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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Sep 15. 2020

호랑이굴에 끌려갔다가 돌아온 조선의 선비

강항 씀, 김찬순 옮김 《간양록(看羊錄)》(도서출판 보리, 2006)


강항(姜沆)이란 이름을 사전에서 찾아봤습니다. 자(字)는 태초(太初), 호(號)는 수은(睡隱), 사숙재(私淑齋). 1567년(명종 22년)에 태어나고 1618년(광해군 10년)에 돌아갔습니다. 고향은 영광, 본관은 진주(晉州). 좌찬성 강희맹(姜希孟)의 5대손으로 우계 성혼(成渾)의 문인이었습니다. 형조좌랑까지 올랐고 《운제록》, 《강감회요》, 《좌씨정화》, 《간양록》을 남겼습니다.     


강항은 형조 좌랑 시절인 1597년 휴가를 얻어 고향에 내려갔다가 정유재란을 맞습니다. 분호조 참판 이광정(李光庭)의 종사관으로 남원에서 군량 보급에 힘쓰다가, 남원이 함락된 뒤 고향으로 돌아가 순찰사 종사관 김상준(金尙寯)과 함께 격문을 돌려 의병을 모았습니다. 전세가 불리해지자 통제사 이순신 장군 휘하에 들어가려고 가는 길에 그만 왜적의 포로가 됩니다. 교토까지 끌려가 포로 생활을 하다 1600년에야 가까스로 귀국합니다. 

    

《간양록(看羊錄)》은 그 과정을 기록한 책입니다. 고향에 잠시 내려갔다가 왜란을 만나 고군분투하다가, 식솔들과 피난길에 올랐지만, 왜적에게 포로로 붙잡혀 일본으로 끌려갔다가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은 실로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포로로 잡힌 처지에도 왕에게 상소를 올리고, 왜국의 지리와 군사제도,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 참전한 일본 장수들의 명단, 왜국의 정세 변화와 동향을 파악해 인편에 고국으로 보냈으며, 왜적을 방비하는 계책을 적어 충심을 다해 임금에게 올렸죠. 진정한 애국자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목을 간양록이라 한 까닭은 훗날 제자 윤순거가 《간양록(看羊錄)》을 펴내면서 쓴 발문에 밝혀져 있습니다. 중국 한나라 때 흉노에게 사절로 갔다가 붙잡혀 19년간 절개를 지키며 북해상에서 양을 친 소무(蘇武)에 자신을 견준 스승 강항의 시 구절에서 따온 것이죠.     


보리출판사에서 낸 이 번역본은 북한의 국문학자 김찬순이 옮기고 북한의 문예출판사가 펴낸 판본을 우리 실정에 맞게 다듬어 출간한 겁니다. 번역이 아주 훌륭하죠. 북한식 순우리말 표현들이 아무런 거부감 없이 읽힙니다. 보리출판사가 <겨레고전문학선집>으로 펴낸 책 가운데 읽어볼 만한 것들이 적지 않습니다. 기왕에 읽은 우리 학자들의 책과 비교해가며 읽는 것도 좋을 것 같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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