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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Jan 31. 2022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수 있었겠는가?

줄리아 보이드 <히틀러 시대의 여행자들>(페이퍼로드, 2021)

  

히틀러 시대는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수수께끼를 던집니다. 20세기에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는가. 나치를 다룬 책이 지금도 끊임없이 나오는 이유겠죠. 이 책 역시 제목처럼 히틀러의 시대를 다룬 역사서입니다. 이 책이 다루는 시기는 1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부터 2차 대전이 막을 내리기 시작하는 순간까지입니다. 정확하게 독일의 패배에서 히틀러의 패배까지.     


저자는 히틀러가 제3 제국이라 부른 독일을 방문하거나 여행한 이들의 기록에 주목했습니다. 정치가와 왕가를 비롯한 유력 인사들의 독일 방문을 다룬 언론 보도는 물론 여행자와 유학생들이 남긴 일기와 편지 등을 광범위하게 조사해 도대체 15년 남짓한 시간에 독일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퍼즐 맞추듯 추적했죠.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아주 흥미로운 접근 방식입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묻습니다. 만약 당신이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당신은 과연 히틀러의 실체를 제대로 간파해낼 수 있었겠는가. 이 문제에 답하는 일은 무척 어렵습니다. 당대 최고의 지성이라 불린 이들조차도 히틀러에 관해선 판단을 유보하는 경우가 많았고, 아예 히틀러의 열렬한 추종자가 되기를 선택한 이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히틀러의 실체를 모르지 않는 이상 도대체 왜? 라는 질문을 던지기는 쉽죠. 그 시대를 산 이들이 왜 그걸 몰랐을까고 따져 물으며 그 많은 이의 어리석음을 비난하는 것 또한 쉽습니다. 여기서 그치고 만다면 역사에서 우리는 아무 교훈을 얻을 수 없죠.     


그래서 저자는 그 시절 독일을 여행한 수많은 이를 사로잡은 독일의 어떤 면들을 들여다보려고 애씁니다. 그런 점들을 충분히 수긍한 다음에야 그 시대를 분석하고 평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600쪽이 넘는 분량인데도 정말 끝까지 놓을 수 없는 팽팽한 긴장감을 주는 책입니다. 교열 상의 몇 가지 오류를 빼면 번역도 꽤 좋습니다.     


저는 특히 문화 예술과 관련한 대목에 주목하며 읽었습니다. 아래 그림은 헤르만 오토 호이어가 히틀러를 ‘지상에 빛을 밝히는 자’로 묘사한 유화 <태초에 말이 있었다>입니다. 그리고 이 지구에는 아직도 이런 그림을 버젓이 그리게 하는 체제가 적어도 하나 이상 남아 있습니다. 그 체제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까요. 역사는 끝없는 질문 위에 존재하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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