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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Feb 22. 2021

러시아 원정에 참전한 조선 무관의 진중일기

신류 《북정록》(서해문집, 2018)

이 기록을 읽도록 안내한 책이 있습니다. 국문학자 서신혜 교수의 《나라가 버린 사람들》(문학동네, 2014)입니다. 이 책의 마지막 장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란 글에서 조선 후기의 이른바 ‘나선정벌’을 소개하면서 당시 부대장으로 참전한 신류의 진중일기를 자세하게 인용했습니다. 그 일기가 바로 《북정록》입니다.     



제목 그대로 ‘북방을 정벌한 기록’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북방은 러시아어로 아무르강이라 부르는 흑룡강 지역으로 지금은 러시아 땅입니다. 17세기 중반 만주 일대로 남하하는 러시아를 토벌하기 위해 청나라가 조선에 파병을 요구합니다. 말이 요구지, 명령이었죠. 조선으로서는 거부할 명분도 방법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효종 9년인 1658년 4월, 함경도 포수 200명을 중심으로 꾸려진 파병부대가 당시 함경도 북병영우후였던 신류(申瀏, 1619~1680)의 인솔 아래 꾸려져 두만강을 건넙니다. 6월 10일에 전투가 벌어져 조선과 청나라 연합 부대가 승리를 거뒀고, 신류가 이끄는 파병 부대는 8월 27일에 다시 두만강을 건너 귀국합니다. 대략 다섯 달에 걸친 해외 파병 원정 기록인 셈입니다.     


1차 사료의 중요성은 제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2차 사료인 《나라가 버린 사람들》을 통해 그 내용을 파악했더라도, 원문을 읽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죠. 그래서 되도록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와 같은 역사책도 원문을 읽는 것이 진짜 공부가 됩니다. 2차 사료만 읽고 마는 건 남의 얘기만 듣고 정작 당사자는 만나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일 테니까요.     


전투에서 목숨을 잃은 포수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하며 차디찬 이역 땅에 묻을 수밖에 없는 장수의 눈물을 봅니다. 하도 안 보내주기에 거듭 애를 태우다가 다행히 날이 더 추워지기 전에 귀국할 수 있게 된 기쁨은 또 어떻고요. 전쟁은 승리와 패배로 기록되지만, 그 전쟁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 두만강을 넘기 전 어느 날의 일기에 신류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조금씩 줄어들자병들어 쓰러져 걷지 못하던 병사들도 좋아서 펄쩍 뛰며 길을 나선다새벽에 출발해 밤중까지 행군하는데집으로 돌아간다고 즐거워 떠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이역 땅에 뼈를 묻은 백성들의 목숨을 생각하다가눈물이 옷깃을 적시는 줄도 알지 못했다.     


기록의 소중함, 그리고 위대함을 다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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