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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Aug 21. 2023

거북선, 선조의 뒤늦은 후회, 그리고 이순신 초상

석오문화재단 <신정역주 이충무공전서 1>(태학사, 2023)


몸과 마음을 가지런히 하고 이충무공전서 정독에 임한다.


석오문화재단이 기획하고 이민웅 대구가톨릭대 석좌교수 등 7명이 역주하고 태학사가 펴낸 <신정역주 이충무공전서> 전 3권의 제 1권을 정독했다. 제 1권에는 <이충무공전서>의 차례를 따라 정조의 윤음(綸音)과 어제신도비명(御製神道碑銘), 권수(券首)에 임금이 내린 교서(敎書)와 유서(諭書), 제문(賜祭文), 도설(圖設), 세보(世譜), 연표(年表), 권1에 이충무공의 시(詩)와 잡저(襍著), 권2~4에 장계(狀啓)를 실었다.


거북선에 관한 내용과 선조의 후회가 담긴 대목에 주목했다.


먼저 거북선. 정조가 직접 지은 <어제신도비명(御製神道碑銘)>에 "따로 새롭게 배의 형태를 창안하였으니 그 모양이 엎드린 거북 모양이었다. 배의 이름을 거북선(龜船)이라 하였다."고 했다.


앞서 1604년 선조가 이순신 장군을 선무 1등 공신에 책봉하며 내린 교서에 "드디어 남쪽 섬의 첨사에서 갑자기 좌도 수군절도사의 자리를 맡게 되자 빨리 항해할 수 있는 신기한 거룻배인 차보의 제도를 참조하여 거북선을 새로이 만들어냈다."고 했다.


이 글에서 선조는 자신의 과오를 솔직하게 고백한다. "그러나 조정이 명을 내린 것이 사람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에 빠졌고, 곧바로 억울함을 풀지 못하고 충신의 뜻을 풍옥에 묻어야 했다. 배가 물을 떠난 것과 같이 되었으니 이는 참으로 조정의 계책이 잘못된 것이었다. 나는 곧고 어진 신하를 저버린 것을 부끄러워하여, 서둘러 장수의 권한을 돌려주었다." 뒤늦은 후회였으나, 그것마저 없었더라면 어찌 되었을 것인가.


이 글에는 또 하나 중요한 대목이 있다. "채색으로 모습을 그려 여러 현인들 중에서 첫째로 삼아 공로를 기록한다." 이순신의 초상화를 그리게 했다는 내용. 왕명이었으니 틀림없이 초상화를 그렸을 것이다. <선조실록>에 별도로 실린 <선무공신 별교서>에도 "이에 이순신, 권율, 원균을 책훈하여 1등에 봉하고 모습을 그려 후세에 전하며"라고 했다. 이때의 초상화가 어떤 모습이었을지 몹시 궁금해 견딜 수가 없다.


다시 거북선. 영조가 지어 내려준 제문에 "거북선을 새로 만들어 여전히 오늘에도 남아 있고"라 했다. 다시 초상화. 같은 제문에 "기린각에 화상을 그려 대신하고"라 했으니, 초상화를 충훈부에 초상화를 걸었음을 알게 한다. 정조의 제문에 "거북이가 움직이는 듯한 거북선을 만드니"라 했다.


선조의 제문에 "지난해의 패전을 말하려니 비통한데 경을 그대로 두었다면 어찌 이 지경에 이르렀으랴. 장수를 바꿔 마땅함을 잃은 것이 바로 나의 죄이니 (중략) 나는 진실로 경을 저버렸으나 경은 나를 저버리지 않았으니 원통함이 저승과 이승에 맺혀서 탄식해도 어찌할 수 있으랴."라고 했다. 현종의 제문에 "거북선을 만드니 신비한 기계를 예측할 수 없었네"라 했다.


도설(圖設)에 거북선에 관한 상세한 내용이 나온다. "뱃머리에는 거북 머리를 설치하였는데, 길이는 4자 3치, 너비는 3자이고, 그 속에서 유황 염초를 태워 벌어진 입으로 연기를 안개같이 토하여 적을 혼미하게 한다."고 했다. 귀(龜)자 기를 꽂았다고도 했다. "그 밖에는 모두 다 칼송곳을 깔았으며, 앞은 용머리, 뒤는 거북꼬리이고 (중략) 형상이 엎디어 있는 거북과 같으므로 이름을 거북선이라 하였다."는 <충무공행장> 내용을 인용했다. 또 명나라 학자의 저서를 인용해 "조선의 거북선은 돛대를 세우고 눕히기를 임의로 하고 역풍이 불건 퇴조 때건 마음대로 간다."면서 "그것은 바로 공이 창제한 배를 가리키는 것이다."라 했다. 그러면서 "충무공이 이 배를 창조한 곳은 실로 전라좌수영에 있을 때였는데, 지금의 좌수영 거북선은 통제영 거북선의 제도와 약간 서로 다른 것이 있기로 아래에 그 제식을 붙여 써 준다."고 했다. 통제영 거북선과 전라좌수영 거북선 그림이 있다.


세보(世譜)에 충무공이라는 시호의 뜻을 밝혀놓았다. "제 몸을 위태롭게 하면서 임금을 받듦을 가로되 충(忠)이라 하고, 적의 창끝을 꺾고 모욕을 막아냄을 가로되 무(武)라 하는 것이다." 연표(年表)에 "새로 전선을 만드니 크기는 판옥선만 한데 모양이 엎드린 거북과 같으므로 거북선이라 이름하다."라 했다.


거북선의 실전 운용에 관해서는 임금에게 올린 장계에 자세하다. 먼저 당포해전 승전 보고 장계에 "신이 일찍이 섬 오랑캐의 변란을 염려하여 별도로 거북선을 만들었는데, 앞에는 용머리를 붙여 그 입으로 대포를 쏘게 하고, 등에는 쇠꼬챙이를 꽂았으며, 안에서는 능히 밖을 내다볼 수 있어도 밖에서는 안을 들여다볼 수 없게 하여 비록 적선 수백 척 속에라도 쉽게 돌입하여 포를 쏠 수 있습니다. 이번 출전에 돌격장으로 하여금 타게 하고, 먼저 거북선으로 하여금 적선 가운데로 돌진하게 하여 먼저 천·지·현·황 등 여러 종류의 총통을 소게 하자,", "먼저 거북선으로 하여금 층루선 밑으로 곧바로 돌입하여 용의 입으로 현자 철환을 치쏘게 하고 또 천자, 지자 대장군전을 쏘아 그 배를 쳐부수자", "먼저 거북선을 돌입하게 하여 천자, 지자 총통을 쏘아 적의 대선을 꿰뚫게 하고", 돌격장이 탄 거북선이 또 층각선 아래로 향하면서 총통을 위로 향해 쏘아 층각을 깨뜨리고"라 했으니, 거북선이 일찍이 있었다 할지라도 그것을 건조해서 실전에 제대로 투입해 운용한 것은 이순신 장군이 처음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충남 아산 현충사에 정창섭 문학진의 <충무공 이순신 십경도>가 소장돼 있다는데, 언제 기회가 되면 10경 전체를 제대로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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