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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타향살이 속에서 꽃피운 이응노의 ‘사람’

석기자미술관(81) 고암 이응노 탄생 120주년 기념전

by 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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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민주화의 도도한 물결 속에서 비로소 동백림 사건의 그늘에서 벗어난 이응노는 1989년 1월 호암갤러리의 초청으로 12년 만에 고국에서 열게 될 개인전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이응노는 끝내 고국 땅을 밟지 못한다. 전시가 개막한 뒤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파리에서 눈을 감고 말았던 것.


20240809_173005.jpg <구성(Composition)>, 1978
20240809_173049.jpg <군상(People)>, 1988



우리가 흔히 ‘인간 시리즈’라고 부르는 이응노의 사람 연작은 1960년대 중반에 처음 등장했다. <구성(Composition)>이라는 제목이 붙은 초창기 그림에서는 이응노 예술의 한 축을 이루는 ‘문자추상’에서 ‘인간 시리즈’로 나아가는 과도기적 형상을 볼 수 있다. 해강 김규진 문하에서 일찍이 서화를 배운 이응노에게 문자를 추상화하고 그 도상을 발전시켜 사람으로 나아간 과정은 어쩌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귀결이었을지도 모른다.


20240809_173058.jpg <군상(People)>, 1985



이응노는 <구성>, <춤>, <군상>이라는 제목을 그때그때 섞어 쓰다가 1980년대로 넘어오면서 모든 작품의 제목을 <군상>으로 통일한다.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 소식을 파리에서 언론 보도를 통해 접한 이응노는 자기 예술의 방향을 바꾸기로 한다. “지금까지 추상만 해왔다. 그러나 <군상>부터는 구상으로 바꿔서, 이 혼란한 시기에 좀 더 명료하게 평화, 남북통일 등의 염원을 좀 더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전달하겠다.”라고 다짐했다.

20240809_173145.jpg <군상(People)>, 1967-1969
20240809_173149.jpg <군상(People)>, 1967-1969
20240809_173120.jpg 옥중조각(밥풀조각),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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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전시장은 인간 시리즈 초기 작품으로 시작한다. <구성>이라는 제목이 붙은 가장 이른 시기의 작품이 1964년 작이다. 이때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의 작품을 통해 이응노의 인간 시리즈가 어떻게 변화해갔는지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지난 1부 전시에서 선보였던 이응노의 밥풀 조각 3점을 볼 수 있다. 이 가운데 1968년 작의 뒷면에 이런 문구가 있다. “材料(재료) 먹다가 남은 밥과 그리다가 바린(버린) 窓戶紙(창호지) 外皮紙(외피지)를 使用(사용)한 것이다. 68年(년) 十月(시월) 大田(대전)에서 이응노 創作(창작).” 갤러리 관계자의 이야기를 들으니, 밥풀이라는 재료의 취약성 때문에 방부 처리를 한다고 해도 이 작품들을 언제까지 온전히 보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단다. 전시에서 볼 기회가 앞으로 많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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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9_174320.jpg <반전평화(反戰平和)>, 1986, 서울시립미술관 소장(가나아트 이호재 기증)



2층 전시장에서는 1980년대에 난만하게 꽃핀 이응노의 <군상>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여기서 눈에 띄는 1986년 작 <반전평화>는 무수히 많은 사람의 형상이 모여 반전평화(反戰平和)라는 글자를 이루는, 문자추상과 인간 시리즈를 결합한 특별한 작품이다. 이호재 가나아트 회장이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한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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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주목해볼 것은 전시장 끝에서 만날 수 있는 크리스털 작품이다. 이응노는 프랑스의 크리스털 제조사 바카라(Baccarat)의 제안으로 1986년 <군상>의 도상을 활용해 장식용 크리스털을 제작했다. 올림픽 경기 종목 가운데 마라톤, 수영, 승마, 축구, 유도, 장대높이뛰기 등 여섯 종목을 시각화했다. 크리스털 여섯 종을 모두 한자리에서 소개하는 건 이번 전시가 처음이라고.


머나먼 타국에서 기나긴 타향살이를 해야 했던 한 예술가가 있었다. 북에 사는 아들을 만나려던 것뿐이었는데, 폭력적인 시대는 그런 그를 가만히 놓아두지 않았다. 그는 이념 지향적 인간이 아니었지만, 한때 이념 지향적 인간으로 살아야 했다. 신산하기 이를 데 없는 삶 속에서 고암 이응노는 ‘사람’을 응시했다. 화판 위에 무수히 사람을 그리며 마음의 고통을 지워나갈 수 있었다. 1988년 고암은 어느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 그림은 모두 제목을 ‘평화’라고 붙이고 싶어요. 저 봐요. 모두 서로 손잡고 같은 율동으로 공생공존을 말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 삶이 곧 평화지 뭐.”


■전시 정보

제목: 고암 이응노 탄생 120주년 기념전 <II. 고암, 인간을 보다>

기간: 2024년 9월 8일(일)까지

장소: 가나아트센터 (서울시 종로구 평창30길 28)

문의: 02-720-1020


20240809_173801.jpg <군상(People)>, 1981-1988, 총 8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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