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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Oct 15. 2023

문화유산 탐방기① 강화 고려궁지와 외규장각


지금은 인천시에 속한 강화도는 고려 때부터 위기에 처한 정부가 잠시 피하는 임시도읍이었다. 바다 건너라 배가 없이는 접근하기 쉽지 않고, 수도에서 가까우며, 섬이 제법 크며, 농지가 많아 식량 수급도 쉬었기 때문. 괜히 천혜의 요새라 불린 게 아니다. 1232년 고종 19년에 고려는 몽골의 침략에 맞서기 위해 무신정권 최고 권력자 최우의 권유로 도읍을 송도에서 강화로 옮겼다.     


물론 그때 송도에 있는 궁궐과 비슷하게 지었다는 고려 궁궐은 오랜 세월 이런저런 풍파에 휩쓸려 모두 사라졌다. 지금은 궁궐이 있던 터에 ‘고려궁지’라는 이름을 붙여 사적 제133호로 지정하고, 그 권역 안에 전각 몇 채를 복원해 돌보고 있다. 특히 이곳에는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대에 약탈당한 외규장각 의궤를 비롯한 조선 왕실 도서를 보관하던 외규장각이 재건돼 있으니 탐방할 가치가 충분하다.     



높다란 계단을 올라 고려궁지의 정문 승평문(升平門)을 지나면 제법 시원하고 상쾌한 공간이 열린다. 오른쪽으로 강화 유수부동헌을 먼저 봐도 좋지만, 고려궁지를 찾은 까닭이 외규장각이므로 왼쪽으로 걷는 길을 택하기로 한다.     



널찍한 잔디 위로 단아하게 자리한 외규장각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1782년 정조 임금의 명으로 지은 외규장각은 왕실 도서관이었다. 전란 등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창덕궁에 있는 규장각을 궁궐 밖에 하나 더 지었다고 해서 바깥 외(外) 자를 붙여 외규장각이라 이름했다.     



지금 서 있는 건물은 물론 정조 때 지은 그 건물이 아니다. 외규장각은 병인양요 때 파괴됐고, 이후 오랜 세월 터만 남아 있다가 1995년부터 2001년까지 발굴 조사를 거쳐 2003년에 복원됐다. 새 건물의 나이는 스물. 이제 어엿한 성인이 됐다.     



물론 왕실 도서도 없다. 이곳은 외규장각과 외규장각 의궤를 소개하는 전시공간으로 단장돼, 관람객이 신발을 벗고 안에 들어가 내부를 둘러볼 수 있다. 외규장각 발굴조사와 복원, 어람용 의궤와 분상용 의궤, 외규장각 의궤 귀환 일지 등을 알기 쉽게 설명해놓아서 외규장각이 어떤 곳이었는지, 외규장각 의궤가 얼마나 귀한 유물이며 어떻게 프랑스에서 돌아왔는지 알려준다.      



건물을 나와 뒤로 난 계단을 오르면 주변 풍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왜 이곳에 궁을 지었는지 알겠다.     

외규장각을 내려와 오른쪽으로 잠시 걸음을 옮기면 강화 동종이 있다. 성문을 여닫는 시각을 알리는 데 쓴 종이라 하는데, 보물로 지정된 원본은 균열이 생겨 강화역사박물관으로 옮기고 복제본을 종각 안에 걸어 놓았다. 종각 옆에는 수령 400년을 훌쩍 넘은 회화나무가 보호수로 관리되고 있다. 고려궁지 자체가 워낙 역사가 깊은 곳이어서 그런지 이 일대에 키 크고 나이 많은 귀한 나무가 여럿 있다.     



여기서 아래쪽에 <강화유수부 이방청>이 있다. 이방은 지금의 행정안전부로 해당한다. 안내문을 읽어봐도 지금 건물이 언제 지금의 형태를 갖췄는지 모르겠다. 틀림없이 다시 지은 건물일텐데 가타부타 설명이 없다.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6호란다.     



반대편으로 이것과 짝을 이루는 건물이 <강화유수부동헌>이다. 강화의 행정책임자였던 강화유수의 업무 공간이다. 이곳의 설명문을 읽어야 비로소 1977년 강화 중요 국방유적 복원 정화사업에 따라 건물이 정비됐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가장 볼만한 것은 현판이다. 초서로 쓴 명위헌(明威軒)이라는 글씨는 조선 후기의 명필 백하 윤순(尹淳)의 솜씨라 한다.     



이 건물 옆에도 큰 나무가 서 있으니, 400살이 넘은 느티나무다. 사람은 수없이 나고 죽었어도 저 나무만은 그 모든 역사를 똑똑히 목격했으리라. 고려궁지 바로 옆 카페 앞에도 수령 700년에 이르는 은행나무가 있다. 이 유서 깊은 나무의 위치는 고려 궁궐 자리가 지금보다 훨씬 넓었음을 보여준다. 커피 한 잔 생각이 아니었으면 못 보고 그냥 지나칠 뻔했다.     


고려궁지 주변으로 여러 문화유산이 있어, 넉넉하게 시간을 잡으면 돌아보는 즐거움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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