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석 Jun 09. 2023

포수의 것은 포수에게, 조선의 것은 조선에!

방현석 <범도>(문학동네, 2023)

소설을 덮으면서 상념에 잠긴다.

2023년의 대한민국은 홍범도 장군과 조국을 위해 몸 바친 분들 앞에 떳떳한가.

옮기고 싶은 말이 꾸역꾸역 내 안에서 올라오지만, 책의 마지막에 있는 작가의 말에서 한 대목을 옮겨오는 것으로 대신한다.     


76주년 광복절에 대한민국으로 귀환한 그는 대전 현충원에 안장되었다. 나는 수위로 최후를 마친 그의 무덤 앞에 무릎을 꿇고, 파란만장했던 그의 삶과 그와 더불어 살았던 이들의 생애를 생각했다. 그리고, 일어선 나는 친일파 장군들이 묻힌 묘역을 올려다보았다. 일본 육사와 만주군관학교를 나온 그들은 그가 만주 벌판에서 일본군과 혈전을 벌일 동안에도, 중앙아시아에서 극장 수위로 치욕의 시간을 견디는 동안에도, 그가 끝내 보지 못한 해방된 조국에서도 승승장구했다. 뇌수까지 일본인이 되자고 외쳤던 자들이 그의 윗자리를 차지하고 내려다보았다. 숨을 쉬기 어려웠다. 나는 그에게 끝내 절을 올리지 못하고 돌아섰다. 그에게 절을 하면 그의 윗자리에 있는 친일파 장군들이 절을 받았다. 그럴 수는 없었다.     


대전에서 돌아오는 길에 동작동 현충원에 들렀다. 그와 함께 싸웠던 이들을 기리는 대한독립군무명용사위령탑에 먼저 국화꽃 세 송이를 바쳤다. 그와 함께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만주 벌판을 종단했던 지청천 장군의 묘지에도 국화꽃 한 송이를 바치고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나는 대전 현충원에서 그랬듯 동작동 현충원에서도 절을 올릴 수 없었다.     


무명용사위령탑과 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의 묘지 바로 윗자리를 차지한 장군은 이응준과 신태영이었다. 지청천 장군의 일본 육군사관학교 26기 동기로 요코하마 맹약을 함께 했던 이응준은 일본이 패망하는 마지막 날까지 일본군 대좌로 충성을 다 바쳤다.     


지청천과 아오야마 공원묘지의 맹세를 함께 했던 일본 육군사관학교 26기 동기 신태영은 어떻게 살았나. 1942년 용산정차장 사령관이 된 그는 ‘조선인들이 한시바삐 제국의 신민이 되어 동아시아를 개척해야 한다. 내 첫 출진의 목표는 야스쿠니신사다’라고 당당하게 경성일보에 썼다. 자신이 밝힌 포부대로 제국의 신민이 된 그는 일본이 패망하는 날까지 일본군 중좌로 충성을 다 바쳤다. 그랬던 그가 자신이 언명한 필생의 목표인 일본 야스쿠니신사가 아닌 대한민국 현충원에, 그것도 일본이 패망하는 마지막날까지 대한민국임시정부 광복군 총사령관으로 일본과 싸웠던 지청천과 대한독립군 무명용사의 바로 윗자리를 차지한 이유를 나는 알 수 없었다. 세계 어느 나라에 이런 경우가 있었는지도 알지 못한다.



작가의 이전글 미지의 대륙 아틀란티스…명불허전의 SF 고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