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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Nov 26. 2021

가장 긴 조선 왕실 문서 <이십공신회맹축>

사진제공: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특별전 <장서각에서 찾은 조선의 명품>을 보러 간 이유는 하나. <이십공신회맹축>을 두눈으로 직접 보고싶었기 때문.


일단, 두루마리로 된 이 문서를 가로로 죽 펼치면 25m. 그림은 이렇게 긴 것이 더러 있고, 또 직접 눈으로 보기도 했지만, 왕실 문서 중에서 이렇게 긴 것을 본 일이 없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국내 최장이 아닌가 합니다.


이렇게 길어진 이유가 있습니다. 일차적으로 임금과 세자를 비롯해 스무 명의 공신뿐만 아니라 그 대를 이를 적장자들까지 회맹(會盟)에 참석했기 때문이죠. 회맹은 임금의 주관 하에 세자와 공신, 적장자들을 모아놓고 천지신명과 종묘사직에 제사를 지내는 일을 뜻합니다. 정치적 의도가 선명한 이 의식의 절정은 바로 희생물의 피를 입에 바르며 단결!을 맹약하는 것.


그런데 병이 나서, 혹은 삼년상을 치르느라, 혹은 먼 곳에서 벼슬사느라 이 회맹에 참석 못한 사람들이 있겠죠. 그 사람들 이름까지 <회맹축>에 모두 적는 바람에 두루마리가 더 길어졌을 겁니다. 그래서 이것저것 붙이고 나니 최종 길이가 25m가 된 거죠.



피휘(避諱)라 하여 왕의 이름은 가렸습니다. 그리고 끝에는 시명지보(施命之寶)라는 도장을 찍었습니다. 아니, 그렸습니다. 도화서 화원이 그렸겠죠. 안타깝게도 전시장에선 도장이 찍힌 부분까지는 볼 수가 없습니다. 최대한 펼친다고 펼쳤는데도 끝부분을 다 펼치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아쉽습니다.


기본적으로 당시에 최상의 재료를 고르고, 당시에 글씨 제일 잘 쓰는 사람 시켜서 쓰고, 그림 제일 잘 그리는 사람 시켜서 줄 긋고 해서 온갖 정성을 다해서 만든 최상급 왕실 유물입니다. 어람용이라 해서 왕이 보게 하기 위한 것이라 이리도 잘 만들었으리라 추정합니다. 심지어 당시 조선에서 짜는 직물보다 폭이 배에 가까울 정도로 크게 제작하는 데만 32일가량이 걸렸다 합니다. 흔히 조선 기록문화의 정수로 꼽히는 <조선왕조의궤>보다도 더 고급스럽다고 할 정도라죠.


이것 하나만 본 것으로도 충분합니다. 저렇게 펼쳐놓은 상태를 다시 보기가 쉽지 않겠기 때문이죠. 장서각은 본디 평일에만 전시장을 여는데, 이번엔 토요일에도 전시장을 엽니다. 전시 기간도 내년 1월까지로 연장했고요. 접근성이 안 좋은 게 흠이긴 합니다만, 좋은 걸 보려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겠죠.


<전시 정보>

제목: 장서각에서 찾은 조선의 명품

기간: 2022년 1월 21일까지

장소: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경기도 성남시 소재)

유물: 국보, 보물 등 지정문화재 45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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