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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Dec 12. 2023

이순신의 백의종군을 기억하는 특별한 그림

[석기자미술관]④칸옥션 제30회 미술품 경매

     


고미술 전문 경매회사 칸옥션의 미술품 경매에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을 소재한 그림 한 점이 나왔다. 한국화가 이석우 화백의 그림에 시 한 편이 어우러진 시화(詩畫)다.     


윗도리를 벗어 던진 장정 다섯이 머리끈 질끈 동여매고 달라붙어 무거운 짐을 실은 수레를 힘차게 밀며 앞으로 나간다. 한 명은 앞에서 손잡이를 잡아끌고, 두 사람은 양쪽 바퀴를 잡아 돌리고, 두 사람은 뒤에서 있는 힘껏 수레를 민다. 모래인지 진흙인지 모를 지면의 저항을 거스르며 힘차게 수레를 몰아가는 이들의 자세며 근육은 거친 노동에서 오는 긴장감으로 팽팽하다.     


그림 오른쪽에 적힌 시의 제목은 백의종군(白衣從軍).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을 기리며 쓴 것이다. 원문을 그대로 옮긴다.     


白衣從軍(백의종군)     


그래도 당신은 默默(묵묵)

그 무거운 짐을 밀며 追從(추종)하시든

그윽한 精誠(정성)     


하늘도 울고 땅도 울고

겨례도 울었다오     


이제 밟어선 옛 터전엔

새 풀이 향겨웁소     


忠武公詩碑除幕式(충무공시비제막식)

李玟基(이민기)     


이순신의 백의종군 길을 따라 걷다가 울컥 솟아난 시심(詩心). 자기 생(生)에 지워진 한없이 무거운 짐을 묵묵히 감내하며 파괴된 조선 수군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전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장군의 길은 피와 땀과 눈물로 얼룩진 길이었을 터. 장군이 온 힘과 마음을 다해 나아간 그 길 위에서 시인은 새로 돋아난 풀 향기에 옛 일을 가만히 더듬는다.     


충무공 시비 제막식에 즈음해 제작한 것으로 보이나, 정확한 시기는 적혀 있지 않다. 시를 쓴 이민기라는 분의 흔적을 찾아보니, 경남 통영의 시인으로 청마 유치환 시인과 절친한 사이였다고 하며 통영여고 교감을 지냈다. 통영에 통제영이 있으니 자연스럽게 시인과 연결된다. 하지만 찾을 수 있는 자료가 온라인에는 더는 없다.     

그림 끝에 錫雨(석우)라는 화가의 낙관이 있다. 부산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그 지역 화단에 큰 족적을 남긴 한국화가 청초 이석우(靑草 李錫雨, 1928~1987) 화백이다.     


이석우 화백은 1928년 충북 청원 출생으로 서울대 미대에 입학했다가 육이오 전쟁 때 입대했따가 건강이 안 좋아 통영으로 후송돼 제대했다. 전쟁이 끝난 뒤 통영에서 교편을 잡았다가 이후 부산으로 거처를 옮겨 정착했다. 1953년 미국공부원에서 연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국내 외에서 활발하게 전시에 참여했고, 동아대 교수를 비롯해 부산 지역 미술 단체에서도 다양한 활동을 했다.     


‘평생 민중의 인고와 희열을 화선지에 담아낸 화가’로 평가되기도 하는 이석우 화백은 서울대 미대에서 당시 교수였던 근원 김용준의 제자로 남종 산수 화풍의 영향을 받았지만, 전통 회화가 주로 다루던 산수, 화조 등 소재의 관념성에서 벗어나 당대의 현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이 작품 역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을 거룩한 노동의 땀방울로 승화해 흔히 떠올리기 마련인 소재의 상투성에서 과감히 벗어났다. 이순신 장군과 관련한 그림이라 더 자세히 살펴보고 기록으로 남긴다. 비단에 먹으로 그리고 엷게 채색했으며, 크기는 세로 18cm, 가로 44.7cm. 경매 번호 114번, 추정가는 30만 원에서 80만 원이다.     


     


출품작 가운데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이 있으니, 장장 400m에 이르는 대작 <한강전도>로 유명한 역사풍속화가 혜촌 김학수(金學洙, 1919~2009)의 <마포범주(麻浦泛舟)>라는 작품이다.     


한강 마포나루 옆 언덕 위에 오르면 눈앞에 펼쳐졌을 일대의 빼어난 경관을 커다란 화폭에 품어 안았다. 수도 한양의 물류 1번지라 해도 좋을 마포나루의 옛 모습을 상상하며 그린 것인데, 구도로 보나 짜임새로 보나 화가의 농익은 기량이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이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깨알같이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데, 어느 하나 소홀하게 그린 흔적이 없이 세심한 정성이 가득하다.     


그림 위에 두 글자씩 나란히 적힌 것은 15세기 한양 풍경 열 가지를 노래한 귀하디 귀한 시집 <한도십영(漢都十詠)>의 일곱 번째 시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     


麻浦泛舟(마포범주마포 강에 배 띄우고     


西湖濃抹如西施(서호농말여서시)  서호의 길은 꾸밈 서시(西施와도 같아서,

桃花細雨生綠漪(도화세우생녹의)  복사꽃 가랑비가 푸른 물가에 내리네.

盪漿歸來水半蓉(탕장귀래수반용)  배 저어 돌아오니 물에 반이나 연꽃이네.

日暮無人哥竹枝(일모무인가죽지)  날 저무는데 죽지가(竹枝歌부르는 사람 없어.

三山隱隱金鼈頭(삼산은은금별두)  삼산은 금오의 머리에 있어 아득하고,

漢陽歷歷鸚鵡洲(한양력력앵무주)  한양 땅에는 역력한 앵무섬이 있다는데,

夷猶不見一黃鶴(이유불견일황학)  머뭇거리며 보아도 황학은 보이지 않고,

飛來忽有雙白鷗(비래홀유쌍백구)  문득 배구 한 쌍이 나타나 훨훨 날아오누나.     


을묘년 여름에 그렸다고 적어놓아 1975년 작임을 알려준다. 조선 전기의 시를 빌려 그 시대에 가장 번성했을 마포나루의 모습을 그림으로나마 볼 수 있게 해주니 어찌 귀하지 않겠는가. 사생의 기록은 아니지만, 이런 그림 자체가 워낙 귀하니 특별히 기록해둔다. 종이에 먹으로 그리고 엷은 채색을 입혔다. 세로 66.3cm, 가로 119.2cm. 경매 번호 63번, 추정가는 1백만 원에서 2백50만 원.     


     


경매는 이달 21일(목) 오후 4시에 진행되며, 출품작은 경매 전날인 20일(수)까지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칸옥션 전시장에서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전시 정보

제목칸옥션 제30회 미술품 경매 프리뷰 전시

일시: 2023년 12월 20()까지

장소인사동 건국빌딩 건국관 1층 칸옥션 전시장

문의: 02-73-8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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