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좋아하지 않았다. 시를 읽기 시작한 것도 불과 1~2년 남짓이나 될까. 그러다 어느 날부터인가 시를 읽으면 많은 감정을 느꼈다. 짧은 글에서 감탄과 경외심, 놀라움, 그리움, 애절함 등 세상의 모든 감정을 가질 수 있었다.
어느 순간 나도 시를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를 모르면서 시를 쓸려니 시 쓰기가 쉽지 않았다. 가끔은 유튜브에서 시 강좌를 보기고 했고, 시 작에 관한 책을 읽기도 했다. 그렇다고 큰 도움이 되는 거 같지는 않았다. 그럴 무렵 작년 11월 초쯤 태백산맥 전 10권 필사를 끝냈다. 시원 섭섭한 마음으로 1년 반 동안 매달렸던 필사를 끝냈었다. 끝내면 후련할 줄만 알았는데 왠지 모른 공허함과 허전함이 밀려왔다. 매일 할당량을 끝내기 위해 옆에 끼고 다니던 태백산맥과 필사 노트, 만년필을 챙겨 필사를 하는 건 어느 순간 내 삶의 일부분이 되어 있었다.
어느덧 그런 습관이 몸에 배어 있고 필사를 하지 않음은 '오래된 연인과 헤어진 느낌이랄까...' 그 빈자리가 크다는 것에 새삼 놀랐다. 그럴 때 '토지'를 필사하면 어떠겠냐고 농담을 건네는 지인도 있었다. 그 자리에서 욕을 해주고 싶었다. 토지 21권은 생각만으로도 끔찍했다.
그러던 찰나 시를 하루에 10편씩 필사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허한 빈자리도 채워주고 시 쓰는 실력도 늘 거 같았다. 다시 필사 노트를 구입하고 만년필을 집어 들었다.
몇 시간씩 하던 태백산맥 필사에 비해 하루에 시 10편은 그리 어렵지 않을 거 같았다. 하지만 막상 해보니 대략 1시간이 넘게 걸렸다.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며칠을 해봤는데 소설과 달리 시간에 쫓겨 10편의 시를 필사하는 것은 시를 단순히 베끼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필사는 하고 싶었지만 태백산맥 필사할 때처럼의 치열함은 가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하루에 10편에서 5편으로 줄였다. 줄이니 시를 음미하며 차분히 필사할 수 있었다. 시간도 많이 걸리지 않고 시 필사 분량도 적당하고 딱 좋았다.
필사를 하다 보면 바쁜 일상 속에 가끔 깜빡해버리는 날도 있었다. 그래서 점심시간에 식사한 후에 꼭 필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회사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사무실에서 매일 다섯 편의 시를 필사했다.
주말에는 집에서 저녁식사 이후 한가할 때 필사를 했다. 간혹 가족 여행을 갈 때도 필사 노트는 꼭 챙겼다. 시는 스마트폰으로 짧은 시를 검색해 무조건 하루 5편은 채웠다. 그렇게 하다 보니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 100편, 200편, 500편, 드디어 1000편의 시를 필사하게 됐다. 필사하는 과정에서 내 나름대로 무척 궁금한 게 있었다.
'만약 내가 1,000편의 시를 필사하면 시를 얼마나 잘 쓰게 될까?'
'많이 쓰고 많이 보면 글쓰기 실력이 는다고 했으니까 아마도 잘 써질 거야!'
나름 기대를 하며 필사를 했다.
1,000편의 시를 244일 동안 필사하다 보니 시에 대해 구체적으로는 모르지만 시를 보는 눈은 많이 올라간 거 같긴 한 거 같다.
대단원의 1,000편의 페이지에는 내가 직접 쓴 시를 필사하기 위해 노트북 앞에 앉았다.
'자~ 봐보자 얼마나 나의 시 쓰기 실력이 늘었는지... 띠용~ 웬걸... 시가 더 안 써진다. 하하하'
내가 쓰고 있는 시들이 너무 허접해 보인다.
필사의 효과가 나오긴 하나보다. 시를 보는 눈이 높아졌고 그러다 보니 내가 직접 쓴 시들을 보는 눈도 높아져 버렸다. 왠지 발행을 클릭하기가 부끄러워진다. 아~ 그래도 발행을 꿋꿋이 눌러보자 부끄럽지만...
시 쓰기 실력이 늘었든 늘지 않았든 244일 동안 1,000편의 시를 매일 다섯 편씩 필사한 나 자신에게 칭찬해주고 싶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좀 더 지켜봐 보자, 2,000편의 시를 필사하면 나의 시 쓰기에 어떤 변화가 올는지. 하하하
(밑에는 시 1,000편 필사를 기념해 직접 쓴 '인생'이라는 시를 올려본다. 여전히 조금 부끄럽다. 하하하)