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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May 27. 2023

홍위병이었던 영화감독의 자기 고백

첸 카이거 <어느 영화감독의 청춘>(푸른산, 1991)

나는 아버지의 어깨를 손으로 내질렀다어느 정도의 힘을 넣었는지 확실치 않으나 그렇게 세지는 못했을 것이다그러나 어쨌든 나는 아버지를 밀어넘겼다어깨에 손이 닿은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중략)     

어머니는 나에게 가만히 말했다.

차라리 나가라!”     


국민당의 동조자, 반혁명분자를 색출하느라 혈안이 된 소년 홍위병들이 집으로 들이닥친 건 필연이었죠. 부모를 욕보이고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모습을 그저 지켜봐야만 했던 소년. 홍위병의 전위는 아니었지만, 가담하지 않을 수 없었던 동조자이자 방관자. 지금은 세계적인 영화감독이 된 첸 카이거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죽는 것이 두려웠던 것인가그렇다나는 두려웠다그러나 죽는 것보다도 죽은 뒤에 영원히 사람들로부터 배척당하는 것이 더 무서웠다.     


이쪽이 아니면 저쪽이었던 세상. 어느 나라, 어느 국민에게나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내 부모, 내 형제, 내 친구를 ‘빨갱이’로 고변했던 경험이 이 땅에도 있었죠. 그 공포 앞에 이제 고작 중학생일 뿐인 소년이 죽음의 공포를 느끼는 건 지극히 당연했을 겁니다.     


아버지 문제는 나에게는 여전히 치욕이었고화상처럼 건드릴 수 없는 것이었다차압당하던 날어머니와 홍위병의 면전에서 받은 이중의 치욕은 나에게는 어린 나무가 꺾여 넘어지는 것 같은 충격이었다.     


훗날 첸 카이거의 아버지는 뒤늦게 공산당에 간신히 입당하고 나서 환하게 웃습니다. 이제 됐다는 듯. 비단 첸 카이거의 경험만은 아니었겠죠. 그들에게 죽음은 아주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처음 폭력에 가담한 일화를 첸 카이거는 숨김 없이 고백합니다.     


다음해 여름 나도 마침내 사람을 때렸다때린 뒤 나는 들판에 반듯이 누워 햇빛을 쬐면서 눈을 감았다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중략나는 폭력의 쾌감을 알았다그것은 공포와 치욕을 잊게 해주었다채워지지 못한 허영심과 깨닫지 못한 권력의 환상이 밑 빠진 독에 물 붓듯이 순식간에 새 나갔다.     


문혁에서 나는 가혹한 경우를 당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쓰라린 경우를 당하는 것도 목격했다. 또한 그 밖의 사람에게 쓰라린 고통을 맛보게 한 적도 있다. 나는 그저 어리석은 대중의 한 사람이었다.     

권력자 마오쩌뚱은 대중을 속였습니다. 마오의 그릇된 욕망은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를 장장 20년 동안 주저앉혔죠. 이 책은 그 가혹했던 젊은 날의 참회록입니다.     


지금은 절판된 책을 중고로 사서 읽었습니다. 

정찬의 새 소설 <발 없는 새>에서 가지 쳐 읽었습니다.     

꺾이지 않은 그 마음에 경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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