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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Jun 13. 2022

미술사 책에서 많이 인용된 책을 드디어

이태호 <조선 후기 회화의 사실정신>(학고재, 1996)

한국 미술사 책을 읽다 보면 여러 군데에서 인용한 책이 눈에 띕니다. 미술사학자 이태호 교수의 이 책도 그렇습니다. 절판된 책이라 중고로 사서 읽었습니다. 이 책이 여러 곳에서 인용된 이유는 제3장 풍속화 편에 수록된 <조선 후기 풍속화의 유행과 퇴조>에서 언급한 조선 말기 풍속화가 일재 김윤보의 존재 때문입니다.     


비슷한 시대에 활동한 기산 김준근 관련 자료는 꽤 많고, 제게도 제법 질 좋은 도록이 몇 권 있습니다. 하지만 김윤보 관련 자료는 찾기가 참 어렵더군요. 물론 이 책에 소개된 김윤보에 관한 내용도 그리 풍부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이 정도를 언급한 미술사 책이 지금까지도 없으니 이 책이 지금도 인용되는 거겠죠.     


1996년에 나온 책이어서 27년이 지난 지금까지의 연구 성과를 생각하면 미술 연구자가 아닌 다음에야 굳이 읽어야 할 까닭은 없습니다. 작품 제목이나 소장처가 바뀐 것도 많고요. 하지만 저자가 한국 전통 미술의 최절정기였던 18~19세기의 회화 전통을 조선풍, 독창성, 사실정신의 세 가지 열쇳말로 일목요연하게 기술한 내용이라 일독할 만합니다.     


김윤보의 그림을 포함해서 이 책에서 새롭게 보게 된 그림 석 점을 본문 내용과 함께 옮겨놓습니다.     


정수영 <금강전도> 《해산첩》 중, 1799년, 종이에 수묵담채, 33.8×61.6cm, 국립중앙박물관

   

“비온 뒤 금강산을 조망한 전경도는 지평선 아래 개골 제봉을 역삼각형 구도로 집약시킨 것이다. 특히 이러한 구도는 종래의 금강전경 형식과는 다른 화면 구성이다. 당대의 화가들이 일반적으로 기암 하나하나의 특징이나 명적의 위치를 감안하여 그린 지도적인 요소를 지녔던 것에 비하여 이 전경도는 한눈에 들어온 일만이천 봉우리의 인상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것이다. 현존하는 금강산도들 중에서 가장 현장사경의 실감이 넘치는 작품이다.”     


강희언 <사인휘호> 《사인삼경도첩》 중, 18세기 중엽, 종이에 수묵담채, 26.0×21.0cm, 개인 소장

  

“<그림 그리기>는 18세기 중엽 당시 화단의 사제관계나 지식인 모임에서 그림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까닭이다. 특히 대청마루에서 다섯 사람이 <그림 그리기>를 하고 있는 장면이 주목된다. 강세황이 이들 중 누가 이 그림을 그렸는가와 ‘세 사람이 그림 그리는 광경을 지켜보니 붓을 들고 싶은 흥취가 돈다’라고 써놓았듯이, 맨 위쪽, 갓을 쓰고 편하게 앉아 구경하는 이가 바로 강세황 자신일 것이다. 정선의 진경산수와 조영석 이후에 일반화된 형식인 대청마루를 부감하여 그 정경을 포착한 것으로서 마루 위의 네 사람이 두 사람씩 마주하여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다. 큰 족자 그림을 그리고 있는 화가는 두 자루의 붓을 한 손에 쥐고 있는데, 이 사람이 바로 양필법을 구사한 정선일 것이다. 조영석이 언급한 대로 정선은 바위산이나 언덕과 계곡의 주름을 묘사할 때 붓을 두 자루 쥐고 난시준으로 죽죽 내리그어 그린 경우가 많다. 위통을 벗고 화첩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등장해 있어 개방적이고 솔직한 현장 서술이 돋보인다. 오른쪽 맨 아래 정선과 비슷한 연배의 인물은 조영석쯤일까. 그 위쪽으로 연습지에 양손으로 모으고 붓질하는 소년은 김홍도가 아닌가 싶다. 김홍도를 중심으로 가정할 때 이 그림은 1750년경의 모습일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보면 정선이 75세, 조영석이 65세, 강세황이 38세, 김홍도가 6세인 셈이다. 이들 가운제 정선과 강세황을 제외한 나머지 두 인물은 추측에 불과하지만, 실제로 당대 화단의 영향관계와 사제관계로 미루어 그 추정이 맞아떨어질 법하다. 김홍도를 그런 분위기에서 그림을 깨쳤고, 그들의 성과를 직접 토대로 하여 풍속화는 물론 전 영역에 걸쳐 최고의 화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김윤보 <죄지은 여인 매질> 《형정도첩》 중, 19세기 말, 종이에 수묵담채, 21.0×15.0cm, 개인 소장


“구한말부터 조선미술전에 출품하면서 1930년대까지 활동한 김윤보의 풍속도는 개인 소장으로 두 개의 화첩이 전해온다. 하나는 평양 감영을 중심으로 채집한 《형정도첩》이며, 다른 하나는 농촌의 세시풍속을 담은 《풍속도첩》이다. 이 화첩 그림들은 구성이나 필치가 김준근의 화풍과 마찬가지로 퇴락된 형식미를 보여준다. 인물 묘사의 정확성이 떨어지나 김준근의 풍속도보다는 선이 직선적이고, 비교적 회화적인 맛을 풍긴다. (중략) 죄지은 여인을 매질하는 <죄지은 여인 매질>로부터 간통을 범한 남녀에게 목도를 채워 연행해가는 <범화간남녀착거>까지 48점으로 꾸며져 있다. 범법자를 색출하고 취조하고 벌을 내리는 거의 전 과정을 수록한 것이다. 얼굴에 종이 덮고 물 뿌리기, 난장, 목도, 감옥, 주리 틀기, 코에 잿물 붓기, 발톱 타박, 매질, 교수형, 사약 등의 장면은 김윤보가 직접 사생한 소묘풍이라기보다 이전부터 전해오는 화본을 참작하여 그린 듯한데, 도박장을 덮치거나 포도청 감옥에 음식 넣기 등은 김윤보의 독자적 해석인 것 같다. 이 화첩은 당시의 형벌을 증거하는 기록화로서 사료적 가치가 높다 하겠다. 특히 조선시대의 관아에서 행해진 민중을 탄압하는 여러 가지 비인간적 체벌을 확인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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