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반지를 다이아로 사주는 건 단지 다이아가 비싸기 때문만은 아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최고와 최선의 의미가 담겨있기도 하다. 그렇다고 모든 형편을 뒤로 한채 무작정 다이아를 사준다는 게 반드시 사랑의 의미를 전달하는 것도 아니다. 능력이 된다면 최고의 선물을 줄 수 있겠지만, 자기 능력껏 마음을 전달하는 것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없다.
나와 그녀는 결혼할 당시 이런 것에 큰 관심이 없었다. 아니 그녀는 여전히 외모를 꾸미는 것에 큰 관심이 없다. 보통은 여자 친구와 쇼핑하는 걸 힘들어하는데 나는 그런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쇼핑을 가끔 하긴 하지만 오히려 내가 더 쇼핑시간이 길 정도니깐 말이다. 그래서였는지 결혼할 당시에 결혼반지 역시 정말 쓰기 편하고 대학생 커플들이 할만한 반지를 서로 맞췄다.
그렇게 우리의 결혼반지를 8년 정도 편하게 차고 다닐 즈음에 미국 여행을 갑자기 훌쩍 떠나게 되었다. 아이들을 낳은 이후에 처음으로 단둘이 떠나는 여행이었기에 그냥 너무나 행복했었다. 비행기 안에서 그저 내내 히죽거리면서 웃었던 기억이 난다. 다시 연애 때로 돌아간 기분이었지만 그때보다도 기분이 좋은 건 결혼과 육아로 꽤 지친 이후에 단 둘이 떠났던 여행이기 때문에 과거의 연애 때보다는 더 좋았다.
영화에서 자주 보던 뉴욕의 거리를 막상 직접 돌아다니니 그렇게 큰 감흥은 없었다. 그저 이곳 사람들도 삶이 바쁘고 저마다의 고통과 기쁨을 가지고 살아가는구나 정도를 느낄 뿐이었다. 그렇게 뉴욕의 길거리를 지나다니면서 티파티를 들어갔다. 뉴욕을 오면 반드시 구경해야 하는 곳이라고 하여 열심히 구경했다. 꽤 구경할게 많았다. 구경을 마치고 1층을 거쳐서 나오려는데 왜 그랬는지 아내한테 뭔가 기념품을 사주고 싶었다. 아마도 도 티파니가 뭔지 잘 몰랐거나 이곳 가격이 어느 정도인지 몰랐던 무식함이 그런 발언을 하게 도와줬는지 모르겠다.
"목걸이 한번 골라봐!"
"여기 엄청 비싸!"
"그래도 골라봐!"
"그럼 우리 같이 반지 할까?"
"그래! 그것도 좋겠다!!"
그렇게 우리의 반지 쇼핑은 시작되었다. 그러면서 슬쩍 목걸이 가격을 봤는데, 아마도 저걸 샀으면 한국에 돌아가지 못했을 수도 있지 싶었다. 그런데 반지 가격 역시 만만치가 않았다. 그래도 그동안 고생한 아내를 생각하면 저 반지 앞에 쓰여있는 가격은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는 걸 다시금 상기시키게 된다. 그리고 결혼할 때 사준 반지가 너무 저렴해서(?) 괜히 미안한 마음도 꽤 있었다. 이번에는 다시금 업그레이드를 시킬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조금은 과감했지만 그 과감함보다 더 소중한 그녀를 위해서 조금 용기를 내보았다.
우리 둘 모두의 눈에 쏙 들어오는 반지가 하나 있었다. 우리의 결혼반지와 모양이 거의 유사한 반지였는데 조금 더 고급스럽고 조금 더 있어(?) 보였다. 아마도 이건 브랜드에 속은 거일 수 있지만 막상 지금까지 내 손에 잘 붙어 있는 이 녀석을 보니 브랜드가 괜히 브랜드는 아닌 거 같기도 하다.
나름 과감하게 카드의 힘을 빌려서 결제를 하고 나서 아내에게 한마디 더했다.
"다음엔 다이아로 꼭 사줄게!!"
"아니야! 이게 어디야!!"
"10년 뒤에 다시 여기 와서 그땐 다이아로 사줄 거야!!"
"ㅎㅎ 정말 그렇게 되면 좋긴 하겠다!!"
여행 때 산 기념품은 일상에서 그때의 좋은 기억을 되살려주고 그때의 좋은 기억은 지금의 괴로움을 조금 잊게 해 주고 앞으로의 삶에 작은 희망도 부여해준다. 그때 약속했던 10년이 멀지 않았는데 그 약속을 지키고 싶어서 오늘도 주어진 삶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원동력을 부여해 준다.
형편이 넉넉해서 다이아를 사줄 수 있는 사람은 그 다이아가 그저 그 사람의 일부일 수 있지만, 어려운 형편에서 자신의 삶을 다해서 다이아를 사줄 수 있는 사람은 그 다이아가 그저 그 사람의 일부가 아닌 그 사람 삶의 결정체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