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년은 불혹

불혹의 굴레에 유혹당하지 않는 방법 대체 무엇인가

by 김씰리



2025년이 되어 나의 새해다짐 TMI를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다.


불혹을 코앞에 둔 올해부로,
난 만나이를 말하지 않겠어.
그냥 한국나이로 당당하게 서른아홉이라 외치겠어.
왜냐?
왠지 그럼 자존감 높은 여성처럼 보일 꺼 같고등...

물론 나도 안다. 이런 선언을 생각하고 떠들어대는 것부터가 세월 앞에 마음 쪼그라들기 시작하는 자존감 낮은 여성 그 자체임을. 하지만 주둥이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불혹을 앞둔 심경이 몹시 복잡했기 때문이다.


아주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최근 들어 서울 지역 곳곳에 청년센터 오랑이라는 곳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쾌적하고 조용한 공간에서 무료로 공부와 작업을 할 수 있으며, 다양한 청년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4월에는 구차하고 구구절절하게 신청서를 써내어 한 달 동안 무료로 훌라수업을 듣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 제도는 '만 39세'까지만 해당된다. 왜냐면 만 39세까지만 '청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는 2년 남은 청년 시한부인 것이다.

나라에서 만 40세부터 이용할 수 있는 장년센터도 오픈해주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나는 제법 동안이다. 근 20년째 몸에 때려부어온 술담배커피에도 아직까진 피부층이 두꺼워 온건하다. 하지만 불혹을 앞둔 지금 나는 절실히 깨닫는다. 나는 나의 동안페이스를 엄청난 '트로피'로 여기고 있었음을.


하아... 명품가방 이딴 거 다 필요없어.
피부 좋은 게 최고야.
최대한 오래오래 이 피부와 동안을 지켜야 한다!


라고, 역시나 동안이며 나이 역시 아직 한참 어린 후배에게 주창하며...!! 술은 월례행사 수준으로 끊었으나 금주의 여파로 담배커피 소비량은 외려 더 늘었다. 대신에 아침마다 (알리에서 산) 싸구려 페이스 마사지기로 열심히 턱살을 올리고 쳐진 눈밑을 전기다리미질해본다. 다이소 리들샷과 대만 흑진주팩 등등을 열심히 얼굴에 상납해본다. 여에스더 글루타치온을 사서 입천장에 붙여본다. 각종 피부관리 시술에 대한 유튜브 쇼츠를 탐독해본다.


지인을 따라 간 시술 전문 병원 상담실에서 조심스레 질문도 해본다. '저기... 제 얼굴에는 뭘 하면 좋을까요?' '...^^ 리프팅 하셔야 돼요. 50에서 100만원 정도 생각하시면 되실 것 같아요 ^^.'

상담실장의 본분에 충실한 솔루션에 대한 수긍보다는, 내가! 동안을 자부하는 내가! 불혹도 되기 전에 리프팅씩이나 해야 한다고??! 라는 자괴감에만 빠져 돌아온다. 물론 시술은 받지도 않은 채.


20대 때부터 정수리 정중앙에 안테나처럼 나기 시작한 흰머리가 있다.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 기다렸다가 쏙 뽑았는데, 그것이 이제는 3개로 늘었다. 나는 중노년이 되어도 새치염색을 하지 않는 것이 꿈이다. 그러나 조건이 있다. 그 새치들이 멋있게 자라야만 한다. 이를테면 한강작가님처럼, 이를테면 어제 길에서 본- 정수리 쪽의 백발에서부터 아래쪽의 흑발까지 너무나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연결된 부스스한 생머리를 날리며 걸어가던 멋쟁이 중년여성처럼.

그러니까 새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는 싶은데, 그 새치가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나야만 하는 것이다.

올해 들어 부쩍 여기저기에서 새치가 한두 가닥씩 발견되고 있다. 거울을 보다가 정말 길어서 한방에 탁 뽑기 좋은 건 뽑기도 한다. 안 뽑히는 건 그대로 둔다. 하지만 불안하다. 이 흰머리들이 멋대가리 없이 지멋대로 나서 내 대가리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릴까봐!


