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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Sep 25. 2020

조선 야담 문학의 빛나는 금자탑 ‘어우야담’

유몽인 《어우야담》(돌베개, 2006)


야담(野談)이란 ‘조선 후기에 한문으로 기록된 비교적 짤막한 길이의 잡다한 이야기’를 뜻합니다. 일찍이 저는 올해 1분기에 전략적으로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야담집으로 꼽히는 《청구야담》을 정독했습니다. 옛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반복해서 인용되는 문헌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유몽인이라는 작자가 명확하게 밝혀진 《어우야담》이 대표적이죠.     


작자가 역적으로 몰려 참혹하게 죽임을 당한 까닭에 사후에 그의 저술도 모진 핍박과 시련을 비껴가지 못했습니다. 최초의 《어우야담》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한 분량을 자랑했다고 하죠. 그 뒤로 원고가 여기저기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런데도 끝내 사라지지 않고 부분부분 살아남아 후대인들에 의해 두고두고 읽혔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이 점만으로도 《어우야담》의 가치는 증명되고도 남는다고 저는 믿습니다.     


유몽인의 시대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관통합니다. 그래서 이 책에는 왜란과 관련한 기록이 상당히 많죠. 심지어 후대의 《청구야담》에도 없는 이순신 장군이 등장하는 이야기 네 편이 실려 있습니다. <인륜편>의 22번째 글과 28번째 글에 이순신 장군이 짤막하게 언급돼 있고, <종교편>의 129번째 글과 146번째 글에도 이순신 장군의 이름이 나옵니다.      


그중에서도 옮긴 이가 <죽은 아들의 복수를 한 이순신>이라는 제목을 붙인 글에서만 장군이 주연으로 등장합니다. 왜적과 싸우다가 살해된 이순신 장군의 셋째 아들 이면이 아버지의 꿈에 나타나 항복한 왜적 가운데 자기를 살해한 자가 있음을 알리자, 잠에서 깨어난 이순신 장군이 바로 그 범인을 찾아내 응징한 뒤 아들의 넋을 위로했다는 내용입니다.     


분량이 만만치 않지만, 읽기에 부담은 없습니다. 짤막한 문장들 사이에서 옛사람의 생각을 만나는 일은 즐겁습니다. 물론 개중에는 믿거나 말거나 하는 얘기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옛이야기를 읽을 때 사실이냐 아니냐, 현실성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져선 곤란합니다. 이야기가 만들어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죠. 대표적인 것이 <아기 장수> 이야기입니다. <만물편>에 수록된 497번째 글에 아기장수에 관한 흥미로운 내용이 보입니다.     


“그 후 태기가 있어 아들을 낳았는데, 용모가 빼어나게 아름다웠고 머리에는 두 개의 육각이 돋아나 있었다. 아기는 한 달이 되자 걷기 시작했고 두어 달이 지나자 양쪽에 구레나룻이 자랐다. 그 준수하고 기이함이 범상치 않아 온 집안 사람들이 두려워하며 혹 재앙이 가장에게 미칠까 걱정했다. 이웃 친척들이 모여 키우지 않기로 의논했으니, 애석한 일이다.”     


이야기는 그 이후의 상황을 말해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기 장수는 어찌 됐을까. 이 짤막한 이야기가 오늘날의 소설가에게 영감을 주기도 했죠. 제가 몹시도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인 차무진은 장편소설 《해인》과 《모크샤, 혹은 아이를 배신한 어미 이야기》에서 《어우야담》에 수록된 아기 장수 이야기를 핵심 소재로 사용하고 소설에 직접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차무진의 소설 또한 《어우야담》을 읽게 한 여러 동기의 하나가 됐죠. 수백 년 혹은 천년이 넘는 세월을 넘어 이야기가 또 다른 이야기로 이어지는 과정은 경이롭습니다. 결국은 시작도 이야기, 끝도 이야기. 우리 삶이 곧 이야기입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도 끊임없이 각자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는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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