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열어보렴
아빠,
제가 짜증 안 나게 노력할게요
아빠한테 레이싱카도 사주고 종이접기도 가르쳐주고 잘해주고 많이 많이 약속 지킬게요
그래서 이 모든 것이 아빠 거예요!
또 아빠가 할아버지 되면 제가 잘 돌봐줄게요, 아빠가 좋아한다면요?
아빠 오래오래 살아요, 아빠 저가 이 약속 다 지킬게요.
끝.
소파에 앉아서 다이어리를 정리하다가 1년 전 아들의 편지를 발견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이때 아마 아들 녀석이 짜증을 많이 내서 나 역시 침대에서 드러누웠던 것 같다.
드러눕고 있는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자신이 한 행동이 미안했는지,
뭔가 해주고 아빠 마음을 풀어주려고 했는지,
편지를 쓰고 종이접기 비행기를 만들어서 내 옆에 살포시 두었다.
이럴 때 보면 아이들이 감정을 어른보다 더 세밀하게 만지는 것 같다.
편지 속에 몇 가지 약속이 있었다.
왠지 이 약속을 기록해두면 미래에 약해져 있는 나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기록으로 남긴다.
이는 순전히 나를 위한 글이다.
'노후에 아들의 약속을 받아내기 위한 이기적인 글?'이라고 표현해도 될까?
많은 약속을 했지만 나에게 필요한 건 두 가지다.
레이싱카를 사주는 것.
이건 스포츠카를 사준다는 의미다.
노년에 스포츠카가 필요할까?라는 생각은 일반적인 생각이지만, 난 노년에 스포츠카를 타고 다닐 거다.
그냥 아들이 사준 스포츠카를 타고 다니는 것 자체가 뭔가 상당히 기분 좋은 일일 것 같다.
"왜 그 나이에 스포츠카 타고 다니세요?"
"아.. 그게 사연이 있어요.. 어쩌고 저쩌고... 이래서 아들이 사줬어요."
그래 늙으면 말이 많아지니 '어쩌고 저쩌고'가 많아질 것이다.
두 번째는 할아버지 되면 잘 돌봐준다고 약속했다. 물론 내가 좋아한다면?이라는 조건이 붙어있다.
내가 노년에 아들의 돌봄을 좋아할까?
그 돌봄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그저 내가 아들과 손주를 보고 싶을 때 찾아가더라도 부담스러워하지 않으면 그보다 더 큰 돌봄은 없지 않을까?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손주를 데리고 우리 집에 와서 편히 놀고 쉬었다가 가는 것?
생각해보니
늙어서도 부모는 자식을 더 생각하는 것 같다.
내 안위보다는 자식이 불편해하지 않을까를 고민하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그러면서도 자식들만큼은 나를 완전히 잊고 살지는 말았으면 하는 노년의 외로운 심정을 보게 된다.
다른 이들은 늙은 나를 더 이상 찾지 않더라도, 자식들이라도 나를 찾아줬으면,
아니 나를 불편해하지는 말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 것 같다.
아직 늙은이가 되어보지 못해서 정확하진 않지만, 왠지 그럴 것 같다.
그래, 그때를 대비해서 이 정도의 보험 정도는 들어둬야겠지?
아, 근데 그때가 되면 이 보험을 아들 녀석에게 못 보여줄 것 같다.
그래도 혹시 모를 나의 외로움의 구원자를 위해서
이렇게 인터넷상에 뭔가 남겨놓으면,
아들이 우연히 검색해서 발견하지 않을까?라는 말도 안 되는 상상으로 글을 마친다.
글의 제목과 시작은
"아빠, 열어보세요?"
였지만,
마지막은
"아들, 열어보렴!"
으로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