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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피카소’ 치바이스의 부채 그림 경매에 나왔다

석기자미술관(168) 서울옥션 3월 기획경매 프리뷰

by 김석 Mar 14. 2025
Lot 113. 치바이스, 안래홍과 매미, 종이에 수묵채색, 지름 50.5cm



중국 근현대 미술의 거장 치바이스(齊白石, 1863~1957)의 부채 그림이 서울옥션 3월 기획경매에 나왔다. 출품 제목은 <안래홍과 매미 Amaranth and Cicada>. 안래홍(雁來紅)은 아마란스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하다. 접고 편 세월의 흔적이 종이 곳곳에 남아 있지만, 전체적으로 상태가 나쁜 편은 아니다. 부챗살은 아주 짱짱하다.     



그림이 있는 면에는 탐스럽게 피어난 붉은 잎사귀가 이리저리 뻗어나가고, 화면 왼쪽 가지 위에 매미 한 마리가 앉아 있다. 안래홍은 봄에 싹이 날 때부터 빨간 잎이 기러기가 찾아오는 늦가을까지 빨간색 그대로여서 홍안(紅顔), 즉 혈색이 도는 얼굴을 연상하게 한다. 장수의 상징이다. 매미는 예부터 다섯 가지 덕을 지닌 군자를 상징하는 존재. 부채를 받을 사람을 군자로 추켜세우며 장수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은 그림이다. 오른쪽에 白石老人(백석노인)이라 쓰고 齊璜之印(제황지인)을 찍었다. 제황이 바로 치바이스의 본명이다. 백석은 가장 널리 알려진 호(號)다.     



글씨가 있는 면에는 오른쪽부터 寄萍堂(기평당)이란 당호를 찍고, 고아한 글씨로 일곱 자를 반듯하게 써 내려갔다. 牽牛不飮洗耳川(견우불음세이천). 끌고 온 소가 물을 마시지 않으면 냇물에 귀를 씻는다는 뜻이다. 이 구절은 중국 고대의 요(堯)임금 시절 은사(隱士) 소부(巢父)와 허유(許由)의 「기산영수(箕山潁水)」라는 고사에서 왔다.     


기산(箕山)에 은거했던 허유는 어질고 지혜롭기로 명성이 높아서 요임금이 구주(九州)를 맡아달라고 청해왔다. 하지만 허유는 거절하고 안 듣느니만 못한 말을 들었다 하여 자기 귀를 영수(潁水)에 씻었는데, 작은 망아지를 끌고 오던 소부가 이 모습을 봤다. 소부는 허유가 귀를 씻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은자로서 명성을 누린 것조차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비웃고는, 그런 사람이 씻어낸 물을 망아지에게 먹일 수 없다며 영수를 거슬러 올라가 물을 먹였다고 한다. 고수 위에 더 큰 고수가 있었달까. 아무튼 두 은자의 절개와 지조를 드러낸 고사다. 그렇게 사시라는 화가의 덕담이다.     


그 뒤에 康氏先生 清屬舊句(강씨선생 청속구구). 강 씨 선생께 감상을 청합니다. 九十五世 齊璜(구십오세 제황)이라 적고, 끝에 阿芝(아지)를 찍었다. 95세 제황이라 적었으니 음력 생일을 넘긴 치바이스가 세상을 떠나던 1957년의 어느 시점에 그리고 쓴 것이다. 거장 치바이스의 말년 작품 가운데 하나인 셈이다. 추정가는 3천만 원~1억 원.     



흥미로운 것은 치바이스가 자기 나이보다 더 많은 숫자를 적기도 했다는 점이다. 98세까지 산 적이 없으면서 98세라고 쓰는 식이다. 중국에서 통용되는 허세(虚岁)라는 개념이라고 한다. 허세는 태어날 때 1살로 시작하고, 이후 해가 바뀔 때마다 나이를 더하는 방식. 치바이스는 1864년생이니까 허세로 계산하면 1957년에 95세가 된다. 그러니 자기 나이를 98세로 적은 까닭이 무엇이겠는가. 잘 생각해 보면 깨닫는 바가 있으리라. 

    

Lot 64. 장샤오강, A Week of Amnesia and Memory, 종이에 유채, 72.5×54cm, 2006

  

Lot 65. 장샤오강, Golden Memories, 장미목 상자에 금, 각 24k 금 75g, ed.16/28, 2007


서울옥션 3월 경매에는 이례적으로 중국 작품 몇 점이 등장해 눈길을 끈다. 국내에도 꽤 이름이 알려진 중국 현대미술가 장샤오강의 2006년 작 <A Week of Amnesia and Memory>, 금붙이 열 조각이 한 세트를 이루는 2007년 작 <Golden Memories>이 출품됐다. 물방울 형태의 금붙이는 각각 24k 금 75g이다. 장미목으로 만든 보관함까지 해서 총 28세트를 제작했는데, 이번 경매 출품작은 16번째 에디션이다.     


Lot 112. 인쥔, Crying, 캔버스에 유채, 150×150cm, 2008.1
Lot 111. 송이거, Untitled, 캔버스에 유채, 174.8×200cm, 2010



‘울음의 작가’로 불리는 중국 현대미술가 인쥔(尹俊, 1974~)의 2008년 작 <Crying>, 중국이 낳은 세계적인 작가 쩡판즈가 발굴해 밀고 있는 여성 신예작가 송이거(宋易格, 1980년~)의 2010년 작 <Untitled>도 특색 있는 작품들이다.     


Lot 98. 강요배, 옥류동, 캔버스에 아크릴릭, 89×258.5cm, 1999
Lot 97. 강요배, 풍설해, 캔버스에 아크릴릭, 112×161.5cm, 2003



한국 작가의 작품으로는 요즘 경매에 꾸준히 출품되는 강요배 작가의 금강산 연작 가운데 하나인 <옥류동>(1999)과 제주 그림 <풍설해>(2003)가 주목된다. 특히 <옥류동>에는 물놀이하는 세 아이가 아주 작게 그려졌는데, 인물이 등장하는 강요배의 그림은 극히 드물다. 강요배 특유의 붓질을 보는 맛이 일품이다.     


Lot 34. 신성희, 무제, 캔버스에 혼합매체, 150×150cm, 1998
Lot 3. 김종학, 풍경, 캔버스에 아크릴릭, 15.8×20.8cm, 2004.11.18



이 밖에도 갤러리현대에서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신성희 작가의 1998년 작 <무제>가 전시에 맞춰 경매에 나왔고, 설악산 화가 김종학의 2004년 작 <풍경>은 그림 자체보다 액자가 워낙 크고 특이해서 절로 눈길이 간다.     


■경매 정보

경매: 2024년 3월 28일(금) 오후 4시

전시: 2024년 3월 28일(금)까지

장소: 서울옥션 강남센터 (서울시 강남구 언주로 864)

문의: 02-545-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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