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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Dec 16. 2024

억압에 맞선 저항의 예술…이란 태생 작가 니키 노주미

석기자미술관(132) 니키 노주미: 누군가 꽃을 들고 온다

 


1979년 이란 혁명 기간에 잠시 문을 닫았던 테헤란 현대미술관이 이듬해 혁명 1주년을 기념하는 전시회를 연다. 이때 초대받은 작가 가운데 한 명인 니키 노주미(Nicky Nodjoumi, 1941~)의 작품 120여 점이 미술관 전시장에 걸린다. 이윽고 이란의 한 신문이 니키 노주미의 작품을 비판하는 기사를 싣는다.     


니키 노주미의 대담하고 저속한 태도는 그가 자신의 모든 개념적 공격과 정신적 더러움을 이맘 호메이와 혁명의 진정하고 역동적인 운동에 영향을 미쳤던 단체들에 쏟아내게 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노주미는 알라와 이맘 호메이니의 길을 따르는 모든 개인과 단체를 가리지 않고 공격한다.”     


 


기사가 나간 뒤 미술관이 즉각 노주미의 작품을 전시장에서 내렸지만, 분노한 군중이 미술관으로 밀려드는 걸 막을 순 없었다. 어서 이 나라를 떠나! 친구의 조언에 따라 노주미는 테헤란을 도망쳐 나왔고, 몇 시간 뒤 이라크가 공항을 폭격하며 이란-이라크 전쟁이 터졌다. 졸지에 망명자 신세가 된 노주미는 아내와 딸이 있는 미국 마이애미로 간다. 테헤란 현대미술관에 전시됐던 작품 120여 점이 모두 소실됐다. 노주미는 이란 혁명 전에 완성한 자기 작품을 다시는 보지 못한다. 게다가 마이애미의 안락과 여유는 노주미에게 더 큰 고통이었다. 

    

내가 결국 미국에 도착했을 때그건 그냥 시간 낭비였다아무것도 없었다나는 일할 수도 없었고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그리고 돌아갈 수도 없었다정말 힘든 시간이었다.”     


누군가 꽃을 들고 온다, 1976, 79.5×57.5cm, 종이에 모노타이프
(좌) 걷기 그리고 말하기, 1976, 172×114cm (우) 굳건히 서다, 1976, 177.8×114.3cm, 캔버스에 유채


  

그 혼란스러웠던 시기에 가까스로 지켜낸 니키 노주미의 혁명 이전 작품이 한국에 왔다. <누군가 꽃을 들고 온다>는 노주미가 1976년에 제작한 첫 모노타이프에 페르시아어로 쓴 문장이자 작품 제목이다. 여기에 <걷기 그리고 말하기>와 <굳건히 서다>까지 1976년 작이 석 점이다. <굳건히 서다>에서 붉은 천을 뒤집어쓴 채로 얼굴을 가린 인물은 이란의 마르스크주의 운동가이자 언론인, 시인이었던 호스로 골레소르키. 팔라비 왕조에 반대하는 게릴라 운동의 핵심 인물이었던 그는 왕세자 납치 음모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총살형을 당한다. 당시 나이 서른. 페르시아어로 골레소르크(golesorkh)는 ‘붉은 장미’를 뜻하는데, 골레소르키의 생전 별명이 바로 ‘붉은 장미’였다. 이후 ‘붉은 장미’는 이란 혁명의 상징이 됐다.      


총과 꽃, 1981, 32.2×31.5cm, 종이에 모노타이프



2018년 첫 개인전에 이어 국내에서 열리는 니키 노주미의 두 번째 개인전에서는 이란 혁명 전인 1976년 작품 석 점과 더불어 미국 망명 직후인 1981년 마이애미에서 제작한 모노타이프 60여 점이 최초로 공개된다. 모노타이프(monotype)는 금속이나 석판 위에 유화구나 잉크로 그림을 그리고 종이를 덮어 인쇄한 것을 가리킨다. 판화와 회화의 중간 과정으로, 한 장 또는 몇 장밖에 얻지 못한다. ‘즉각성’이 특징인 제작 방식인 셈. 17세기의 조반니·베네딕트·카스틸리 오네, 19세기의 블레이크, 드가 등의 작품이 제법 남아 있다고.     

 

벽들, 1981, 80.5×61cm, 종이에 모노타이프

   

낯선 이들과의 항복, 1981, 80.5×61cm, 종이에 모노타이프
푸른 말, 1981, 각 167×116cm, 종이에 모노타이프

 

니키 노주미는 지난 40여 년 동안 회화를 통해 권력과 폭력성의 관계를 탐구해온 이란을 대표하는 예술가로 꼽힌다. 2020년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시위 예술 가운데 가장 영향력 있는 작품 25선 The 25 Most Influential Works of American Protest Art Since World War II>에 선정됐고, 그의 삶과 예술 세계를 담은 BHO 다큐멘터리 스릴러 <A Revolution on Canvas>가 2023년에 공개됐다.    

 

■뉴욕타임스 기사

https://www.nytimes.com/2020/10/15/t-magazine/most-influential-protest-art.html     


■전시 정보

제목: <니키 노주미: 누군가 꽃을 들고 온다>

기간: 2025년 1월 12일까지

장소: 바라캇 컨템포러리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58-4)

문의: 02-730-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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