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옥 옮김 《청구야담》(문학동네, 2019)
제목 풀이부터 해보겠습니다. 청구(靑丘)는 우리나라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예부터 중국이 동쪽에 있는 우리나라를 가리켜 쓴 표현이죠. 야담(野談)은 민간에 전해온 온갖 이야기입니다. 정리하면 청구야담은 ‘우리나라의 옛이야기’입니다.
야담이라는 말은 중국이나 일본에는 없는 표현입니다. 한 마디로 국산입니다. 이런 옛이야기를 모은 조선 후기 야담집은 꽤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청구야담》은 대표 주자라 해도 좋을 야담집입니다. 조선 후기에도 인기가 좋았는지 한문본과 한글본을 포함해 다른 판본이 10가지가 넘습니다. 그것도 죄다 필사본입니다. 이야기 읽는 재미에 푹 빠져 그 많은 분량을 일일이 손으로 베껴서 간직하고 돌려 읽었을 옛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네요.
2019년에 문학동네에서 한국고전문학전집 22~23권으로 펴낸 《청구야담》은 여러 판본 가운데 미국 버클리대학교 극동도서관에 소장된, 줄여서 ‘버클리대본’으로 부르는 판본을 완역한 겁니다. 그동안 몇 종의 번역본이 나오긴 했지만, 가장 잘 정돈되고 수록된 이야기 편수도 가장 많은 버클리대본을 완역한 것은 처음입니다. 이 만만치 않은 과업을 감당해낸 옮긴이의 노고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는 모두 290편입니다. 옮긴이가 말한 것처럼, 야담은 “우리 민족의 인간상과 생활사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박물관”입니다. 옛사람들의 희로애락이 남김없이 녹아들었죠. 뻔한 얘기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야기는 삶을 견디고 지속할 수 있게 해주는 힘입니다. 《아라비안나이트》의 주인공은 1,001일 동안이나 날마다 다른 새롭고 진기한 이야기로 죽을 고비를 넘깁니다. 이야기를 통해 삶을 지속한 거죠. 이야기는 위대합니다.
번역문과 원문을 함께 실은 까닭에 이 책은 상, 하권을 포함해 장장 2천 쪽에 이를 만큼 분량이 만만치 않습니다. 하지만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비교적 짧은 이야기들을 모아 놓았기 때문에 시간을 두고 조금씩 읽어나가도 전혀 문제가 없으니까요. 저도 두 달에 걸쳐서 틈틈이 이야기들을 읽어나갔습니다.
전문 연구자가 아닌 탓에 이 책을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따위의 만용은 부리지는 않으렵니다. 다만 읽으면서 몇 가지 특징에 주목해 보았습니다. 일단 내용 면에서 두 차례 왜란과 두 차례 호란에 관한 이야기가 꽤 많습니다. 특히 1권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예언했다는 이야기가 나란히 보입니다. 그만큼 조선 사람들에게 두 차례의 외침이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았고, 그 때문에 많은 이야기가 지어지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베옷 입은 노인이 (중략) “머지않아 병화가 있을 것이니, 난여(임금의 수례)가 궁궐을 떠나는 액을 당할 것이요, 서쪽 변방에 이르고 나서야 옛 도읍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오.” (중략) “두 번 다시 한강을 건너지 못하겠소이다.” 하니…
박생이 다른 사람과 함께 남한산에 올랐다가 크게 놀라며 말했다. “이곳은 빼앗길 성이네. 얼마 안 있어 나라에 큰 병화가 있을 것이며, 임금이 타신 수레가 피란해 이곳에 이를 걸세.” 그러고는 임금이 포위당했다가 성에서 나가게 될 거라고 분명히 말했다.
이 밖에도 왜란과 호란을 시대적 배경으로 한 이야기가 상당히 많습니다. 이야기가 지어진 데는 틀림없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 봅니다. 왜란과 호란에 관한 위의 두 이야기는 외침을 누군가는 예견했다는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이야기를 읽은 사람은 이런 궁금증을 품게 됩니다. 그럼 준비하고 대비할 수 있었던 거 아니야? 위 이야기에서 저는 ‘막을 수 있었던 전쟁’이라는 옛사람의 ‘마음’을 읽었습니다. 지나고 보니 참으로 아쉽고 안타깝더라는 이야기에 담긴 뭇사람의 원망과 한이 보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자기 분야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름난 역사 인물들의 일화도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삼척동자도 다 안다는 암행어사 박문수가 대표적이죠. 글씨로 이름을 날린 한석봉, 석봉 한호의 이야기도 여러 편입니다. 특히 두 차례 왜란에서 공을 세운 이들을 실명으로 기록한 이야기가 여기저기에 보입니다. 임진왜란 시기의 명재상 백사 이항복, 행주대첩의 명장 권율, 심지어 명나라 제독 이여송에 관한 이야기도 꽤 많더군요.
