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석 Sep 14. 2020

‘대세 작가’ 김초엽의 신작을 잡지에서 만나다


격세지감입니다. SF를 순수 문학으로부터 단절시켜온 벽이 허물어졌습니다. 변화를 이끄는 주인공은 김초엽 작가고, 발 빠르게 화답한 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통적인 문학 잡지들입니다. 과거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계간 《문학과 사회》가 2020년 가을호(통권 131호)에 김초엽의 새 단편 <최후의 라이오니>를 실었더군요.     


3420-ED라는 낯선 이름이 붙은 멸망한 우주 거주지 탐사에 나선 주인공. 지구인이 아닌 ‘로몬’이란 종족의 일원인 그는 폐허가 된 문명의 흔적을 더듬다가 그만 누군가에게 공격을 당해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주인공을 가둔 것은 생명체가 아닌 기계들이었고, 기계들의 우두머리는 주인공을 ‘라이오니’라 부릅니다.     


필멸의 존재가 불멸을 꿈꾸며 개체를 복제하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생겨난 돌연변이 ‘라이오니’는 불멸인들이 끝내 모두 멸절하고 마는 동안 무엇을 했을까. 기계들은 왜 주인공을 ‘라이오니’라 부르는가. 문명과 멸망, 필멸과 불멸을 이야기하는 이 짧은 소설이 던지는 질문은 의미심장합니다. 그러면서도 따뜻하죠. 김초엽 소설의 매력이 아닌가 합니다.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에 손에 넣은 과학잡지 《에피 Epi》 13호에는 김초엽의 글 <삶 속에 과학이, 과학 속에는 삶이>가 실렸습니다. 김초엽 작가는 이 잡지의 편집위원입니다. 김초엽 작가는 이 글에서 ‘SF의 과학적 쓸모’에 관한 숱한 질문에 답합니다.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 SF는 가상의 과학을 다루기 때문에오히려 사회가 과학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아주 선명하게 드러낸다고우리는 현실의 삶과 일상을 구성하는 과학기술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그것의 존재를 문득 깨닫게 되는 순간은 흔치 않다그러나 이야기는 현실을 재구성하여 일상에 가려진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망을 드러낸다.”     


앞서 계간 《문학동네》 2020년 여름호(통권 103호)에도 김초엽의 단편 <오래된 협약>이 실렸습니다. 앞서 읽은 <최후의 라이오니>와 마찬가지로 이 소설 역시 다른 세계로의 여정을 다룹니다. 길지 않은 기간에, 그것도 우연히 김초엽의 글 세 편을 읽었습니다. 제게도 큰 변화가 생겼죠. 좀처럼 눈길을 주지 않던 문학 잡지를 열어보게 됐으니까요.



작가의 이전글 자세와 몸짓과 표정으로 미술품 뜯어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