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게이퍼드 《예술과 풍경》(을유문화사, 2021)
다시, 미술관 순례를 시작합니다. 한때 웬만한 미술가나 미술 연구자보다 더 부지런히 발품을 팔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잘 모르면 많이 보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잘 몰라도 의지를 갖고 자꾸 보면 어렴풋이나마 그림을 보는 안목이 조금씩 성장합니다. 더 중요한 건 분석하거나 이해하려 하지 말고 그림을 있는 그대로 즐기는 일이죠. 그림 감상이 즐겁지 않다면, 시간 낭비요 고통에 불과합니다. 이야기는 재미있어야 하고, 그림은 아름다워야 합니다.
의외로 마틴 게이퍼드의 책이 국내에 여러 권 번역돼 있더군요. 저는 디자인하우스에서 나온 《다시 그림이다》, 《내가 그림이 되다》, 《예술이 되는 순간》 이 세 권을 무척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가장 최근에 나온 이 책은 미술평론가인 저자가 25년여 동안 예술 작품을 만나기 위해 세계 각지를 돌아다닌 기록입니다. 전문적인 미술평론이 아니어서 누구나 부담없이 읽을 수 있죠.
예술 작품을 제대로 느끼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앞에 서 봐야만 한다는 고전적인 명제를 다시 환기하는 저자의 문장을 옮깁니다.
예술 작품을 정확히 감상하려면 거의 항상 돌아다녀야 한다. 단순히 집에 앉아서 이미지를 감사하는 것만으로는 작품에 담긴 방대한 정보에 접근할 수 없다. 가상의 경험이 아닌 실제 경험, 즉 실제 작품을 감상하고 실제 사람과 만나는 것이야말로 가장 깊고 풍요로운 경험이다.
브랑쿠시의 작품인 <끝없는 기둥>의 옆에 서면 무게, 부피, 높이 등 물리적인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작품과 함께 있어보지 않는다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얻을 수 없는 감각이다. 정도의 차이는 다소 있을지라도 모든 예술 작품이 그렇다. 작품의 완전한 효과를 느끼려면 그 존재아 함께 있어 봐야 한다.
사진으로 회화를 충분히 즐기고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해도, 회화가 가진 전체적인 힘을 느끼려면 실물을 봐야 한다.
이런저런 핑계로 한없는 게으름에 빠졌던 나날들을 깊이 반성합니다. 그리고 다시, 미술관으로 달려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