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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씨네가족 Dec 05. 2020

만두 빚는 남자

그녀는 집에서 빚은 만두를 좋아한다. 아니 좋아한다고 하면 어느 정도 선택권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집에서 만두를 빚을 필요는 없다. 이렇게 고쳐 쓰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녀는 집에서 빚은 만두만 먹는다. 이 표현이 나의 아내가 집에서 빚는 만두를 어느 정도 좋아하는지를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 것 같다. 물론 조금 과장되었다. 그러나 조금 과장된 거지 거의 정확한 표현이다. 밖에서 파는 만두도 먹긴 하지만 그렇게 먹는 만두는 만두로 표현하기에 조금 부족함이 있다.


나는 결혼하기 전까지 직접 집에서 빚어 먹는 만두 맛을 알지 못했다. 아니 그냥 김밥천국 같은 곳에서 쉽게 먹을 수 있는 물만두 정도의 맛만 알고 있었으니 만두 맛을 몰랐다. 만두뿐만 아니라 음식에 대해서는 사실 아는 바가 없었다. 그저 생계를 위해서 먹어야 하는 일종의 행위 정도로 인식했을 정도로 음식의 세계를 알지 못했다. 분명히 경제적으로는 아내의 집안보다 우리 집안이 조금 더 넉넉했지만, 음식의 세계에 있어서는 아내는 거의 상위 1%에 속한 것 같았고 나는 어떤 % 에도 들지 못할 정도로 음식에 문외한이었다.


그런 음식에 문외한인 내가 집에서 아내가 만두를 빚어먹자고 하면 좋아할 리가 없었다. '그냥 밖에서 사 먹으면 되는걸 굳이 힘들게 그걸 빚어서 먹냐고'라는 속마음을 항상 들키면서 그저 시키니깐 말없이 열심히 빚어주긴 했다. 그래 빚은 게 아니고 빚어준 것이다.


그런데 만두 빚는 게 여간 쉬운 일은 아니다. 그 양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상당히 손에 무리가 온다. 무엇보다도 빚어서 만드는 만두의 맛을 전혀 알지 못하는 문외한이 만두를 빚을 때는 기쁜 마음보다는 어쩔 수 없이,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의무감에, 사랑보다는 귀찮음을 스스로 이겨보려는 책임감에 그 일을 한다. 물론 나의 아내도 이런 내 마음을 모를 리 없다. 그렇게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나에게 만두 빚는 일을 시키는 걸 보면 얼마나 만두를 좋아하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그렇게 나의 결혼생활은 만두 빚는 일이 매년 정기적인 행사로 등장했다. 처음엔 의무감에, 그리고 그 이후부터는 습관적으로 하면서 조금씩 만두 빚는 실력도 늘어갔다.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집에서 직접 빚어 먹는 만두 맛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서 결혼 10년 차가 되어가고 만두를 빚은지도 10년이 되어가니 이제는 의무감이 아닌, 나도 상당히 그 일을 즐기게 되었다. 그리고 만두 맛을 알아가도록 끝까지 지치지 않고 나에게 이 일을 맡긴 아내의 오래 참음에 상당한 존경을 표하게 되었다. (물론 그 오래 참음에는 만두를 먹고 싶은 욕망이 자리 잡고 있었을 테지만 말이다. :) )


어쨌건 나는 그렇게 10년간 만두를 빚어왔고, 지금도 만두를 빚고 있지만 처음 만두를 빚었을 때랑은 너무나 달라져 있는 나를 발견한다. 왠지 사진 속에서도 뭔가 장인 같은 손길이 느껴지지 않는가? 




그러고 보니 결혼생활도 이 만두 빚는 거랑 비슷한 것 같다. 처음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내편에서 일방적으로 이해하는 사랑의 개념으로 결혼을 시작했다. 그녀가 미친 듯이 좋았고 그녀와 그저 하루 종일 같이 있고 싶은 마음에 결혼을 했다. 그런데 그렇게 좋아하고 사랑했던 그 감정이 시간이 지나면서 미움으로 바뀌는 걸 경험하게 되었다. (어떻게 내가 이럴 수 있지?..)


결혼 전에 그렇게 매력적으로 보였던 그녀의 모습이 결혼 후에는 그 매력이 나에게 절망감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결혼 전에는 별로 관심 없던 부분이 결혼 후에는 엄청난 호기심과 매력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도대체 결혼 전과 그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전혀 예측해볼 수도 예상해 볼 수도 없던 삶의 하루하루가 내 삶을 복잡하고 어지럽게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그전에 결코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으로 이끌어 가기도 했다.


결혼 후에는 결혼 전에 예상하지 못했던 만두 빚기 같은 걸 해야 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아니었고, 관심도 없었고 그리고 잘하지도 못하는걸 그녀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해야 하는 게 결혼생활이었다. 처음에는 의무감으로 그리고 하기 싫은 날도 억지로 참으면서 그 일을 묵묵히 해냈다. 물론 밝은 표정으로 기쁜 마음으로 그 일을 한 것이 아니었기에 그녀 역시 그다지 유쾌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새롭게 시작한 것들이 결혼생활에 꽤 많이 있다. 전혀 하지 않았던 일들, 익숙하지 않았던 일들, 그리고 때로는 불편한 것들, 어려운 것들을 해야만 했었고 그걸 했고, 그러고 나서 얻게 된 것들이 꽤 많이 있다.


집에서 빚어서 먹는 만두 맛을 전혀 몰랐던 내가 이제는 그 맛을 알아가고 그 재미를 느끼게 된 것처럼, 다른 많은 영역에서도 나에게 없던 그녀의 어떠함이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알아가는 즐거움과 재미를 주는 걸 보게 된다. 물론 그 과정은 어렵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고 그저 회피하거나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 들 때도 많다.


그런데 조금만 참아내고 그 일을 해내면 

언제나 그랬듯이

후회는 전혀 없다.


뭔가 얻으려고 시작한 건 아니었지만,

일단 시작을 하고 나면 무엇이든 얻게 된다.

그렇게 얻게 된 서로만의 추억이 우리 인생의 마지막 날에 얼마나 많이 쌓여있을지를 생각해 보니 뭔가 흐뭇함이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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