반면 충무공 이순신 장군에 관한 이야기는 한 편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이 점이 무척 궁금합니다. 신화와 전설로 남은 인물로 따지면 이순신만 한 위인이 있을 리 없죠. 그런데 옛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에 어째서 이순신은 등장하지 않는 걸까. 물론 다른 야담집을 더 찾아봐야 하겠지만 대표적인 야담집에 없는 이야기가 다른 책에 ‘야담’으로 실려 있을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는 의문입니다. 개인적으로 추측해 본다면, 이순신이란 이름은 ‘야담’에서 함부로 거론하기에는 너무나도 크고 위대한 분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야담’이라는 그릇에 차마 담지 못했던 게 아닐까. 물론, 이건 순전히 제 추측에 지나지 않습니다만….
할머니 머리맡에서 듣던 옛날이야기 가운데는 한 번쯤은 들어본 익숙한 것들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주인을 구하고 대신 죽은 의로운 개 이야기죠. 주인을 살해한 범인을 향해 짖어대 복수를 완성한 의로운 개는 사람의 말을 알아들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관가 마당에서 짖어댄 의로운 개가 주인에게 보답하다>란 제목으로 《청구야담》 권5에 실려 있는데요. 이 이야기 뒤에 우리가 가장 잘 아는 ‘선산의 의로운 개’도 나옵니다. 주인이 잠든 사이에 불이 나자 꼬리를 물에 적셔 있는 힘껏 불을 꺼 주인을 구하고 죽은 그 개입니다. 재미있는 건 이야기의 끝에 짤막한 평(評)이 붙어 있다는 겁니다.
“하동의 개는 처음에 사또에게 억울함을 호소했고 나중에는 원수에게 분을 풀어 그 원수를 갚고 자기 목숨을 바쳤다. 이와 같은데도 그 누가 짐승을 무지하다 하겠는가? 선산의 개와 비교해도 더 나은 면이 있다 하겠다. 영남 지방은 사대부의 고장인데, 역시 의로운 개도 많이 나도다!”
자린고비 이야기는 다들 잘 아실 겁니다. 먹는 게 차마 아까워서 조기를 대들보에 매달아 놓고 밥 먹을 때 딱 한 번만 쳐다보게 했다는 짠돌이의 웃지 못할 사연. 그런데 이 이야기는 뒤에 반전이 있더군요. 아들들 가운데 유일하게 아버지를 닮았다는 큰아들(장남)은 부채의 수명이 얼마나 갈 것 같냐는 아버지의 물음에 뭐라고 대답했을까.
큰아들이 앞으로 나와 꿇어앉으며 말했다.
“동생들은 아직 어리기에 아껴 쓰는 도리를 터득하지 못했습니다. 부채는 이십 년은 부칠 수 있지요.”
선비가 그제야 화난 기색을 누그러뜨리고 조금 칭찬까지 하며 말했다.
“그 도리가 어떤 것인고?”
큰아들이 대꾸했다.
“부채는 펴고 접을 때 조금씩 상할 수밖에 없지요. 만약 부채를 펴서 기둥에 고정시켜 두는 대신 머리를 흔들면 어찌 이십 년만 가겠습니까?”
연암 박지원이 지은 유명한 이야기 <허생전>은 조금 다른 버전이 권2와 권10에 실려 있습니다. 따라서 이 책이 묶인 시기를 최소 박지원의 시대 이후로 보는 근거가 되죠.
옛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한 세 가지가 뭔지 아십니까? 전쟁, 호환, 마마입니다. 당연히 옛이야기에는 이 세 가지가 골고루 반영돼 있습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전쟁과 호환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더군요. 특히 호랑이가 등장하는 이야기는 편수도 많을뿐더러 내용도 무척 다채롭습니다. 이야기의 다채로움은 욕망의 다채로움입니다. 옛이야기에는 옛사람의 기쁨, 분노, 슬픔, 즐거움이 깃들어 있죠. 이야기 마을에선 해가 지지 않는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