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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Nov 01. 2023

문화유산 탐방기② 광주 조선백자 요지와 분원백자자료관

올해는 유난히 백자와의 만남이 잦았다. 상반기에 리움미술관에서 열린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2023.2.28.~5.28)이 성대했다. 국내의 내로라하는 백자뿐 아니라 일본 오사카시립동양도자박물관이 마침 내부 공사 기간이라는 호재까지 겹치며 일본에 있는 귀한 백자가 고국으로 나들이한 덕분에 안복을 실컷 누릴 수 있었다.


얼마 전, 서울옥션 경매에 출품된 조선백자 달항아리는 지금껏 연구자들조차도 본 적 없는 역대급 유물이었던 바, 아쉬운 대로 경매에서 34억 원에 낙찰되며 2019년 국내 경매 최고가 기록 31억 원을 넘어섰다. 국내 대표 도자 전문가 윤용이 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로부터 달항아리의 역사적, 예술적 가치에 관한 고견을 들을 수 있었던 것도 큰 수확이다.     


최근에 출간된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제5권이 바로 조선 도자 편이다. 그동안의 감상 경험을 구체적인 미술사를 통해 갈무리할 수 있었으니 이 또한 매우 유익했다. 공부는 책상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절감하며, 경기도 광주시에 있는 분원백자자료관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 분원리 116번지. 조선시대 정부 기관 가운데 왕실과 궁궐의 음식을 담당한 곳이 사옹원(司饔院)이다. 기관의 특성상 음식을 담는 그릇의 제작과 조달도 관장했다. 그래서 그릇으로 쓸 백자를 만들 외청을 따로 두었으니, 그것이 바로 분원(分院)이다. 그리고 그 분원이 있었던 동네 이름이 분원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정표 3개가 보인다. 오늘의 목적지인 분원백자자료관, 그리고 사옹원 분원리 석비군, 그 뒤로 작게 분원초등학교 안내판이 있다. 초행길에는 잠시 헤맬 수 있다. 화살표 방향으로 언덕을 올라가면 분원초등학교가 나오는데, 여기서 운동장을 가장자리를 따라 더 가서 언덕을 한 번 더 올라야 목적지에 이르게 된다.     



시원하게 펼쳐진 잔디밭 너머에 다소곳이 자리한 소담한 건물이 있다. 2003년에 문을 연 분원백자자료관이다. 원래 분원은 이보다 아래 강변에 있었지만, 1973년 팔당댐 건설로 수몰됐다. 이후 오랜 시간 잊혔다가 2001년과 2002년에 분원리 백자 가마터 발굴조사가 이뤄졌고, 수몰 지역 가까이에 있던 분원초등학교 폐교사를 리모델링해 2003년에 문을 연 것이다.     


매장된 유물을 보호하고 현장성을 살리고자 새 건물을 짓는 대신 폐교 건물을 리모델링하는 방식을 택했고, 전시관 외관을 철판으로 둘러 수장고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함으로써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조선백자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한다. 못 쓰게 된 건물을 재활용한 방식은 탁월한 선택이었고, 붉은 진흙을 연상시키는 건물이 주변 경관과 잘 어우러지는 점도 돋보인다.     



안으로 들어가니 소담한 공간에 꾸밈새가 아기자기하다. 입구에서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아주는 것은 백자 파편으로 가득한 공간. 깨진 백자 조각은 흙과 뒤섞여 땅속 깊이 잠든다. 지금도 이 일대를 파보면 깨진 조각이 여기저기서 나온다고 한다. 물론 파편이라 해도 함부로 가져다가 소유해선 안 된다. 자료관 주변 일대가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이기 때문.      



바닥을 투명 재질로 만들어 무더기로 쌓인 백자 조각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게 했고, 벽면으로는 발굴 당시의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려고 2001년 발굴조사 당시 통째로 잘라 떼어낸 퇴적층을 그대로 전시장에 옮겨왔다. 백자 파편이 그것 자체로 중요한 까닭은 퇴적층에 따라 백자의 제작 양상과 변화 과정을 살필 수 있는 근거가 된다는 점. 한쪽에 백자를 만드는 데 쓰이는 재료와 도구도 전시해놓았다.     



이 자료관의 목적은 이 일대가 조선백자를 만든 마지막 분원이 있었던 곳임을 확인하게 하는 동시에 분원이 어떤 곳인지, 이곳에서 어떤 백자를 만들었는지 알려주기 위함이다. 그래서 박물관이 아닌 자료관이라 이름 붙였다. 관람 동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분원의 운영, 조선의 도자, 사옹원의 백자 제작, 분원리 가마의 탄생, 그리고 이곳에서 만들어진 백자의 형태와 특징까지 알기 쉽게 설명해 놓았다. 분원의 역사를 돌아보는 영상도 볼 수 있다.     



그러고 나면 이제 그 모든 과정을 거쳐 마침내 세상에 나온 완성품 백자를 만날 수 있다. 전시장에 가지런히 모여 있는 백자 6점은 이곳 자료관 소장품이다.     



건물 밖으로 나와 들어온 입구 쪽을 바라보면 비석이 길게 늘어서 있다.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해 관리하는 ‘사옹원 분원리 석비군’이다. 비석은 모두 19기. 사옹원의 최고 책임자인 제조, 분원의 최고 책임자인 번조관을 기리는 의미에서 세운 것이 주종이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는 과정에서 상당수가 매몰되거나 파괴되고 남은 것을 수습해 지금의 자리로 옮겨놓았다고 한다.     



이 가운데 키가 유난히 작은 비석이 눈에 띈다. 조선 후기 영․정조 시기의 명재상 번암 채제공(蔡濟恭, 1720~1799)에게 만들어준 것인데, 1970년대 팔당댐 건설 당시에 옮겨올 때도 이미 비석의 몸 아래가 뭉텅 잘려 나간 모습이었다 한다. ‘사옹원 도제조 채공 제공’이라는 글씨까지가 남았다. 그래서 더 반갑고 한편으로는 애틋하다. 우수수 떨어진 낙엽을 가만가만 밟으며, 비석 하나하나에 눈길을 주었다. 팔당댐 따라 오고 가는 길도 어쩌면 그리 고즈넉한지.     


2023년은 조선백자와 가까워진 해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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