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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Feb 06. 2022

답사기에 꼭 필요한 미덕은?

이봉수 <이순신이 지킨 바다>(시루, 2021)


이순신 연구자들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는 정식으로 역사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 꽤 많다는 겁니다. 어떤 계기로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깊이 흠모하고 존경하게 된 비전공자들이 스스로 이순신을 연구하겠다는 동기를 만들고, 이순신 관련 기록을 샅샅이 찾아 읽고, 이순신의 자취를 찾아 답사를 다니고, 그 결과물을 모아 책을 냅니다. 이 책의 저자 역시 그렇습니다.     


책의 부제는 ‘1592-1598 승전 현장 답사기’입니다. 답사기란 무엇인가? 말 그대로 저자(작가)가 직접 발로 뛴 결과를 적었다는 뜻이겠죠. 20여 년 동안 300차례 이상 이순신의 승전 현장을 답사했다는 저자의 노고는 옛 지도와 오늘날의 지도를 비교해가며 이순신 장군의 자취가 서린 장소들을 하나하나 고증해서 옛 지명을 밝혀낸 대목에서 단연 빛을 발합니다. 본문 곳곳에 보이는 지도들이 그 생생한 증거입니다. 이순신을 향한 ‘마음’이 없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일이죠.     


다만, 저자만이 가진 이런 장점이 정작 책에서는 제대로 발휘되지 않았습니다. 머리말을 읽으면 뒤에 올 내용에 대한 기대감이 생깁니다. 그런데 프롤로그부터 1부, 2부로 이어지는 내용에 답사의 흔적이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1부는 시간순으로 정리한 연대기인데, 이건 굳이 이 책이 아니어도 이순신을 다룬 수많은 책에서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죠. 2부의 첫 장인 <이순신의 전략전술>도 이미 많이 알려진 내용이고요.   

  

저자의 강점이 드러나는 대목은 2부의 두 번째 장인 <이순신이 싸운 현장 속으로>에서야 비로소 등장합니다. 물론, 이 장의 내용도 전혀 새롭다고 보기 어렵죠. 저자에게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이 책의 에필로그 두 편과 부록 두 편을 빼고는 ‘답사기’로서 이 책이 도대체 독자들에게 무엇을 주고자 했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이 책에는 저자가 그토록 발품을 팔아 찾아다녔을 이순신의 전적지 사진이 단 한 장도 실리지 않았습니다. 답사기란 무엇인가. 이 책을 참고로 삼아 언젠가 답사에 나설 독자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줘야 하죠. 유홍준의 답사기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20년 동안 300차례가 넘게 답사를 다녔으니 얼마나 많은 사진을 찍었겠는가. 필시 답사를 많이 다녀봤다는 사람들조차 잘 모르는 곳을 담은 사진도 많지 않았겠는가. 그런 사진을 얼마만이라도 추려서 보여줬다면 책을 읽는 재미는 물론 의미가 훨씬 더 크지 않았을까. 이럴 바에야 ‘답사기’라는 말을 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독자로서 느끼는 아쉬움이 큽니다.     


<에필로그 1: 현장에 가야 보이는 것들>에서 저자가 보여준 노고를 생각하면 아쉬움은 더 클 수밖에 없습니다. 이 책이 저자 자신을 위해 그동안 답사의 결과를 정리하는 차원에서 썼다면 더 할 말이 없죠. 하지만 저자가 답사의 결과보다는 ‘과정’에 더 주목했다면 독자들에게도 훨씬 더 좋은 책으로 평가될 수 있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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