매일 옷장 앞에서 고민한다. 이젠 이십대 애기들이 입을 만한 옷을 입어선 안 돼. 깔끔하면서도 적당히 신경은 쓴 쿨한, 그러면서도 무엇보다 영 해 보 이 는 룩을 입어야만 해!! 하면서 또 인스타와 유튜브 속 패션삐쁠들의 쇼츠를 열심히 탐독한다.


탈코르셋은 영원히 글렀다.


불혹의 의미는 '이젠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을 나이'라고 했던가.

인생에서 가장 수많은 유혹에 휘둘릴 십년이라서 액막이 부적처럼 불혹이라 이름 붙인 것이 분명하다.


작가로서도 마찬가지다.

중장년에 접어든 중견 작가님들이 쓴 청춘드라마를 보다가 마음이 괴로워질 때가 종종 있다. 중장년에 접어든 미래의 나는 어떤 걸 쓰는 것이 좋을까에 대한 답 없는 고민이 깊다. 작가의 나이와 상관없이 젊은 이야기를 쓰는 것은 자연스럽고 멋진 일인데, 그것이 '젊어 보이고 싶은' 이야기가 되면... 진짜 해당 시대 청춘들에게 비웃음을 사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렇게 되고 싶지 않다.

그러려면 앞으로 나는 어떤 레이어를 쌓아나아가야 할까?


미래의 지금을 추억할 나를 위해 딱 적당히 자연스럽게 조작될 정도의 보정 기능을 넣은 앱으로 셀카를 찍는다. 스무살 서른살의 뽀샤시 날씬하게 보정된 사진을 흐뭇하게 들여다보며 그리워하는 현재의 나처럼, 오십대 육십대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선물이다. '어머... 이땐 이렇게 매끄럽고 동안인 애였구나 나...' 하면서 촉촉하고 애잔하지만 흐뭇하게 과거의 나를 기억해주길 바란다.


하지만, 이 모든 괴리와 괴로움의 와중에도... 나는 십대 이십대의 싱그럽던 나보다 (자체평가했을 때) 적당히 건강하게 찌들어있는 지금의 내가 더 마음에 든다. 인간관계도, 사회생활도, 연애에서도 서툴다는 죄로 무한 양산했던 흑역사들... 그 흑역사들의 무수한 징검다리를 건넌 지금의, 상대적으로 고요해지고 안정을 찾은 내가 나는 퍽 마음에 든다.

그래서 다가올 사십대를 기대하는 마음도 분명히 크다.

그리고 내가 사십대 중반부터 더욱 대성할 거라는 N군데의 점괘들 덕분도 못지 않게 크다... ㅋ.


이렇게 오늘도, 서른아홉이 되도록에 이르고도 마음이 갈대처럼 사정없이 휘둘리는 나에게, 내가 늘 친애하며 애청하는 <독일언니들>의 드라마퀸 언니가 이런 명언을 남겼다.


Forty
is
New Thirty.

퀸언니의 말에, 사나운 폭풍우에 뽑혀나갈 듯 흔들려대던 내 마음속 갈대가 잠잠해졌다.

그녀가 팟캐스트에서 이 말을 뱉은 순간에 뭐랄까, 나이에 대한 지나친 조바심이나 슬픔도 느껴지지 않았고, 자학유머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냥 그런 거야. 그렇게 받아들이면 돼. ㅇㅋ?' 의 뉘앙스였다.


다가올 뉴 써티에도 내 마음의 갈대는 마구 요동치겠지만, 그런 나의 불안정도 고요하게 지켜보며 스스로 흥미롭게 탐구할 수 있길 바란다. 좀 더 많은 좋은 습관들이 몸에 배는 내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전히 동안이어서 내 나이를 말하면 사람들이 '네에에???' 하며 깜놀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