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번째 글쓰기는 일기였다. 중학교 때부터 꾸준히 일기를 써왔다. 글의 주제들은 단순하지만 그 일기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중학교 시절과 지금의 내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달을 때쯤이면 나보다 나이가 한참 어린아이들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지게 된다.
그리고 지금은 직업적으로 칼럼을 쓰기도 하고 취미로 에세이를 여기 브런치에 쓰기 시작했다. 둘의 장르는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달랐다. 특별히 칼럼은 집중해서 시간을 투자하면 해낼 수 있다. 어떤 결과라도 뽑아낼 수 있고 나름 의미 있는 글을 쓸 수 있다. 그리고 칼럼에서도 감정이 이입되기도 하고 나의 사상과 철학들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에세이는 집중해서 쓴다고 써지지 않는다. 어느 정도의 영감도 필요하고 무엇보다도 삶이 그 속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가야 한다. 그러니 삶이 없다면 에세이는 존재할 수 없다. 칼럼과 나의 삶은 약간의 관계는 있지만 크게 관련이 없다. 어떤 분야와 주제에 대해서 자료들을 수집하고 그걸 잘 정리하고 논리적으로 잘 풀어나가면 된다. 거기에 나의 사상과 철학이 스며들면 더 좋은 칼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건 반드시 필요한 요소는 아니다. 주요한 내용은 정보를 잘 정리해서 읽기 쉽게 쓰고 사람들이 관심 있을 만한 주제들을 잘 풀어내면 된다. 거기에 나의 삶이 개입되어서는 오히려 피곤한 글이 되거나 칼럼 자체의 질을 떨어트리거나 신뢰를 잃게 만든다.
에세이는 자료들을 수집할 수가 없다. 사람들의 관심사에 맞추어서 쓸 순 있지만 그렇게 쓰다간 글이 거짓으로 흘러갈 수 있다. 그리고 쓸데없이 포장하고 과장하거나 축소하게 된다. 그래서 에세이가 어렵다. 나의 삶을 100% 투영하기도 어렵거니와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건 더더욱 고통스러운 일이다. 누구나 좋은 면만을 보여주고 싶어 하고 나쁜 면은 감추고 싶기 때문이다. 칼럼은 나의 삶을 완전히 감출 수 있으나 에세이는 그 영역을 나 스스로 정해야 한다. 그래서 어렵다. 그 기준을 정하는 건 오로지 필자의 몫이므로..
잘못 쓰인 에세이는 스스로의 삶을 기만할 수 있다. 그리고 꽤나 이중적인 인간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최근에 있었던 안타까운 일 역시 아마도 그런 이중적인 삶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물론 내가 그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보지 못했기 때문에 뭐라고 평가하기에는 한계와 오류가 많다. 그냥 내 삶을 찬찬히 살펴보니 나 역시 상당히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모습을 많이 보이고 있다는데서 그들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정도로 생각해보는 거다.
아마도 에세이를 100% 솔직하게 쓴다면 많은 사람들의 환호와 질타를 받게 될 것이다. 그래서 조금씩 자신을 감추는지도 모르겠다. 타인을 엿보기를 원하지만 타인의 지저분한 모습까지 세밀하게 보고 싶거나 그러한 걸 보고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은 나의 지저분하고 모난 부분까지 이해해주길 원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은 끝없는 희망 가운데 인생을 계속 살아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살아보니 그러한 사람은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러니 아마도 에세이 속에서 자신의 모든 모나고 이중적인 모습들을 교묘하게 감추는 것 아닐까? 그걸 들키는 순간 사람들이 내 주위를 떠나는 게 무섭고 두려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