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석 Jul 10. 2020

곤장치고 주리 트는 조선시대 풍속화가 있다고?

김준근이라는 화가를 아십니까? 처음 들어보셨다고요? 네. 그럴 만도 합니다. 그림 공부하는 분들이야 한 번쯤은 들어봤을 그 이름. 하지만 대중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화가. 그도 그럴 것이 생애에 관한 기록 자체가 턱없이 빈약합니다.     


이름 김준근(金俊根), 호는 기산(箕山). 여기서 막힙니다. 언제 태어나 언제 돌아갔는지조차 모릅니다. 지금까지 확인된 사실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사이에 원산, 부산, 인천 등 개항장에서 그림을 그렸다는 점, 그리고 국내에 최초로 번역된 서양 문학작품 『텬로력뎡』(천로역정)의 삽화를 그렸다는 점 정도죠. 한마디로 베일에 싸인 수수께끼의 인물입니다.     


생애에 대해선 이렇게나 알려진 게 없는데, 놀랍게도 김준근의 그림은 전 세계에서 무려 1,600점이 넘게 확인됐습니다. 물론 국내에서도 여러 박물관, 미술관, 개인이 김준근의 그림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해외 박물관과 미술관에 소장된 그림이 그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김준근의 그림을 산 고객들이 대부분 개항기에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 여행가와 외교관, 선교사들이었기 때문이죠.     


외국인들의 방문이 활발해지던 시기에 김준근은 조선의 풍속을 그려 팔았습니다. 그렇게 판매한 그림들이 훗날 세계 각국의 박물관에 소장되면서 이 물음표 같은 화가의 이름은 국제적(?) 명성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김준근의 그림을 '수출 풍속화'라 부르고, 김준근을 '미술 한류의 원조'로 평가하기도 합니다.     


<관쟝(곤장棍杖)>, 1890년대, 독일 MARKK 소장



김준근의 풍속화가 내국인 감상용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결정적 장면입니다. 독일의 옛 함부르크민족학박물관, 지금의 로텐바움 세계문화예술박물관 소장품이죠. 죄인을 땅바닥에 엎드리게 해놓고 장(杖)을 치는 모습을 묘사했습니다. 놀랍게도 말입니다. 조선시대 풍속화에 이런 형벌을 그린 장면이 있었던가. 처음입니다. 심지어 저 바지를 내린 죄인의 엉덩이가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그렇다고 예술성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요.    

 

<포쳥에서젹툐밧고(포청에서 적토 받고)>, 1890년대, 독일 MARKK 소장



이번엔 더 가혹한 형벌입니다. 주리 틀기. 죄인의 발목을 꽁꽁 묶고 다리 사이에 주릿대 두 개를 끼워 비트는 형벌. 사극에서나 본 장면이죠. 죄인을 벌주는 그림이 감상용일 리는 없겠죠. 김준근의 그림은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들이 주로 사 갔습니다. 코리아라는 낯선 나라의 신기한 문물과 풍습을 고국으로 가져가고 싶은 외국인들이 찾는 게 뭐였을까요. 사진이 없던 시절에는 그림만 한 게 없었겠죠. 김준근의 그림은 그런 외국인들을 만족시킨 최고의 기념품이었습니다.     


(왼쪽) <행상하는 모양> (오른쪽) <소대상 제사하는 모양>



왼쪽은 망자의 시신을 실은 상여(喪輿)를 운구하는 장면, 오른쪽은 제사 지내는 장면입니다. 조선시대 그림에서 이런 장면을 보신 적 있으신가요. 조선 왕실의 공식 행사를 그린 『조선왕조의궤』와 같은 공식 기록화를 빼면 '죽음'을 묘사한 조선시대 그림은 없습니다. 죽음은 감상의 대상이 아니니까요. 더구나 풍속화라면 더더욱 그런 장면을 그릴 이유가 없었겠죠. 우리 풍속을 모르는 외국인을 위해 그린 겁니다.     


<살인에 검시하는 모양>



이 장면은 숫제 죽은 사람을 그렸습니다. 살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망자를 널빤지 위에 눕혀 놓고 피해자의 시신을 살피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한 시신을 그린 조선시대 유일한 그림입니다. 두 눈을 감은 망자의 얼굴까지 꽤 자세하게 그려 놓았습니다. 이게 뭘 하는 장면인지 설명해주기 위해 그린 그림입니다. 그래서 그림 한쪽에 제목을 썼죠.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들의 눈에는 굉장히 이색적으로 보였을 장면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김준근의 그림에 등장하는 우리 옛 풍속은 실로 다양합니다. 농사짓고 길쌈하는 노동의 현장부터 단옷날 그네 타기, 장기 두기, 투호 놀이, 탈놀음 등 갖가지 기예와 오락은 물론 전통 혼례, 시장 풍경 등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생활상을 망라한 '풍속 박물관'이라 해도 무리가 없습니다. 화가 스스로 그리고자 하는 대상과 행위를 최대한 충실하게 설명하는 데 집중했기 때문에, 김준근의 풍속화는 어느 연구자의 설명을 인용하면 "조선 후기와 일제강점기 사이의 공백을 메꿀 수 있는 민속한 연구 자료"로서 더없이 소중한 자료입니다.     


<시집가는 모양>



‘미술 한류의 원조’ 기산 김준근의 그림 150여 점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전시회가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립니다. 특히 앞서 소개해드린 독일 박물관에서 온 김준근의 그림 70여 점은 무려 120여 년 만에 고국 땅을 밟았습니다. 100년 전 그림이라곤 믿기 힘들 정도로 채색이 고스란히 살아 있더군요. 코로나19 여파를 뚫고 어렵사리 독일에서 온 그림이라 이번 기회가 아니면 다시 보기 힘듭니다. 안타깝게도 그 코로나19로 인해 박물관이 지금은 문을 닫은 상태죠. 하지만 곧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해 봅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그림 자체는 예술성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고. 맞습니다. 조선 후기 풍속화의 대가인 단원 김홍도나 혜원 신윤복의 그림에 비하면 성에 차지 않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김준근의 그림을 볼 때는 어떻게 그렸는지보다 무엇을 그렸는지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대로 그림을 그린 목적 자체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런 눈으로 본다면 김준근의 풍속화가 지닌 특별한 가치를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 이 글은 아트렉처(https://artlecture.com)에 먼저 실렸습니다

.     

전시 정보

제목특별전 기산 풍속화에서 민속을 찾다

기간: 2020년 10월 5일까지 (현재 코로나19로 휴관 중)

장소국립민속박물관

작품풍속화 150여 점과 민속자료 등 340여 점     



작가의 이전글 용서에 관한 이토록 무거운 질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