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기자미술관(63) MMCA 기증작품전: 1960-70년대 구상회화
1950년대에 불어닥친 추상미술 열풍 속에서 화가들의 고민은 깊어졌다. 나도 시대의 흐름을 좇아 추상화를 그려야 하나? 구상회화를 그리면 구닥다리 취급을 받지 않을까? 그럴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팽배한 시절이었다. 맹렬한 시대 조류를 타고 추상에 투신한 이들이 있었는가 하면, 누가 뭐라건 해오던 대로 묵묵히 자기 그림을 그린 이들도 있다. 옳고 그름의 문제도, 좋고 나쁨의 문제도 아니다. 추상이든 구상이든 예술은 오롯이 예술로 평가받으면 될 일이다.
이 전시는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다뤄진 구상회화, 특히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구상회화 작품을 재조명하는 자리다. 이 전시를 가능하게 한 것은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이다. 그동안 우리 근현대 미술사 연구가 눈에 띄는 진전을 이루지 못했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작품의 부재였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립현대미술관조차 근현대 미술 컬렉션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이 빠진 것처럼 군데군데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그 빈 자리를 단번에 메워준 것이 바로 이건희 컬렉션이다. 대부분 그동안 못 봤던 작품들이라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도상봉 화백의 작품 <국화>다. 정물화에 관한 한 도상봉은 일급 화가다. 물론 풍경화도 많이 그렸지만, 도상봉 예술의 진수는 정물화다. 도상봉은 평생에 걸쳐 꽃과 백자 항아리가 어울린 정물을 그렸다. 흠잡을 데 없이 균형 잡힌 안정적 구도에 희고 노란 국화의 색감이 더없이 아름답다. 화가의 단정하고 섬세한 성품을 보는 듯하다. 도상봉의 그림엔 태작이 별로 없다. 전시장에 걸린 작품들도 뭐 하나 빠지는 것 없이 고른 수준을 보여준다.
정물화에 도상봉이 있다면 인물화는 김인승이다. 왼쪽 의자 등받이에 걸린 트렌치코트의 검정과 여인의 검은 머리, 백옥 같은 여인의 얼굴색과 백자 항아리의 빛깔이 대조를 이루며 감상자의 시선을 가운데 붉은 원피스 입은 여인으로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여인의 표정부터 자세, 피부색, 옷 주름 묘사에 이르기까지 김인승이 왜 당대를 대표하는 인물화가였는지 보여준다. 살아 있는 사람을 생기라곤 없는 마네킹처럼 묘사한 어떤 화가들의 그림과 비교해 보면 더 잘 알 수 있다.
인물이든 풍경이든 생동감이 없으면 그것은 죽은 그림이다. 실제로 전시장을 돌면서 그런 그림을 꽤 많이 볼 수 있었다. 이건희컬렉션이라고 해서 모든 작품이 고른 수준을 보이는 것은 절대 아니다. 죽은 그림도 적지 않다. 유명 화가라고 예외는 없다. 그런 와중에 만난 강정영의 <선착장 풍경>은 전시장에 걸린 수많은 풍경화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것이었다. 포구의 생선 가게를 커다랗게 중심에 놓고 해변을 따라 펼쳐지는 풍경을 한 화면에 배치한 솜씨가 예사롭지 않거니와 화면 오른쪽에서 들어오는 해 질 녘의 빛을 화면 곳곳에 섬세하게 녹여 넣은 기량도 수준급이다.
강정영이라는 화가가 누군가 봤더니 대구 출신으로 부친이 우리나라 구상화단의 대가였던 강우문(1923~2015) 화백이다. 대구를 중심으로 한 영남화파의 예술적 유전자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강정영은 동시대 다른 화가들을 멀찌감치 앞설 정도로 뛰어난 그림을 그렸지만, 아깝게도 부친보다도 12년이나 일찍 세상을 떠났다. 이 그림 하나만 봐도 영남화파의 구상 전통이 얼마나 탄탄한 것이었는지 알 수 있다. 강정영의 존재는 이번 전시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 가운데 하나다.
같은 맥락에서 나는 이 전시를 통해 그동안 알고만 있었던 화가들의 진가를 재발견하는 기쁨을 누렸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윤중식이다. 유족으로부터 작품을 대거 기증받은 성북구립미술관 전시를 통해 몇 차례 윤중식의 작품을 볼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들을 보면서 내가 윤중식의 진면모를 잘 모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6․25전쟁 때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아픔을 겪은 윤중식은 평생토록 가족을 향한 애틋한 그리움을 화폭에 담았다. 그러니 언뜻 봐선 대단하게 보이지 않는 작품 <소년과 정물>이 혼자 남은 어린 아들을 향한 깊은 애정을 담았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그림이 완전히 달리 보인다. 윤중식의 그림에 흐르는 공통된 정서는 바로 ‘그리움’이다. <소년과 정물> 외에는 모두 유족이 기증한 작품인데, 윤중식이라는 화가는 분명 새롭게 재평가돼야 한다.
내가 이번 전시에서 거둔 가장 큰 수확은 김영덕이라는 화가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이다. 전시에 소개된 화가 33명 가운데 유일하게 시대를 정면으로 직시하는 강렬한 리얼리즘을 보여주는 김영덕의 작품을 여태껏 왜 몰랐는지 모를 일이다. 서슬 시퍼렇던 1976년에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화가의 기백이 놀랍다. 전시장에 걸린 작품 5점이 모두 좋다. 이렇게 뛰어난 화가가 있었다니.
김영덕은 1931년 충남 서산 태생으로 1950년대 부산 국제신문의 전신인 국제신보 기자로 일하며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주로 부산을 거점으로 활동한 까닭에 중앙화단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 같다. 1960년대에 처음 선보인 인탁(人拓), 은 인간 탁본의 줄임말로 박제된 인간의 시신을 형상화한, 당시로는 대단히 파격적인 시도였다. 반세기가 흐른 지금 봐도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을 정도로 시대 정신과 미적 감각이 돋보인다.
거친 붓 터치와 두툼한 질감이 특징적인 ‘소의 화가’ 황유엽, 모래와 흙으로 빚은 향토적 질감의 서정 세계를 보여준 최영림, 생선을 해풍에 널어 말리는 건어장을 그린 김태, ‘장미 화가’로 유명한 황염수의 풍경화와 정물화도 눈길을 끈다. 그중 전남 강진 출신의 화가 윤재우의 <홍도>를 보면서는 확실히 남도 출신 화가들에게서는 다른 이들에게선 볼 수 없는 특유의 기질 같은 것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풍경이라도 색을 저렇게 쓰는 건 틀림없이 ‘남도 기질’의 소산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오지호의 그림을 봐도 그렇다.
삼고초려 끝에 안구정화에 성공했다. 주말에 아무 생각 없이 차를 몰고 두 번 갔다가 주차장에 들어가려고 길게 늘어선 줄을 못 견디고 두 번이나 그냥 돌아나왔다. 결국, 평일에 휴가를 내고 기어이 전시를 보고야 말았으니, 두 차례 헛걸음이 아깝지 않을 만큼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공부였다. 좋은 전시는 새로움에 눈 뜨게 한다. 그런 면에서 올해 최고의 전시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