보인다.


한 때 호국보훈의 달에 전쟁 영웅들을 대충 군용 트럭에 실어서 퍼레이드랍시고 한끼 때우는 모습을 보고 분노한 기억이 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면 이 정도로 대우 해준다는 레퍼런스가 제대로 있어야 위기 상황에서 서로가 서로를 위해 희생할 수 있지 않을까. 조금 늦었지만 내가 오늘 이렇게 평범한 하루를 보낼 수 있게 해주신 영웅들께 감사하고 싶다. 앞으로도 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분들에 대한 대우가 많이 나아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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