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기자미술관㊾ 김남표 개인전 <구멍>
어떤 일에든 ‘과정’이 있고 ‘결과’가 있기 마련이다. 과정 없는 결과가 있을 수 없고, 결과 없는 과정은 무의미하다. 화가에게 과정은 ‘작업’이고 결과는 ‘작품’이다. 작업과 작품 두 가지를 모두 가진 화가는 복 받은 존재다.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작업만 있을 뿐 작품으로 기억되지 못하는 화가가 있는가 하면, 작품은 유명한데 정작 반복되는 작업에 매여 자기 작업을 못 하는 화가도 있다.
그런 한계를 ‘구멍’이라고 하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날그날의 삶에 충실했던 한 화가가 한참 시간이 흘러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을 한다. 내 작업은 대체 무엇이었지? 화가는 그제야 알았다. 그림 그리며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니 남은 것은 작품이었을 뿐. 화가로서의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지금의 나를 그려볼 수 있게 해줄 작업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거지? 화가가 깨달은 그 결여를 ‘구멍’이라고 부를 수 있으리라.
이런 생각을 구체화하게 된 건 김남표 작가와의 대화였다. 김남표의 작업실에는 매번 다른 그림이 걸린다. 그것도 구작이 아닌 신작이다. 새로운 작업의 흔적이다. 김남표 작가는 고민이 많다. 다만 고민에서 머물지 않고 몸을 움직여 그린다. 안나푸르나 작업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김남표는 이미 새로운 작업을 향한 열의로 한껏 들떠 있었다. 작품이 아니라 작업에 관한 이야기를 화가에게 직접 들으면서 나 또한 내 안의 ‘구멍’을 발견한다. 누구에게나 그런 구멍이 있다.
‘구멍’이란 이름으로 김남표 작가의 새로운 작업을 선보이는 전시회가 서울 성북구 성북동의 전시공간 옵스큐라에서 열리고 있다. 간송미술관에서 길을 건너 언덕길을 한참 걸어올라가 보면 불현듯 모습을 드러내는 뜻밖의 공간. 가파른 달동네 어느 어귀에 어울리지 않는 이방인처럼 자리한 이 낯선 공간 또한 ‘구멍’이다. 구멍에서 구멍을 전시한다니. 모든 구멍은 뭔가를 숨기고 있다. 그래서 궁금증을 자아낸다. 공간도 궁금하고 전시도 궁금하다.
신고전주의의 대가로 꼽히는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는 나폴레옹이 유럽을 제패하고 돌아와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궁정화가로서 기꺼이 주군의 대관식 장면을 그린다. 루브르박물관이 자랑하는 저 유명한 그림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이다. 멋도 모르고 나폴레옹에게 관을 빼앗긴 교황의 표정은 아연하다. 대관식에 동원돼 뜻하지 않은 돌발 상황을 지켜본 이들의 심경은 어땠을까. 서늘한 바람이 밀려 들어올 만큼 가슴 한가운데 생긴 커다란 구멍이 생겼음을 깨닫고 저도 모르게 부르르 떨지 않았을까.
김남표는 그 아이러니를 자기 방식으로 해석했다. 화면을 핏빛으로 물들이는 황제의 대관식은은 다비드의 그림 뒤에 숨은 실체를 드러낸다. 그것은 영예로움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다비드의 그림이 보여주는 대관식은 역사적 진실과 얼마큼 가까운가. 세계의 정복자가 되어 스스로 가장 크고 존귀한 자리에 오른 자의 영광, 그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을 거대한 기념비로 만든 화가의 눈은 어떤 구멍을 들여다봤을까. 강렬한 원초성이 처절하게 드러나는 이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김남표 작가가 사용한 것은 붓이 아닌 ‘나무젓가락’이었다.
자크 루이 다비드의 나폴레옹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신작 유화 11점과 더불어 갤러리 가장 안쪽에 숨은 작은 공간 벽면에 과정으로서의 ‘작업’을 보여주는 수채화 드로잉이 빼곡하게 걸렸다. 작업의 ‘과정’으로서의 드로잉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구멍을 타고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그리기의 본능을 화가 스스로 주체할 수 없었으리라. 그 구멍은 처음부터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