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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Sep 21. 2020

이순신의 얼굴일까?


제목 없는 초상화입니다. 그림 속 주인공은 조선시대 무관(武官), 즉 군인이죠. 머리에는 군용 모자인 전립(戰笠)을 썼고, 몸에는 옛 군복인 융복(戎服)을 입었으며, 손에는 무관의 말채찍인 등채(藤策)을 쥐었습니다. 영락없는 조선시대 장교의 모습이죠. 배경에는 앉은키보다 높은 병풍이 보입니다. 병풍 속 그림에는 거북선이 그려져 있군요. 조선의 무관으로 거북선과 연결되는 인물. 혹 이순신의 얼굴일까?     


화가는 우리나라 사람이 아닙니다. 이 그림을 그린 이는 영국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Elizabeth Keith, 1881~1956)입니다. 언니의 남편이 일본 도쿄에서 출판사를 운영한 덕분에 일본을 방문할 기회를 얻은 키스는 고국으로 돌아가기 전 언니와 함께 한국을 여행하기로 합니다. 키스 자매가 한국에 들어온 것은 1919년 3월, 그러니까 3․1운동 직후였죠. 키스는 가을까지 한국에 머물며 한국인과 한국의 풍경을 그렸습니다.     



이번엔 초상화 속 인물의 얼굴을 자세히 봅니다. 양쪽 끝이 올라간 눈매. 지그시 어딘가를 응시하는 듯 보입니다. 치켜 올라간 눈썹, 주름진 이마, 가만히 다문 입술, 제법 큰 귀, 단정하게 다듬은 수염으로 찬찬히 시선을 옮깁니다. 뭔가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는 풍모. 얼굴은 전체적으로 야윈 편이죠. 도대체 이 무인은 누굴까?   

  

이 그림의 소장자는 재미교포 수집가 송영달 씨입니다. 엘리자베스 키스 그림만을 전문적으로 수집하고 연구해온 분이죠. 지난해 7월, 이 그림이 이순신의 초상화로 추정된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상당한 화제가 됐습니다. 이 그림이 국내에 처음 소개된 건 송 씨가 2012년에 펴낸 《키스, 동양의 창을 열다》라는 책이었습니다. 책 뒤쪽에 수록한 엘리자베스 키스 작품 목록에 <청포를 입은 무관 Man in Blue>이란 제목으로 아주 작은 사진이 실렸죠. 그때는 아무도 이 초상화에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이 그림의 전 소장자는 캐나다에 사는 키스의 조카였습니다. 송 씨는 나중에 세상을 떠난 조카의 딸 부부로부터 다른 곳에 처분하고 남은 키스의 그림들을 사들였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초상화였다고 합니다. 이 그림은 키스의 다른 그림과 달리 수채화여서 그림 제목이 따로 붙어 있지 않았습니다. <청포를 입은 무관>은 나중에 송 씨가 붙인 이름입니다.     


송영달 씨는 이 초상화 속 인물을 이순신으로 봅니다. 그 근거는 앞서 소개했듯, 거북선으로 상징되는 조선시대의 대표적 무인은 이순신밖에는 없다는 점. 송 씨에게 자문을 해준 이순신 연구가 박종평 씨는 여기에 또 하나의 근거를 추가하죠. 근대 한국화가 청전 이상범이 그린 이순신 초상화와 구도, 자세 등이 퍽 흡사하다는 겁니다. 두 그림을 찬찬히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기 작품을 대부분 판화로 제작한 엘리자베스 키스가 유독 이 그림만은 수채화로 남긴 것도 특기할 만합니다. 게다가 그림 자체의 크기만 세로 77cm, 가로 55cm로 현재 남아 있는 키스의 그림 가운데 가장 큰 작품입니다. 왜 키스는 늘 하던 작업에서 벗어나 이 그림만을 예외적으로 수채화로 그리고 판화로 만들지 않았을까. 이 그림만큼은 아주 특별하게 생각했기 때문 아닐까.     


키스의 거의 모든 그림은 실제로 본 사람과 풍경을 사생한 결과물입니다. 그렇다면 이 초상화를 그린 과정은 둘 중 하나일 겁니다. 당시의 인물을 실제로 보고 그렸거나, 자기가 본 어느 초상화를 그대로 보고 그렸거나. 어쨌든 보고 그렸다는 건 확실한데, 그 대상이 사람이었는지 그림이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대상이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순신 초상은 아니죠. 하지만 만약 어떤 초상화를 보고 그린 거라면?     



송영달 씨는 엘리자베스 키스 자매가 같이 쓴 책 《코리아》를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라는 제목으로 2006년에 번역 출간한 바 있습니다. 여기에는 무인 초상화가 실려 있지 않습니다. 그랬는데 이번에 완전 복원판이란 이름으로 개정판을 새로 내면서 이 초상화를 <이순신 장군 초상화(추정)>이란 이름으로 싣고, 그림을 발견해 소장하게 된 경위와 이순신 초상화로 추정하는 근거 등을 자세히 밝혀 놓았습니다.     


어느 쪽이 이순신의 얼굴에 가까울까? 초상화는 무릇 인물의 생애와 업적을 역사적인 사실에 가장 부합하게 드러내는 것이어야 합니다. 《난중일기》를 한 번이라도 제대로 읽어봤다면, 끊임없이 병마와 불면에 신음하면서 나라와 백성을 지켜내는 일에 헌신했던 고난의 인물상이 머릿속에 그려질 겁니다. 마르고 야윈 얼굴이 이순신 표준영정보다 역사적 사실에 더 부합한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겠죠.     



참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순신을 민족의 위인으로 떠받들면서 번듯한 초상화 한 점이 남아 있지 않은 현실을 어떻게 봐야 할까. 지금 이순신 초상으로 전하는 그림들, 그리고 후대의 화가들이 새로 그린 이순신 영정, 그 무엇 하나도 이순신다운 얼굴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그런 답답함 속에서 어느 날 문득 등장한 이 그림의 존재가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이순신의 초상일까? 누구도 단언할 수 없습니다. 그림 속 주인공은 이순신이 아닐 수도 있겠죠. 다만, 저는 이 그림이 우리에게 이순신 장군의 진짜 얼굴은 어떤 모습일지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해줬다는 데 특별한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가장 어려운 시기에 굳건히 나라를 지킨 구국의 영웅에게서 우리가 기대하는 그런 모습이 저 초상화에는 어려 있으니까요.          



※ 이 글은 아트렉처(artlecture.com)에 먼저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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